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떨림 Dec 18. 2021

죽다 살아난 기분이란게 이런건가!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이게 뭐야~이게 뭔일이야~"


하얀 연기가 자욱한 부엌. 가스레인지 위에는 시커멓게 탄 냄비 두개가 독한 유독가스와 연기를 내뿜으며 자신의 몸을 시커멓게 태우고 있었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남편이 들어오기도 전에 아이들과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들과의 만남이라 술을 진탕 마시고 오겠다 싶었다. 그래도 매번 필름이 끊길때 까지 술을 마셔도 자신의 집은 잘 찾아왔고 신변에도 이상이 없었다. 


항상 집에 도착해서 잠이 들었고 편하지 않은 속을 게워내는 작업도 집에서 해결했다. 택시를 타고오면 꼬박꼬박 결제를 했고 잃어버린 외투도 제대로 찾았다. 


과한 음주로 허기진 기분이 들때면 집에 들어오면 라면을 먹던지 밥을 먹던지 했다. 그랬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날은 뭔가 이상했다. 


나는 꿈을 꿨다. 생전 꿈에 잘 나오지도 않은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등장했다. 나와 아이들은 워터파크에 있는 고무보트에 타고 있었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보트 앞 부분에서 양쪽 끝을 잡고는 자꾸만 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고 보트를 이끌었다. 


나는 대체 왜그러냐며 그만하라고 했고 두분은 더욱더 열심히 그 보트를 물로 인도했다. 물속의 파도를 두어번 맞자 눈이 떠졌다. 새벽 3시30분이었다.


방문에 유리문이 설치돼 있는 우리집 특성상 부엌 전등이 켜져있는 것을 보게 됐다. 남편이 들어왔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케케 묵은 음식 냄새가 나길래 '또 먹나보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아~ 일어나기 귀찮은데 왜 불을 안끄지~ 알아서 끄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이불속에서 뭉개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하더라. 


방문을 열자 독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가스 불 위에서 타고 있는 냄비 두개가 내 눈속에 들어왔다. 정신없이 가스 불을 끄고 고무장갑을 끼고 냄비를 물속에 집어 넣었다. 유독가스를 내뿜는 냄비가 식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격한 수증기를 내뿜었다. 


거실 전등을 키자 뿌연 연기가 더욱 잘 보였다. 화가 나서 자고 있는 남편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며 깨웠다. 만취한 그는 무슨일인지 영문도 모른채 눈만 깜빡거리다 다시 잠이 들었다. 


한파특보가 내린 추운 겨울날 집안에 불을 다 키고 앞 뒤로 창문을 열고 잠자리로 들어갔다. 아이들에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주고 그렇게 추위를 이겨냈다. 잠이 들지 않아서 30분 가량 눈을 뜨고 있다가 다행히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5시였다. 이만하면 되겠지 싶어 문을 닫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화재 현장에서 나는 매운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며 내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동안 밤사이에 마신 유독가스의 영향이지 싶었다. 다행히 방문을 닫고 있어서 그나마 유독가스를 조.금. 흡입한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은 문을 활짝 열고 잠을 잤으니... 에휴...


다시금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초에 불도 붙였다. 친정 엄마에게는 간밤에 이런일이 있었다고 다행이라며 애기를 하고 통화를 끊었다. 그러다 갑자기 친정엄마가 다시 전화를 걸었고 "엄마가 잘 생각이 안났는데 새벽에 엄마가 자다가 갑자기 기도를 했거든? 근데 그 목소리가 너무 커서 잠에서 깼어"라며 간밤에 이상했다는 말씀을 하더라.


그리고 오후 1시 쯔음에는 시어머니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평소 용건없이 전화를 하시는 분이 아닌데 기분이 이상했다.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더니 마지막에 전화한 본래 용건을 꺼내셨다. 


"내가 간밤에 꿈자리가 안좋아서 혹시나 무슨일이 있나 싶어 연락했다. 새벽 1시30분에 눈이 떠졌는데 그뒤로 잠을 못자겠더라"


놀란 나는 간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말씀드렸다. 얼마나 다행이냐며 말씀하시고 조심하라고 당부 또 당부하셨다. 


모두가 우리가족을 살리기 위해 애썼던 밤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날 밤 늦지 않게 눈이 떠진 내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벼래별 생각이 다 났다. '만약 불이 났으면 애들을 저기로 대피시키고 술취한 남편은 저기 쌀자루에 옮겨서 끌고 나가야지~'라며 별 상상을 해댔다. 


남편은 이와중에도 아파트 내부에 설치된 화재경보기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궁금해했다. 찾아보니 대체로 아파트 가구 내부에 설치된 경보기는 열 감지식 경보기며 바깥 계단에 설치된 경보기가 연기 감지식 경보기라고 한다. 이유는 비용문제라며...


https://www.joongang.co.kr/article/16916690


사고는 갑자기 들이닥칠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방심하는 틈을 타 위험이 가깝게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 죽을 수 없다. 평안한 우리 가족에게 평범한 행복에 대해 다시금 일깨워주는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넘기려 한다. 


그리고 소중하고 뜻깊은 삶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를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쉬움 가득한 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