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소리도 하고 삽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웹툰 유미의 세포들.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해주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행동도 꿰뚫어 보는 내용.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우리는 모두 공감하고 동의하는 줄거리이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다 우울증에 걸려버린 내가 보기에 가장 마음 아픈 세포는 바로 본심이.
응큼이든 본심이든 나쁘다고 패 버리고... 본심이는 땅속에 가둬놓고, 꼭 분노 세포가 화를 내야만 본심을 말할 수 있나? 그냥 언제든 솔직하게 자신이 원하는 걸 표현할 수는 없을까? 굳이 굳이 진심을 숨기고 상황을 유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만 할까? 거절당할까 봐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눈치 보여서 등등... 물론 이유는 있지만 말이다.
특히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는 남녀관계조차 너무 많은 계산이 들어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직접적인 표현도 잘 못하고, 남의 눈치만 보면서 서로 좋아해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유미와 우기의 상황처럼 유미가 나이 차이나 외부 시선 등으로 고민을 하면서 우기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적도 없는데, 우기가 유미에게 고백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 자체가 지나치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그만큼 좋아하는 마음이 컸다는 뜻이겠지...
사실 우리가 상대의 마음을 계속 어느 특정 상황을 만들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로 만드는 것... 그거 자체가 조종 통제의 하나 아닐까? 가스 라이팅이든 manipulation이든 컨트롤이든 전부 그 일환이 아닐까? 예를 들어 고전적인 방법으로 섬에 놀러 가 배가 끊겼다거나, 술에 취한 척해서 쉬었다 가야 하게 만든다거나... 물론 양쪽이 원한다면 바라는 결과를 얻겠지만 한쪽은 아니었다면? 범죄 아닌가?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얼든 많든 그냥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이루어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서로에게 눈치 안 주고, 우리 좀 솔직해지면 안 될까...? 결혼도 하고 싶을 때 하고 이혼도 하고 싶으면 하고 동거도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자기 인생 자기가 살 수 있도록 하면 좋을 텐데.
앗,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내 속이 베베 꼬여있었을 때. 내가 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을 때. 솔직하기에는 용기가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요청하기에는 죄책감이 들고, 거절당할 까 봐 두려울 때. 사회에서 바람직한 모습은 정해져 있는데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 내가 아무리 솔직하게 말해도 듣는 사람이 없을 때. 내 이야기가 들리려면 사회에서 정한 정답으로만 말해야 할 때...
불편한 얘기도 솔직한 말도 충분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나도 자유로운 사회와 자유로운 영혼들 사이에 있으니 이전의 내 모습이 상당히 모순적이었다는 걸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남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도 해주는 사람과 대화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감정을 인정해줄 수 있도록. 내가 속단하지 않고 오해하지 않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내 진심을 맑게 전달할 수 있을 때까지. 나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할 말은 좀 하고 살자
예전에 취업허가가 나오기 전 한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저학년 아이들에게 감정표현 단어들을 굉장히 다양하게 가르쳐주는 수업을 보았다. 감정 조절이 어려운 아이들이 불안을 느끼거나 불편한 상황이 있으면 폭력성을 보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단어를 여러 개 알려주면서 자신의 상황을 말로 표현하게 도와주고 무엇을 원하는지 설명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정말 필요한 교육이었다.
그렇게 내 감정을 표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나의 경험은 항상 정해진 규칙이 있었다. 예를 들어 감정표현도 내가 할 수 있는 정해진 규칙이 있었던 것 같다. 화난다, 짜증 난다, 슬프다 등의 감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보통 노력한다 성실하다 공부한다 등 딱히 감정은 아니지만 그 당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행동들만 받아들여졌다.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게 있어도 그 정답으로 정해진 학생의 삶에 맞지 않다면 표현조차 할 수 없고 결국 그렇게 억압당한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도 제대로 모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큰 것 같다.
우리 감정을 정확히 알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해야만 하는 것 등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 등 모두 중요하다.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생각의 물길을 터주는 큰 디딤돌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