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Mar 19. 2022

11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남을 인정하고 나의 대응방법을 정하기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 와든 인간관계는 참 어렵다.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어느 한 명의 영향력이 가져오는 결과는 각양각색이니까. 좋은 사람을 만나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관계가 있는 반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그 부정적인 에너지에 정말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니까.


나도 상당히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꿈과 희망보다는 현실과 겉모습에 집착한 적도 있고, 상대의 마음과 의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식대로 해석해서 괴로워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게 내가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당시에는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게 당연한 것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한 분을 만난 뒤로 나도 그분처럼 누군가에게 밝은 영향력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보여줬다. 비자 준비 자료, 해외 취업 자료, 결혼 정보, 자격증이나 공부 자료 등등. 모두 정말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받아주셨고 나도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했었다. 


내 이력서와 자소서를 공유드린 분께서 합격소식을 알려오거나, 비자 자료를 공유드린 분께서 비자 승인 소식을 알려주시면 정말 내 일처럼 기뻤다! 그 힘든 여정을 알기에 좋은 결과를 얻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었다. 그런 긍정적인 마음이 든다는 사실이, 내가 진심으로 그렇게 밝은 기분을 느낀다는 사실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결국 남편도 그랬겠구나 그래서 타인을 도와주려고 했었구나 느껴졌다. 


그런데 물론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해서,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의 도움만 받고도 속으로는 나를 싫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내 감정이 상했다. 하지만 그 도움을 준 사람은 나고, 누가 강제한 게 아니라 내가 자발적으로 도움을 준 것인데, 상대가 나를 좋아하던 싫어하던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었다. 그가 나를 싫어하지만 내 자료를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 대 사람으로 다가가도, 상대는 필요한 것을 취하고 그 이상을 원치 않을 수도 있었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이제야 깨닫는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다. 길거리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도 있는 거고, 쓰레기를 줍는 게 업무인 월급 받는 환경미화원이 있으니 그분들이 줍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거고, 쓰레기가 있건 말건 자신이 갈 길을 가는 사람도 있는 거고... 하지만 그 사람들 모두 옳다. 누가 더 낫고 못 낫고 할 수 없다.


사실은 길에 쓰레기를 버린 사람이 잘못한 일 아닌가. 그렇지만 실제로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이 없었다면? 원래 쓰레기통에 잘 벼려져 있었던 쓰레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면? 그 쓰레기를 향해 누가 비난하며 누가 원망하며 누가 손가락질하겠는가? 그냥 다시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을 뿐이다.


현실에서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 나는 아니 사람이라면 어떻게 길에 쓰레기를 버릴까? 설마 일부러 그랬겠어? 하는 갇힌 사고에 있었다면 지금은 아 쓰레기를 투기하길 원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왜 그걸 원하지? 그래서 얻는 게 뭐지?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 없다. 그냥 그 사람이 길거리에 쓰레기 뿌리고 다니고 싶으니까 버리는 거다.


어쩌면 그게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게 세상을 향한 자신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자신이 쓰레기로 가득 차서 오죽했으면 하나씩 하나씩 자신을 정화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내 속도 모르는데 어떻게 감히 타인의 속을 꿰뚫어 보겠는가.




아직도 조금은 혼란스럽다. 차라리 대놓고 솔직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서로 간에 오해 없을 텐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 적정선이 어느 정도 일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같은 상황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고맙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으니.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었는데 크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다고 다음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면 결국 나만 각박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그러다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고백받았을 때 더 먼저 손 내밀어주지 못한 것에 후회가 된다면?!


하지만 또다시 생각해보면 굳이 신경 쓸 거 없이 내 인생 내 할 일 열심히 하면서, 나와 잘 맞는 사람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를 알아볼 사람들은 알아볼 것이고 나를 무시할 사람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무슨 행동을 다르게 했던 무시할 것이다. 


진정한 멋진 삶이란 무엇일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사실 인간관계에서 우리 나이쯤 되면 어른이 아닌가. 나는 어른에 대한 환상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어른이라면 이렇겠지? 막연하게 멋있어 보이고 능력 있어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다. 어른이라면 생각도 깊고 성숙한 인격체가 될 수 있겠지? 어른이라면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고 그에 따르는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겠지?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 숫자만큼 내가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고, 그 기회를 잡은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는 그런 내용의 글을 보았다. 인터넷에서 본 글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 데 아무튼 요새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얼마나 성숙했을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을까? 내가 얼마나 그 기회를 잡아서 성장했을까? 내가 모르고 놓쳐버린 기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내가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어른이라면 분별력 있어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할 것이라는 것은 사실 나의 기대였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그런 기대를 넘어서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사랑으로, 배려심으로, 공감능력으로, 강한 힘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사람들을 응원해주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속단하지 않고 편견 갖지 않고, 정말 진심을 다해 상대를 대하는 사람들! 정말 멋진 어른들. 진정한 어른이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평온을 비는 기도 라인홀트 니버
이전 10화 10 나에게 있는 큰 힘을 인정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