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아빠와 같이 처음으로 10km 마라톤을 뛰는데, 같이 페이스 맞춰가는 것도 연습해야겠다.'
"응. 알겠어. 금요일 저녁 발레 마치고 바로 울산집으로 갈게."
평일에 부단하게 나름 러닝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0km을 쭉 끝까지 달려본 적이 없던 차. 아빠가 토요일 새벽에 같이 뛰자는 제안을 해왔다. 매주 금요일 저녁 발레를 마치고 바로 집에 가서 자고 바로 새벽 러닝을 할 수 있게 짐을 챙겨갔다. 본가에 안 간지 정말 오래됐다. 한... 거짓말보태서 5년 정도 안 갔으려나? 주로 엄마 가게까지만 들렸지 집을 방문할 일이 잘 없었기에. 오랜만에 집에 가는 건 좀 설레기도 했다.
러닝연습이라는 서로에게 기분 좋은 핑곗거리 하나 덕분에.
엄마 아빠는 자식을 오랜만에 봐서 좋아하는 입가의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고, 나는 오랜만에 초등학생시절 때부터고등학생시절 때까지 쓴 추억의 내 방을 구경하며,추억에 잠길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오전 5시 30분에 만난 해
"자, 준비됐나? 가자."
"응"
야심 차게 러닝복을 입고,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맸다. 새벽 5시 40분 정도인데, 벌써 해가 밝아오는 듯하다. 아직 햇살은 따갑지 않고, 선선한 느낌이어서 달리기 좋은 때였다.
"러닝 코스를 기록할 어플도 세팅했나?"
"응"
그는 매일 혼자서 연습할 때, 러닝의 시작과 끝을 기록하는 앱을 철저하게 기록하는 걸 좋아했다. 70대로 접어들지만, 러닝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의 말을 따라 앱을 깔고 세팅했다. 그리고는 집 앞, 울산 태화강변을 따라 뛸 수 있는 러닝코스에 도착해, 러닝기록 어플 시작버튼을 누르고 달리기 시작했다.
'와... 오늘 날씨 너무 좋다.'
'와...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엄청 많네'
'이 시간에 뛰는 젊은이는 나 밖에 없어서 신기하네.'
'와... 이 시간에, 파크 골프 치러 나오시는 어르신들이 20명 이상정도나 계시네? 대박...'
이렇게 달리다 보면, 귓구멍으로는 신나는 노래에 흠뻑 취해서, 달리다가도,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많았다. 새벽 시간만 볼 수 있는 광경일까.(글 쓰는 습관을 조금씩 잡아가서 그런지, 달리는 순간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걸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참.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구나.'
초등학생 시절부터 많이 방문했던 운동길이었는데, 새삼 30대 넘어서 성인이 되어서 다시 운동하러 오니, 기분이 색달랐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세월에 따라 많이 달라져버린 풍경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한창 어릴 때 걸었던 강물은 물고기가 많이 지나다닐 정도로 가득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가의 물줄기가 확연하게 줄어든 게 보였고, 중간에 섬이 생기고, 엄청난 풀들이 성인남성 키만 한 크기로 수두룩하게 자라있었다. 계속해서 발은 앞으로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비슷하게 보이면서도 달라지는 세상을 혼자만 인지한 것이 자랑스러운 듯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다시 돌아가는 길. 오전 7시가 넘어가니 햇빛이 너무나도 쌔다.
'아. 너무나도 조용하다. 고요하다'
계속 달리다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게 하고, 발걸음을 힘차게 만드는 신나는 리듬마저도 싫증이 날 때가 있다. 발은 계속 땅을 구르고 있지만, 손은 귓구멍으로 향했다. 잠시 이어폰을 빼고 나니, 이어폰 하나 차이로, 나만의 시끄러운 세상에서 고요한 세상으로 순간이동한 느낌이었다. 고요함이 어색했지만, 한편으로는 러닝을 자주 하시는 분들은 이 고요함을 즐기며 달리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도 펼쳐보았다.
'그래. 신나는 음악이 힘차게 달리는 에너지를 주지만, 그 에너지는 오래가지 못한다.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의지는 외부에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끌어올리는 것임을 깨닫고, 가끔은 고요함의 힘으로 나아가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 나만의 걱정과 근심을 달리면서 털어내보자. '
나만의 러닝에 대한 정의를 세우며, 달렸다. 뭐가 정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본가에 오기 전 그렇게 허한 마음의 우울감도 달리는 내내 사라져 갔다. 잡생각들도 사라져 갔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 함께 5km 반환점을 돌고, 잠시 걷다가 마지막 스퍼트로 완주의 끝으로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