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의 나
남편에게는 ‘특별한 친구’가 있었고, 그녀는 내 남편을 ‘영원한 친구’라고 불렀다. 나는 그 둘의 관계가 정신적 외도라며 남편을 다그쳤었다. 외도의 정의와 종류, 범위, 그들의 행위에 대해 하루가 멀다 하고 사사건건 따졌다.
몇 월 며칠 몇 시 너의 이런 행동은 외도야
그렇게 당당하면 대체 왜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야?
결혼했으면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렇게 따져도 남편은 “나는 아니야” 한마디로 문제를 일축했다. 이 책에서, 이 판례에서, 이 설문조사에서, 이 권위자가, 너의 이런 행동은 외도라고 정의하고 있다고 온갖 자료와 통계과 판례를 갖다 대고 설명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한마디로 끝내려고 했다.
그래 어쩌면 외도가 아닐 수도 있다. 진짜로 친구 사이일 수도 있지. 그럼 왜 둘 다 나에게 숨겼는지? 나는 이게 더 화가 났다. 차라리 나에게 둘 중 하나라도 사실대로 말했으면 이렇게까지 외도처럼 보이지 않았을 텐데. 왜 나 몰래! 내 뒤에서! 나에게는 단 한마디도 없이! 나에게 거짓말하면서 까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남편은 “거짓말한 거 아니야”라고만 했다. 나는 또 남편에게 거짓말의 정의, 종류, 범위, 그리고 남편이 한 행동에 대해 구구절절이 설명해야 했다. 거짓말에는 lies of commission과 lies of omission이 있다고, 사실이 아닌 거짓된 내용을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고, 의도적으로 사실을 숨겨 타인에게 사실과는 다른 믿음을 심어주는 것도 거짓말이라고. 만약 네가 법정에서 진실만을 말한다고 선서해 놓고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말하지 않아 본질을 호도한다면 그것도 거짓말이고 위증죄라고, 징역을 살 수도 있는 연방죄라고! 너 같은 사람 때문에 사실만을 말하자는 시민단체도 있다고!
그런 남편의 태도에 나는 더욱 분노가 폭발했다. 그리고 그 불똥은 남편의 ‘특별한 친구’에게까지 튀어 대체 왜! 같은 여자면서, 같은 한국인이면서, 그리고 나와도 아는 사이에서, 왜 내 남편과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연락하기 위해 어떤 말을 할지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편지를 썼다가 버리고, 만나서 할 말을 대본으로 만들었다가 버리고, 메시지를 썼다가 지우고를 반복했다. 결국 그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건 이건 나와 남편의 문제이지 그녀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글로 생각을 정리하면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팡질팡 하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하면서 실제로 내가 마음속에서 원하는 게 뭔지 찾아낼 수 있었다. 만약 글을 먼저 써보지 않았더라면, 그 글을 다시 읽고 또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할 말을 다시 정리했다. 밤을 새워서 하고 싶은 말을 적고, 줄이고, 고치고, 요약하고, 다듬고, 재구성하고, 편집하고... 결국 내가 십 수장을 써 내려간 글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랬다. “나에게 거짓말하고 ‘특별한 친구’만을 우선시하는 너의 행동이 나에게는 정신적 외도로 느껴지고 정말 큰 상처야”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을 때 진심으로 반성하고 바로 시정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남편은 그렇지 못했다. “외도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니까 네가 상처받을 일도 없어”
그 답변을 듣고 나니 내가 그동안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지금껏 계속 남편이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상식 밖의 일을 설명해 주면서 양심적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남편은 사회적 통념보다 개인적 신념이 더욱 중요한 사람이었기에 이런 접근이 전혀 효과가 없었다. 문제의식이 없으니 죄책감도 못 느끼고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1. 대화
- 말하는 법
- 듣는 법
2. 감정
- 알아채는 법
- 표현하는 법
3. 현재
- 최선을 다하는 법
- 만족하는 법
4. 배우자
- 인정하는 법
- 존중하는 법
5. 행복
- 기대하는 법
- 허용하는 법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https://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D211040150#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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