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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r 19. 2022

9 간장종지의 고군분투

내가 만족할 일을 찾기

결혼 수업에서 코치님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 내용은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루에 적어도 세 가지씩 해보는 것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내 기분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도와줄 수 있는 일들. 내가 죽어도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면 그래도 해보자.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 방해받지 않고 최대한 집중하고 최대한 즐기는 것.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뭔가를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채워야 한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바로 준비를 해본다던지, 인테리어 계획을 세우고 물건을 싹 다 정리해본다던지, 지금 당장 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천에 옮기는 거다.


그리고 내 마음을 조금씩 알아챌 수 있다면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기분인지 어떤 마음인지 내가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미래의 행복을 현재에 가져와서 지금 그 행복함을 누려도 될 것이다. 내가 주말에 카페를 가고 싶었다면 오늘 가도 된다 그게 오늘의 나를 행복하게 느끼도록 도와준다면. 내가 내년에 이사를 가고 싶었다면 오늘 이사 가는 것처럼 짐 정리를 해도 된다 그게 오늘의 나를 움직이게 만들어준다면.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봐도 좋다. 조금씩 마음이 풀린다면 다음 주, 마음이 조금 더 안정되었다면 다음 달, 내 마음이 더 이상 불안에 요동치지는 않고 편안한 기분이 잠깐씩 느껴진다면 내년... 이런 식으로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지금은 내가 조금씩 나아지는 시기이니까 나는 점점 더 잘 될 거니까. 미래에 행복할 수 있는 일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불행해 죽는 거 아니면 행복한 일이다 하기 싫어 죽는 거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이다 기분 나빠 죽는 거 아니면 기분 좋은 일이다. 지금 당장 죽는 거 아니면 평온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동네를 걷거나 공원을 산책하거나 할 수 있을 정도의 용기도 내었고, 거울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을 때에는 제일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본다거나 팩이나 화장, 머리까지 조금씩 꾸며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셀카도 찍고 창밖 풍경이나 커피잔도 사진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하루하루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매번 우울감에 빠졌다가 다시 시작할 때 나는 손톱을 깎는다.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이지만 둥글둥글해진 손과 발을 보며 기분도 산뜻해진다. 내가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도 손톱은 꾸준히 자라고 내가 아무리 할 일 없고 심심하게 살아도 손톱은 꾸준히 자라고 있다. 


아무 소리도 없이 멈추지 않고 매 순간순간 내 몸은 나를 위해 그렇게 최선을 다해주고 있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소리 나 의식하지 않아도 쉬는 숨, 아무리 다듬어도 또 자라는 눈썹, 아무리 고데기를 해도 한쪽으로 솟는 머리. 모두 다 나의 모습이다. 그런 나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씩 깔끔하게 정돈해주며 마음을 다잡는다. 옷도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 중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입었다. 내가 평소에 자주 입는 옷으로 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텐데,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도 후줄근한 옷 말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렇게 점점 공포감을 덜 느끼며 점점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으며, 락다운 상황에서부터 1년이 지나 코로나 규정이 완화될 즈음해서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업무까지 해낼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출근길에 매일 같은 버스를 기다리며 만나는 사람들, 점심시간에 단골 음식점에서 먹는 한식, 퇴근길에 일부러 돌아가서 공원에 가보면 잔디밭 위에서 강아지들 산책 모임 구경하기.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에서 특별한 요소를 일부러 하나씩 만들어갔다.


다시 일상에 의미를 찾자.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 입을 옷을 잘 고르고,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해 집중해서 일하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보낼 줄 알아야 하고, 퇴근길에 공원까지 걸어가서 강아지들 모임 하는 것도 보자. 하루에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보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안부도 물어보고, 저녁에 운동도 하면 좋은데... 


나는 어차피 하고 싶은 것만 하니까 꼭 해야만 하는 것은 하고 싶게 만드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면 커피 한 잔 보상으로 주고 번쩍번쩍한 하루 알찬 하루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물론 반도 안 하지만 그래도 원동력이 된다. 운동가기 싫으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다 생각하고. 출근하기 싫으면 회사에서만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을 꼬깃꼬깃한 쪽지를 펼쳐보듯 쥐어 짜내서라도 꺼내야 한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내가 무언가를 했다는 점이다. 해볼까? 라는 마음이 들면 정말 정말 좋은 신호이다. 나에게 희망이 열정이 피어났다는 증거. 에이 내가 뭘... 지금은 좀... 이런 생각이 들기 전에 질러야 된다. 해볼까? 그리고 바로 하면 된다. 놀러 가볼까? 팀장님께 이 아이디어 제안해볼까? 수업을 들어볼까? 오래전 친구에게 연락을 해볼까? 모임에 나가볼까? 


내가 힘든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하고 싶은 일들에 신경을 쏟기. 내가 하기는 싫지만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일들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오랫동안 나의 꿈으로 남아있던 일들을 시작하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은 일정표를 보면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로 하루를 채우고 그것에 집중하기.


그거를 해서 내 마음이 조금 위안을 받는다면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진다면 해볼 만하지 않는가. 만약에 잘 안된다고 해서 벌어질 최악의 상황은 뭐 내가 좀 쪽팔리는 것 밖에 더 있겠는가. 그냥 머쓱한 거지 조금 창피한 상황인 거지 그 순간을 넘기면 지나가는 일인 것이다.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믿었던 내 인생 전부를 바쳤던 사람인 남편에게도 심적으로 후두려맞고도 안 죽고 살았는데 뭐 그 정도쯤이야. 또 쓰러지거나 엎어지면 다시 일어나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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