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Oct 22. 2021

나의 뮤즈, 나의 영감님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다. 작년, 나는 서리를 몰고 다녔다.


나는 우리가 결혼하자마자 자발적으로 남편을 위해 나의 감정을 억눌러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게 그냥 무의식적으로 나 스스로를 희생시켜왔다. 물론 남편에게 말했지만 씨알도 안먹혔기에 억울하고도 원망스러운 마음을 삭히며 살았다. 내가 대체 왜 이런 사람과 결혼했지 이미 결혼했는데 이 사람이랑 어떻게 평생을 살지 이 사람은 대체 왜 자신의 잘못을 고칠 생각도 없는거지... 통곡을 하며 버텼다. 




남편과 특별한 친구의 사건 이후로 '친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그 분을 꺼려했다가 남편의 모든 이성친구들을 싫어했다가 갑자기 애먼 한국인들까지 죄다 미워졌다가 남편을 한에 서리게 혐오하고 증오하고 분노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니 내 인생이 지옥이 되었었다. 남편의 친구라면 경계심 부터 들었고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미리 원망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죽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원하지도 않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었다. 나를 정신병자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도돌이표처럼 다시 시작할랑말랑 하는 이 시점에서. 아직까지 내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도 못한 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나를 살릴까 하는 고민.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 비슷한 동료가 생겼다. 예견된 일이었다. 내가 정말정말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도록 고민했던 일이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내가 남편을 신뢰할 수 있을지,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내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내가 나 스스로를 잘 돌보고 나의 의견과 감정을 위해줄 수 있을지. 




내가 아는 단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나는 작년과는 비교도 안되게 감정적으로도 독립적이게 되었고, 나에 대해 더 잘 파악하게 되었으며, 더 넓게 보고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 어렴풋이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이 친구도 없이 왕따처럼 지내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나는 남편에게 좋은 친구가 있어서 재밌게 놀기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서로 조언을 주고받으며 도움이 되는 상황을 원한다. 다만 남편이 그 친구관계를 위해 나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나는 남편이 불행한 결혼에 갇혀서 평생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보내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건 내가 원하는 결혼생활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서로를 향한 사랑이 넘치는 부부가 되고 싶다. 다만 나는 정많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이 '친구'와 서로를 '사랑'한다는 대화를 나누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진심으로 내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 남은 여생을 그를 의심하면서 보내고 싶지도 불안에 떨며 보내고 싶지도 않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부관계를 이룰 수 있는 사람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둘이서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만약 나는 상황이 그렇게 까지 가는 경우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안다. 그럴 때는 차라리 나에게 먼저 알려서 내가 어떻게 할 지 선택권을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라 믿는다. 나를 믿는다. 결혼을 유지하던 이혼을 신청하던 내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지난 번처럼 남편의 뒤에 가려져서 소극적으로 남편에게 행동 똑바로 하라고 남편만을 잡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것이고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할 것이다. 그들이 순수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줄 것이다. 내가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게 표현하여 남편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만약 남편이 선을 넘는 행동을 또다시 한다면 그건 그의 선택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의 선택.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할 지 이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이혼도 두렵지 않다. 어쩔 때는 함께 있는 것보다 따로 있는 게 더 나은 관계도 있는 거니까. 그 때는 그런 결정을 하게 되겠지.


다만, 나는 그 새로운 친구분께 "우리 남편과 좋은 친구가 되어달라"는 말을 내뱉을 용기는 죽어도 없다. 그대신 "제가 좋은 친구가 되어드릴게요. 좋은 친구가 필요하시면 저에게 언제든 연락주세요. 개인적인 이야기나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고 싶으실 때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라고 말하기로 다짐했다. 그것 또한 그닥 큰 의미없다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한시간에 한 번 씩 이 문장을 곱씹으며 연습한다. 그녀와 만날 때까지.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비장하게 친구들과 만났다. 하지만 나는 곧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 지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랑 수다떨고 웃고 떠드는 순간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내가 누군가를 뼛속까지 싫어하고 미워하고 견제하는 걸 못 참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외로웠다. 나는 군인이지만 공포탄조차 없는 빈 총을 들고 나갔다.


그러니 남편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을 멀리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그냥 나만 손해였다. 나에게도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나 스스로가 박탈시키는 것과 같다. 나를 고립시키고 단절시키고 나는 더더욱 외로워 질 뿐이다. 나는 그래도 세상이 아직은 살만하다고 믿고싶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남편도 그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고, 선생님도 그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고, 내 주위에 다 좋은 사람들에 둘러쌓여있다. 그러면 내가 행복하다. 


지금은 안다. 그렇게 좋은 사람도 잘못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그 평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나의 의견일 뿐이라는걸. 그냥 나와 그 사람이 그 순간에 맞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그랬지만 과거에는 어땠던지 미래에는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그들을 견제해봤자 아무 소용도 아무 의미도 없다. 왜냐, 선생님도 처음에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했고 잘 따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그 뒤의 상황이 나에게 더 타격이 크게 다가왔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 작년과 다르다. 그리고 나는 나의 감정과 의견을 존중할 것이다. 그래고 현재와 미래는 내가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 나에게 했던 그 냉정했던 말들이 화살이 되어 남편에게 돌아가고 있다.


네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네 선택이야.

네가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선택했다니 유감이다.

그건 네 감정이고 네 책임이야.


내가 그동안 기꺼이 해주던 일들을 왜 안해주는지 혼란스러워했고, 그가 나에게 했던 말들을 내가 그대로 돌려주니 상처받는 것 같아 보였다.물론 내가 받은 상처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일이지만 ^^ 그에게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고 믿으시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해서 이중잣대를 들이밀려던 그의 주장을 원천 차단하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나의 입장을 고수했더니 그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로남불 하지 않고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기가 한 번 내뱉은 말을 지키려고 참는 모습에, 그래 그거라도 하니 다행이다 싶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야 했는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목매달고 나의 행복을 담보하고 있었던 것 같다. 통제 불가능한 과거를 후회하거나, 변하지 않는 타인에게 의지해서 그들을 바꾸려고 하는 노력은 하등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한 맺혀서 귀신되서까지 남편을 저주할 것 같다.


내가 만약에 같은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건전한 방법을 찾아 감정을 해소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쌓이고 쌓여서 폭팔하기 전에, 곪고 곪아서 터지기 전에. 분노를 참고 슬픔을 억누르지 말고 그때그때 내 마음을 표현하고, 다독이고, 위로 받고 사과 받을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스스로 이루어 낼 수 있는 주체성.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나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자유로움, 내가 타인에게 어떤 평가를 받던 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 노력할 수 있는 자존감.


한은 맺히기도 하지만 풀리기도 한다. 어떤 한은 결코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풀 수 있는 한이라면 어서 풀어야 한다. 내게 한이 서릴만큼 곡할 일이 있었어도 풀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극복해야 할 일이었다. 원없이 한없이 풀어내며 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그에게 기회를 준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다. 나처럼 유난떨지도 감정기복에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하지도 않고, 책으로까지 내서 동네방네 소문내지도 않고, 아주 조용히 그만의 방식으로 기다려줬다. 


그는 내가 재봉틀을 사서 바느질을 배운다고 했을 때에도, 캔버스를 사서 그림을 그린다 했을 때에도, 키보드를 사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나보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라고 해줬다. 내가 알바를 지원하거나 봉사활동을 가도 너를 응원한다고 해줬고, 취업에서 자꾸 떨어져도 생활비 걱정 보다는 너가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해줬다. 내가 대학원을 간다고 해도, 내가 인강을 듣는다고 해도, 내가 한 달을 한국에 다녀오고 싶다고 해도, 명절에 동생을 만나러 갈거라 해도 그는 나를 보내주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나 스스로 찾으라는 그의 말이 진심이었다. 내가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짐을 싸도 내가 대청소 하고 싶어서 짐을 정리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이혼하자면 나를 위해서 해줄 사람이다. 내가 그의 진가를 몰라봤다. 그리고 나는 남편이 기다려준 덕분에 더 큰 세상을 알게되었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내가 당연히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레 포기했던 도전과 경험을 했다.  


내가 그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남편 덕분에 내가 성장했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중심을 나에게로 옮기자 내 인생이 더 나아졌다. 더 맑아지고 더 깊어지고 더 넓어졌다. 내가 산위에서 타오르는 불길이라면 그는 작렬하는 태양이다. 남편이 진정한 대인이었다. 천조국의 그는, 그릇도 태평양이다. 




이전 11화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