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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03. 2023

너의 호의가 나의 선택을 박탈할 때

개인의 선택과 자유, 우리가 수호해야 할 가치








음료


를 주문할 때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리할 수 있게, 커피 한 잔도 내 취향대로 커스터마이즈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음식이든 주는 대로 불만 없이 먹는 사람도 있어요.


이 문제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얼마나 추구하는지 정도의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전 글에서 관점의 차이에 따라 대접하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내용을 다뤘어요. 이번 글에서는 관점에 따라 선택권이 바뀌는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구를


주체로 보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해석이 달라집니다.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냐, 먹는 사람이냐에 따라 똑같은 요리라는 행위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누구의 선택이 존중받는지가 바뀝니다.


예를 들어, 서양 음식은 먹는 사람이 알아서 잘라먹도록 음식이 덩어리 째 나오고,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합니다. 동양 음식은 대부분 요리하는 사람이 미리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음식을 내놓기 때문에 젓가락 문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차려주는 대로 먹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보통은 내가 무엇이 먹고 싶은지 보다, 요리하는 사람의 성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차려준 사람의 성의를 봐서라도, 불평하지 않고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는 것이 예의예요. 짜면 밥을 많이 먹으면 되고, 싱거우면 반찬을 많이 먹으면 되죠.


“불만 있으면 네가 만들어 먹어!”라는 말도 들었어요. 요리하는 주체가 바뀌면, 그 사람의 의견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죠. 요리라는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하기에, 결정을 일임하는 거라 생각됩니다.







선택


에 대한 인식 차이가 굉장히 큽니다. 한국인은 자신의 선택보다는 주변인들과의 조화를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그 예로, 음식점에 가서 친구가 뭐 먹을지 먼저 물어보고, 다른 메뉴를 시켜서 같이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주문하기도 해요.


여행을 갈 때에도, 죽기 전 방문해야 할 여행지나 꼭 먹어야 하는 음식들이 정해져 있어요. 저는 관광지에 살고 있어서 관광 일정이나 맛집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아요. 어디를 가고 싶은지 또는 어떤 메뉴를 먹고 싶은지, 그에 맞춰서 알려주겠다고 제가 되물으면, 오히려 어딜 가야 하냐고 다시 질문합니다.




결혼식


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 선택 차이가 크게 느껴졌어요. 한국인과 결혼하는 외국인 친구가, 예비 시어머니께서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들을 위해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여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하셨대요. 본인은 타주에 결혼식을 여러 번 참석했었지만 관광버스로 단체여행을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대요.


우리가 초대한 것은 결혼식뿐이고, 그 뒤의 여행은 각자의 선택사항인 것인데 단체여행을 신부가 준비하는 것이 생소했나 봐요. 각자가 원하는 여행 스타일이 다르고 가고 싶은 관광지가 다를 텐데 왜 단체로 똑같이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는지, 각자의 입맛이나 알러지, 건강상태 등이 모두 다른데 왜 버스에서 먹을 간식을 직접 사지 못하게 하는지, 새벽부터 밤까지 단체관광을 시키면 개인 시간은 언제 가지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제가 결혼식을 한다면 단체관광을 준비해서 손님맞이를 할 것이라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 질문 자체가 너무 새로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먼 길 와주신 손님들께 대접하는 의미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즐기다 가라는 호의로 이런 여행을 준비하는 것인데 말이죠. 


개개인의 여행에 대한 목적이나 요구가 다른데, 자신의 선택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비용면에서도 시간적으로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시각을 알게 됐어요.




선물


을 준비할 때에도 상당히 다릅니다. 한국 친구들은 받는 사람이 내 돈 주고 사긴 아깝지만 갖고 싶을 만한 물건들을 선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반는 사람이 좋아할 법한 것들이나 필요해 보이는 것을 ‘주는 사람’이 판단해서 선물합니다.


주는 사람이 상대에게 평소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상대를 생각하며 가게에 가서 선물을 고르고,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포장해서 선물을 주는 행위 일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미국에서는 ‘받는 사람’이 선물 목록을 만듭니다. 특정 가게나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 기프트 레지스트리를 저장해 놓고, 선물을 주는 사람은 결제를 해주는 형식입니다. 그래서 결혼식이나 베이비 샤워 등 꼭 필요한 물건들, 자신이 갖고 싶었던 물건들 위주로 선물을 받을 수 있어요.


저는 물건을 고르는 센스가 조금 없어서 선물을 받고도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항상 부담이었는데, 레지스트리가 있으면 상대가 원하는 선물을 보장할 수 있으니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국인 친구끼리는 레지스트리를 공유하는 것 자체가 선물을 요구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어서 거부감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경우도 봤어요. 요즘엔 우리나라에도 카카오톡에 위시리스트에 저장해 두면 다른 사람들이 보고 선물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도움


을 주는 방식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어요.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는 길 기차 안에서, 정말 큰 가방을 짐칸에서 꺼내기 위해 낑낑거리는 친구가 있었어요. 


“도움이 필요해?” 

“도와줄까?”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다들 이렇게 묻기만 하고 대답을 기다리고만 있었어요. 저 같으면 바로 가방을 잡아서 내려줬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데 해외 생활이 길어지면서, 어디서든 도움을 주실 때 항상 먼저 말로 설명하거나 의사를 묻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외부의 시선에서 도움이 필요해 보여도, 도움을 받을 사람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죠. 당사자가 스스로 해내고 싶다면,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방관이 아니라 존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똑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선택을 중요하게 반영하는지에 극명히 차이 납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상대를 위해 대신 선택하고 상대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이기에, 나의 선택권을 행사하지 않는 방법으로 상대에게 영향을 받는 방법으로 사랑과 관심, 인정을 받는다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선택권을 포기하는 만큼, 상대도 나의 영향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약간의 정당화가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고, 상대가 사랑받는 방법이라 믿으니까요. 상대의 선택을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받아온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상대의 의사를 내가 전부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오해와 갈등도 생기기 쉬워요. 만약 지금, 누군가의 호의가 부담스럽다면, 스스로에게 한 번 질문해 보세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선택은 무엇인지, 나의 취향과 개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니, 상대에게 먼저 질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너는 무엇을 원하는지, 너의 선택은 무엇인지, 너의 취향과 개성은 무엇인지.


2단원에서 이야기 한 정답문화와 더불어 이런 대접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로, 어쩌면 우리에게 주체적인 선택이 힘들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위의 질문에 대해, 다음 글에서 함께 고민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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