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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Mar 19. 2022

8 예방과 추구의 상관관계

내가 원하는 환경을 만들기


나 가볍게 살 거야!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내 행복을 찾아 떠날 거야! (feat. 퇴사짤) 라고 남편과 전쟁 같은 싸움을 하다가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코로나 락다운으로 한국행 비행기도 안 뜨던 시기. 그래서 떠나지는 못하고 모든 굴레와 속박만 벗어던졌다.


나의 최종 목표는 캐리어 26인치 하나, 기내용 캐리어 하나로 어디로든 떠나 수 있게 물건을 줄이기. 여행이 아니라 이사까지 가능하도록. 내가 이 결혼생활을 더 이상 유지하고 싶지 않다고 느껴지자마자 어디든 떠날 수 있도록.




10평 원룸인 우리의 신혼집. 안 그래도 좁은 집에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남편과 소소한 물건을 선물해주시는 시어머니 덕분에 집이 꽉 찼다. 집은 내가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공간인데, 내 공간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물건들로 차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벽장식이고, 꽃병이고, 편지고, 스노우볼이고, 기타 온갖 잡동사니들 전부 다 내 취향도 아닌데 집에 떡하니 널려져 있으니 그 집이 싫어질 정도였다. 그렇게 몇 달을 고민하다가 부부싸움 후에 홧김에 싹 다 치워서 남편 서랍에 놓았다. 그리고 나니 숨이 좀 트였다.


처음에는 시어머니께서 주신 ‘선물’인데 절대 버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시어머니도 내가 억지로 시어머니 취향에만 맞춘 물건들에 둘러싸여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원하실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실 테니까. 이후에 남편과 상의하여 같이 정리하였다.


물건이 주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 아끼는 물건 애지중지 하는 물건들은 존재 자체로도 나에게 힘을 주는데, 내가 싫어하는 물건들은 집 안에 아무리 꽁꽁 숨겨두어도 그게 우리 집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부정적인 에너지를 받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물건들만 남겼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하게 관리할 수 있을 만큼, 지진이나 쓰나미 났을 때 금방 챙겨서 도망 나올 수 있을 만큼!


그리고 나니 내 삶에 중요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도 있다. 코딱지 만한 우리 집도 월세만 한화로 치면 150만 원이 넘게 내는데, 내가 싫어하는 물건들을 쌓아두면 내 집이 아니라 물건 집이다. 월세는 내가 내는데 물건에 쌓여 있으면 안 된다.


지금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내가 싫어하는 물건들로 내 주위를 가득 채워놓고 집이 좁다고 불평하면서 시어머님이 화낼까 봐 버리지도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대체 누구를 위한 집일까? 탁 트이고 텅 빈 공간, 아무것도 없는 빈 벽이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면서 왜 나는 잡동사니를 쌓아두고 있었을까? 나는 왜 나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무기력하게 나를 방치하고 있었을까?




중심을 잡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이곳에서 내 삶의 본거지. 우리의 작은 집. 내가 매일 돌아오고 잠드는 곳. 내가 매일 퇴근하는 우리 집, 여행 갔다 돌아올 수 돌아올 수 있는 우리 집. 집안에만 있으면 뭔가 고립된 느낌이 든다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이 작은 아파트.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온전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 조용하고 안전한 우리만의 공간. 완전히 다른 세계의 공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사는 이 집.


로봇 청소기 먼지통을 비우고 필터를 세척하고 샤워실에 곰팡이 제거제도 바르고 세면대 물때도 제거하고 설거지하며 싱크대도 닦고 정수기도 닦고. 작은 집이라도 이곳저곳 손보며 때 빼고 광내고 한다. 별로 티는 안 나지만 그래도 우리 집이 정갈해지는 모습이 구석구석 내 눈에는 보인다. 마음이 상쾌하다.




허태균 박사님의 <어쩌다 한국인>이라는 책에서 한국인의 특징으로 부정적 결과를 예방하기 위한 동기가 원동력이 되며, 위험을 예방하는 것에 집중하는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방적 동기의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불안.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정서이다. 그 반대의 성향은 향상적 동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보상에 대한 기대감이 주를 이룬다.


부정적인 상황을 예방하고 회피하려고 노력한다면 시선을 360도로 두고 온갖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이게 나에게 위협이 될지 안 될지 판단하려 하게 되며 그것 자체로도 엄청난 체력소모와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내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그런 부정적인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사실 불가능하다. 그런 상황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나아져도 이것만 고치면 저것만 바뀌면 완벽할 텐데 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마치 삐까뻔쩍하게 청소를 해놔도 먼지가 앉는 것처럼. 공기청정기를 아무리 돌려도 청소기를 아무리 밀어도 어느 세제를 사용해서 얼마나 닦아도 먼지는 앉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그것을 추구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긍정적인 무언가에 집중해야 내가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그곳으로 방향성을 정한다면 나는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타인의 시선이든 사회의 기준이든 흔들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그게 정답이다. 내 인생이니 내가 정답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룬다면 그게 완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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