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상담과 심리 상담을 통해 배운 대화법
남편과의 대화는 내 숨통을 옥죄여오는 것처럼 답답했다. 남편과의 갈등이 가장 심했던 때에는, 남편과 대화하다 보면 나는 호흡 곤란과 공황 증세가 왔고, 문자 그대로 고꾸라져 기절한 적도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남편이 빌런이고 남편이 완전체고 남편이 아스퍼거나 소시오패스 같았다. 반대로 남편의 입장도 비슷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괴물로 만들고 있었다.
배우자에게 폭풍 칭찬을 해줘라,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줘라,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줘라 등등 여러 조언들이 있다. 사실 이런 예쁜 말들은 서로 사이좋을 때나 할 수 있는 거지, 집이 지옥이고 서로를 가해자로 모는 사이에서는 차라리 혀 깨물고 죽었으면 죽었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극단적인 감정상태, 파탄나버린 관계에서는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대화법을 협의이혼을 준비하는 방법에서 찾았다.
상담이라는 게 일 분 일 초가 전부 돈이었다. 그 비싼 돈을 내고 상담을 하는데도 어떤 곳에서는 형식적인 질문만을 하며 차트를 채우고 시간을 때우는 상담도 있었고, 내 얘기는 안 듣고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게 상담이면 나도 하겠는데?” 하는 말도 안 되는 근자감이 생기면서, 나는 우리가 실제로 상담하고 있다고 상상하며 대화하니 뭔가 진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느꼈던 상담의 가장 기본은 시간약속이었다. 예약이 차 있는 변호사 / 상담가이기에 각자 상담 시간을 이끌어가는 정해진 틀이 있었다. 상담 시간에 늦어도, 정해진 시간 내에 상담을 다 끝내지 못했더라도, 예약 시간이 끝나면 상담은 종료된다. 그리고 1-3일 이내 상담 내용을 정리한 리포트를 나에게 보내준다.
“0월 0일 0시쯤 10분 정도 대화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줘.”
둘 다 발언을 한다면 각자 5분 정도씩 발언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서로 순서를 정해 번갈아 발언하고 답변하는 형식이나, 온전히 개인 발언으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려면 24시간이 모자랐다. 하고 싶은 말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억울하고 분하고 한이 서린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서 나는 과제하듯이 대화를 준비했다.
먼저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전부 써본다. 속을 게워내듯, 내 감정을 전부 토해내듯이 글로 썼다. 내가 서운했던 점, 힘들었던 점, 상처받았던 점... 구구절절이 일단 적었다. 글로 표현이 안되면 그림으로라도, 도표나 그래프로라도 그렸다.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십 수장은 나왔다.
그 글은 나만 보는 글이다. 누군가에게, 특히 남편, 보여줄 생각으로 적으면 안 된다. 아무도 안 볼 글이고, 나만 볼 글이니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전부 고백하면 된다. 그리고 나만 알 수 있도록 잘 보관해야 한다.
그렇게 내 감정을 머릿속에서 꺼내놓고 보면 나는 한결 가벼워진다.
쌓이고 쌓여 케케묵은 감정들을 들춰내면 나는 훨씬 환기된다.
이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관계에 굉장히 큰 전환점이 되어준다.
다음은 글을 요약하여 분량을 줄인다. A4 한 장이 5분 분량이라고 치고, 계속 줄인다. 반복되는 말들은 정리하고, 지나치게 긴 문장은 요약하고, 퇴고를 거듭하는 작가처럼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의 정수만 남긴다. 나는 몇 날 며칠을 걸려 이 작업을 했다.
한 장 정도로 줄였으면 전체적으로 한 번 더 읽어본다. 발표 연습하듯이 소리 내어 말해보고, 감정이 격해질 것 같은 부분은 순화시킬 필요도 있다. 내가 내 손으로 쓴 글을 내 눈으로 읽는 것과 내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글을 읽을 뿐인데도 그때의 감각이 되살아나 온몸이 덜덜 떨리기도 하고 다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도 한다. 실제로 대화할 때 울면서 5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미리 대비해야 한다. 그 감정을 스스로 잘 해소해야 한다.
각 문단마다 내가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말해야겠다 하는 문장이나 단어를 하나씩 고른다. 그중에서도 오늘 대화에서 이 한마디만 했으면 만족해할 만한 그 한마디를 또 고른다. 이렇게 중심 내용을 골라내고 생각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정말 중요한 요점만 골라서 A4 반 장으로 줄인다.
그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혹시 덜 중요한 내용이 분량을 잡아먹고 있는 건 아닌지, 만약 있다면 오늘은 제일 중요한 말 한마디에 집중하자. 오늘 대화의 전체 주제에서 논점에 살짝 벗어난 얘기가 있는지, 만약 있다면 다음 대화에서 말하면 되니까 보관해 두면 된다.
내가 대화 좀 하자고 운을 띄우면 남편은 표정부터 굳었다. 남편에게 대화란 자신의 잘못만을 요목조목 지적당하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일들에 대해 추궁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듣기 싫은 말들을 대체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한 이야기가 끝나는 것 같으면 또 다른 이야기가 줄줄이 나와 언제 끝날지 까마득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5분 10분 만 시간을 내달라고 하면 시간 없다고 핑계대기도 어렵고, 그 시간을 정확히 준수해서 내 할 얘기만 딱 하면 남편도 대화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던 것 같다.
1. 대화
- 말하는 법
- 듣는 법
2. 감정
- 알아채는 법
- 표현하는 법
3. 현재
- 최선을 다하는 법
- 만족하는 법
4. 배우자
- 인정하는 법
- 존중하는 법
5. 행복
- 기대하는 법
- 허용하는 법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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