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일 수도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가 없으면서 지혜가 있는 체 하는 일이다. 죽음이 사람에게 좋은지 나쁜지 모르면서 마치 그것이 가장 나쁜 것이라고 알고 있는 듯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비난 받을 무식이 아니겠는가? - 소크라테스
무려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말하길 “너 자신을 알라” 즉 너의 무지를 알라 라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을 얻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알고 더 큰 세상을 보고싶어 했는데. 결국 내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은 뒤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모습이 모순이라고 자신의 죽음 앞에서 말했다고 한다. 사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언젠간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인데.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였을까.
누군가에게 상처 받았거나 배신당했을 때 인격 살인, 영혼 살해라고도 표현한다. 살인 당한거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살아가는데 그 비통하고도 참담한 심정을 그 누가 알아줄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어떤 일에 마음이 아프다면 내 상태를 돌려서 뒤집어 본다면 내가 그만큼 그 사람에게 기대를 가졌고 그만큼 그 사람을 믿었고 그만큼 성심성의껏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그 당시의 상황들을 고려하여 그 순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가 나를 작정하고 속인게 아니라. 내가 사기결혼 당한게 아니라. 그냥 그 때 내가 몰랐다 끝. 그가 원래 그런 사람인지 몰랐다. 알았으면 결혼 안했겠지. 몰라서 그 당시의 최선의 선택을 한 것. 그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애초에 나와 꼭 맞는 완벽한 상대만 만나려 한다면 그 관계에 낭만이 있을까? 냉정한 현실만을 두고 경제적 수치와 사회적 인식과 그 사람의 배경을 샅샅이 본다면 완벽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의 우리는 그런 조건을 뛰어넘을 만큼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그 당시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것이고 그것이 그 당시에는 내가 원하는 최고의 결과이자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내가 모르는 것도 모르는 상황도 아직 많겠지만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이해하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메타인지를 높이고 생각의 관점을 넓히면서 이전에 내가 처했었던 상황이나 앞으로 내가 맞닥뜨리게 될 상황에서 조금 더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힘든 감정싸움을 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릇이 작아 한 사람이 주장하는 의도와 행동을 아직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본 단편적인 나의 모습에 그 사람이 생각하기에 최선의 방식으로 한 행동이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한 사람의 지식과 경험은 자신이 살아본 삶에서는 진실인 것이고, 아직 더 큰 세상을 접한 적이 없어 다른 나라에서 온 나를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고 하는 중이라고 그렇게 그 사람 말을 믿어주고 싶다.
내가 나를 위해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습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면 그러면 행복할까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한데 마음고생 안하고 좋은 면만 보면서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다가 뒷통수 크게 한방 맞으면 어떡하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만족한 돼지가 지금 그 순간 행복하다면 돼지의 입장에서는 충분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동물들은 배고플 때 필요할 때 사냥을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꽃을 즐기거나 햇빛을 받거나 하는 등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하는 행동을 한다고 하는데. 차라리 그게 나을까 매 순간 불안에 떨며 일어나지도 않을 일로 걱정을 하면 소용없는 일이니.
아니면 어떤 상황에서도 대비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나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대안을 세워놓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힘든 상황이 와도 내가 견뎌낼 수 있도록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나를 단련시키는 것이 나을까.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좋은 세월 낭비하는 것보다 그냥 그 순간 걱정이 없다면 행복을 만끽하고 걱정이 생기면 그 때 그 때 숙고하는 것이 나을까?
나는 왜 행복에 이렇게 집착하면서 왜 스스로 행복을 누리게 마음을 놓지 못할까. 나는 여전히 무지하다...
남편이 한글을 읽지 못하니 그냥 생각나는 아무거나 다 적어 보았다. 내가 나중에 비슷한 순간이 오면 지금 했던 생각들과 고민들을 기억하기 위해. 작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지금을 기억하기 위해.
만약 그런 일이 있어도 내가 모든 행동을 올바르게 했다면 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악조건 속에서도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냥 내가 최선을 다한 것처럼 나 이외의 사람들이 각자를 위해 최선의 선택들을 한 것이고 그런 수많은 선택들의 결과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물론 애초부터 상처받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내 통제 밖의 일이기 때문에 주체를 나로 두고 내가 어떻게 행동할 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더 큰 마음을 가지면 타인을 이해하는 깊은 공감능력과 더불어 그 사람이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 웃고 밝고 해맑은 사람 함께 있기만 해도 같이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사람. 친구나 직장동료나 어디든 그런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분위기가 확 산다. 민원인이 정신을 잃고 화를 내고 차분하게 대응할 줄 아는 사람. 옆 사람이 아무리 암흑의 아우라를 풍겨도 편안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상대가 아무리 유치빤스로 굴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사람. 그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다. 그런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상대에게 잘 해준다고 해서 그런 나를 만만하게 보고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함께할 가치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저질인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우리가 연애하지도 결혼하지도 않았을 것. 이 사람은 원래 선한 사람인데 지금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고 느끼니 일시적으로 이상하게 반응했을수도 있다. 내가 이 사람에게 충분히 안전하고 기댈 수 있는 대상이 되어주어 이 사람의 연하고 유한 모습을 보여줄 만큼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가치있는 일일 수도 있다. 가시돋힌 고슴도치같은 상대도 품어낼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카페에서 보기에도 달달한 한 커플을 보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대화하면서 상대의 모든 이야기에 웃어주고 다양한 표정으로 반응해주고 한마디라도 놓칠까 질문해주고 상대의 의견과 감정을을 물어봐주고.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귀엽게 봐주면서 눈에서는 하트가 쏟아져 나오고... 보고있는 사람마저 흐뭇하게 만드는 너무나도 예쁜 커플.
내 인생을 길게 본다면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를 위해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지금의 남편이든 남친이든 두번째 남편이든 누구든지 간에 그 순간에 내 곁에 있는 사람) 내가 존경할만한 사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 함께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 감정적으로 논리적으로 성숙한 사람, 내 마음을 헤아려 줄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현남편도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는 이미 그런 사람인데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그가 과거에 한 행동 때문에 현재와 미래의 그까지 그럴 것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은 남편이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아는데 내가 그것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남편의 모습도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배우자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그를 내가 조종 통제할 수는 없기에.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 이게 아휴 저 인간은 원래 저래 일생에 도움이 안돼 하고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원하고 그도 원하는 그의 모습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 없다.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시간뿐이다. 한 시간, 하루, 일주일, 한달, 반 년, 일년...
그가 원하는 대로 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이 아예 이루어 질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그가 하고싶은 대로 놔둔다고 해서 내가 손해보는 것도 절대절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견인차 역할을 내가 나를 위해 해주는 것 적어도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고 내가 깔끔하고 우아하게 행동한다면 그만큼 목표치에 다가가는 것.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와 함께 가기 위해. 우리도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