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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Sep 22. 2024

​​걱정했어요, 마침내 이혼할까봐.

헤어질 결심, 살아갈 결심

지난 주말 <헤어질 결심>을 보고 왔다. 


그 전 주에는 남편이랑 필리버스터 급의 '대화'를 해서 나 혼자 정말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했더랬다. 물론 그동안도 계속 이혼할까 고민은 계속해왔지만...ㅜㅜ 옛날에는 할까 말까 였다면 이번엔 진짜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겠다 하는 생각이 번득 들었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남편이 주말에 뭐하냐고 묻길래 영화 <Decision to leave> 를 보러 갈 거라고 대답했다. 말하고 나니, 우리의 상황에 대해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필 이때 개봉한 영화가 약간은 의미심장하게, 살짝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나는 남편을 피하고 말도 아끼고 혼자서 이혼을 알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이 꽃밭인 우리 남편, 항상 긍정적이고 해맑은 우리 남편, 최악의 상황을 생각조차 못하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건가 어쩐가 진짜 속을 모르겠는 우리 남편... 그런 남편에게는 leave 도 live 로 들렸나 보다. 


Decision to live. 

살아갈 결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로 선택하는 결심.


그런 희망적이고 해피앤딩이 기본 값인 사람이 있다니... 내가 장음으로 아무리 정확하게 발음을 했어도!!! 뭔가... 남편은 정말 한결같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정말 순수하게 긍정적이구나. 너무 대단하다고 느껴지다가도 순식간에 나를 무장해제시키고 전의를 상실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어이가 없도록 비현실적인 사람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진짜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인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고, 같은 영화를 봐도 정말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이 아는 만큼 볼 수 있구나.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만큼 공감할 수 있고,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이해할 수 있구나. 


나 역시도 남편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을 수도 있고, 남편이 자라온 문화과 환경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남편의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지 못할 때도 많고, 남편의 깊은 속마음 뿐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남편의 모습이나 행동 또한 제대로 보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타인을 인내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나대로 존재하고 그는 그대로 존재한다.

그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타인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다. 내가 최선을 다했음을 인정하면 된다.

나는 타인을 인내할 필요가 없다. 나를 괴롭고 힘들게 하는 건 타인이 아니라 나이다.

나는 타인에게 영향을 받을 필요도 없다. 나의 선택이고 나의 결정이고 나의 책임이다.

나는 타인을 통제할 필요도 없다. 그의 선택이고 그의 결정이고 그의 책임이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는 것뿐이다. 

나를 피해자로 만드는 건 그렇게 보는 시선들이다.

나의 인생은 실패도 하고 회복도 하고 성공도 하고 행복도 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가해자도 아니다.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뿐이다.

나는 나의 마음을 존중하고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뿐이다.

나는 다른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기보다 내가 바라는 삶을 살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인생을 살고 싶다.




사실 내가 답답해하는 그의 단점들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장점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모두에게 친절한 태도, 확장된 사고방식

언성을 높이지 않는 대화와 갈등 해소 방법

다정한 말투와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의 표현

자립적인 선택과 결정 그리고 신중한 의사결정 과정

법에서도 수호되는 개인의 자유

다양한 경험과 환경에서 우러나오는 넓은 수용력


다만 나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나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내가 견디기 힘든 것뿐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의 모든 행동을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는 응원받고 칭찬받고 감사받으며 그가 원하는 삶을 살아갔을 수도 있다.




나는 타인을 감히 판단하고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 나름의 사연과 그 나름의 인생과 그 나름의 노력을...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나는 나나 누군가의 경험에 한한 일을 일반화시키고 싶지 않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행복하고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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