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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텍이 Dec 15. 2021

인간, 시간, 공간이 만들어낸 선

삶기술학교 뉴스레터 제삶지대 59호 2021. 9.10. Fri


독자님! 벌써 금요일이에요. 오늘은 뵙자마자 퀴즈 한 번 내보겠습니다. 인간, 시간, 공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바로 단어 끝에 공간 ‘간’자가 들어간다는 것! 제가 정해둔 답은 이것이지만, 왠지 여러 철학적 답변이 나왔을 것도 같아서, 독자님이 생각하신 답이 무엇일지 살짝 궁금해지네요.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는 것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저 세 개의 단어엔 모두 ‘간’자가 들어가요. 물론 각 단어 마다의 ‘핵심’은 전부 단어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요. 뒤의 ‘간’자를 뺀, 인 (사람 한 명) / 시 (어느 한 시점) / 공 (땅의 한 지점) 이렇게요.


그렇다면 질문 하나 더! 독자님은 ‘인간, 시간, 공간’ 뒤에 왜 ‘間 간’자가 붙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실까요? 이 세 단어들은 제가 너무나 당연하게 써오던 것 들이었는데요. 단어에는 전부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이 있지만, 늘 그걸 생각하기엔 피곤하기도 하고 습관이 아니라면 생각해 보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질문을 하는 저 조차도 답을 오래전부터 생각해 보진 않았어요.. 하하.. 그런데 얼마 전 어떤 문장을 보고 처음으로 왜 ‘간’자가 붙는지 곰곰이 따져보게 되었는데요.

제가 마주한 문장은 ‘시간, 공간, 인간 등 세상의 모든 존재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사이‘가 본질이다 – 신영복’ 이예요. 보자마자, '아 그러네? ‘間 사이 간’자가 붙은 이유는, ‘사이 간’만이 가지는 의미가 붙어야만 만들어지는 개념들이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 –' 하며 왜 ‘간’자가 붙는지 생각해 보게 됐어요.


제가 내린 답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그 ‘사이’ 안에서만 존재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 순간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흐르는 시간이 연속으로 이어진 공간들의 사이에 있기 때문에요. 우리는 한 시점에 태어나고 한 시점에 죽는, 시간이라는 사이에 살고 있고요. 한 지점과 지점이 이루어낸 공간 사이에 늘 발을 딛고 있고요. 그 사이 안에서 사람은 사람을 만나 관계라는 다른 ‘사이’를 만들어가야만 살아갈 수 있어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도, 저도 어느 한 순간에만 존재하진 않잖아요? 


언젠가 친구가 한 말이 있어요. 자신은 공통적이지 않은 점들이 모여 만들어진 선이라고요. 친구가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이었지만, 저는 그 친구의 말이 우리 존재를 설명하는 한 문장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하나의 수학적 명제 중에 ‘선은 점들의 연속이다’라는 정의가 있는데요 친구의 말과 수학적 명제처럼, 우리 우리 삶의 요소 하나하나가 모여, 시간 공간 인간이 겹치고 겹쳐 만들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것이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개개인이 모여 한 사회를 이룬다는 것, 내 곁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보다 경이로운 일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워서 ‘인간관계는 누구에게나 숙제’, ‘인간관계도 결국 체력 문제’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죠. 


한산에 온 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가요. 한 여름에 이곳에 와서, 벌써 가을이 되었어요. 저는 이곳이 첫 번째 직장이라, 첫 직장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인간 / 시간 / 공간 이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저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라는 큰 미션을 마음속에 숨겨두고 있었어요. 그때 느꼈던 그 긴장감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관계라는 건 사이를 두고 있는 상대 모두가 노력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늘 어렵고 조심스러웠던 마음이 이곳에도 옮겨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몇 달 전의 제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고, 제 안의 큰 변화를 겪고 있어요. 어릴 때 정말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 있는데요, 1+1은 2가 아니라는 말이었어요. 그런데 세상 만물이 서로 얽히고설켜있고, 셀 수 없을 만큼의 관계가 얽혀 있다는 것을 여러 번 체감한 지금에서야, 한산에 오고나서야, 우리가 사는 방식에선 1+1=2의 계산이 틀린 걸 수도 있겠다- 합니다. 저는 이 1+1은 2가 아니라는 명제를 삶기술학교 동료들을 만나면서 직접 피부로 배우는 중이에요.

한 사람이 시간과 공간과 인간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선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그 선들이 모아 한데 꼬는 거라고 봐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며 머리를 맞대고 산다는 것, ‘같이 일하는 관계‘를 넘어 서로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것은 선들이 꼬아지고 엮어져 연결되어 더 커다란 것을 이끌만한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 혼자로 존재하는 한 줄기의 선보다도, 더 단단한 세계를 갖게 된다는 것 아닐까요.


<동료> 지금 이 단어를 읽으시고 독자님의 마음에 떠오르는 분이 계신가요? 저는 지금 글을 쓰면서도 수많은 얼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있어요. 과거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우정을 나누었던 얼굴들부터- 지금의 삶기술학교의 구성원들까지요. 무언가 하나씩 해나갈 때마다, 지금 존재하는 이 순간이 오로지 나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 이 아니라, 그들과 만났기 때문에 그들과 손을 맞잡고 왔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는 종종 떠올리게 되어요.


독자님의 마음에 떠오르는 동료들처럼, 독자님도 누군가에게 1+1은 2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을 함께할 수 있는 하나의 선으로서 존재하고 계시다는 사실,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당연한 말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바쁜 이 세상 가끔 이 사실을 잊은 듯이 살게 되는 것 같아서요. ‘사이’에서 선을 엮어가며 살아가는 독자독자님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금요일이잖아요? 독자님도 일주일간 수고했다고, 자기 자신에게 위로 한마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주도 독자님이 안온한 날들을 맞이하길 바라며,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 사랑을 담아 삶기술학교 YON


공간과 사람, 사람과 공간
< MONOCLE – Copenhagen : healthy city growth >
( 코펜하겐 : 건강한 도시 성장 )

영국의 잡지 monocle에서 소개한 덴마크 코펜하겐의 콜로니하베입니다. 콜로니 하베는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동정원’이에요. 덴마크는 다른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숲과 열린 공간이 적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17세기부터 생겨난 개념이라고 하는데요.


이 monocle에서는 콜로니하베를, place to escape to city in the city ‘도시 안에서 도시를 벗어나는 곳’, 덴마크의 ‘휘게’ 정신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장소라고 소개해요. 콘크리트 정글 사이에 만날 수 있는 한 칸의 녹지 공간은 그 자체로 평안의 의미로 충만하지만, monocle에서는 또 다른 가능성의 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모노클에서 주목한 콜로니하베의 중요한 점은 ‘sense of commuity’입니다. sense of community 는 우리말로 ‘공동체 의식’이에요. 자신이 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인데요. 이 콜로니 헤이브를 소유한 사람들은 공동의 펍이나 정원 다듬기 위해 서로를 도우며 만들기 위해 모임을 가지는데요, 그 소속감은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해요.


이곳의 이용자 중 한 명은, 속해있는 콜로니하베 그룹에서 매 3주마다 저녁을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룰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이를 통해서 평소에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를 통해 다양성을 배운다고 해요. 커뮤니티를 통해 더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오히려 멀리 떨어져 있는 훨씬 비싼 어느 시골의 정원을 구매한다고 했을 때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콜로니하베로 평소에는 계급, 세대, 정치적 견해 차이로 다가갈 수 없던 사람들이 이 벽을 쉽게 무너뜨리고 다가갈 수 있는 장이 되었습니다. 좁게는 정원을 가꾸고 건물을 보수하기 위해 이미 지식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쉽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작은 정원에서 도시 생활에서의 위안을 얻음과 동시에 거기서 인간과 인간이 연결되어 만드는 커뮤니티로 개인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 이것이 콜로니하베의 핵심이에요. 이는 다 같이 함께 할 공동정원이라는 큰 도화지 위에, 각 선들이 만나 하나의 커다란 예술작품을 그려내는 것이죠.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공간과 도시의 모습을 덴마크의 콜로니 하베에서 엿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시장 : 농부시장 마르쉐@

마르쉐는 ‘시장’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에요. 그런데, 마르쉐는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과는 좀 달라요. 마르쉐 뒤에 @(at)이 붙은 것처럼 장소를 옮겨 다니며 언제 어디서든 열 수 있고, 단지 물건의 거래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이야기를 담는 곳이에요. 


매 회 바뀌는 주제를 품고, 계절을 담아내는 곳. 판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하고, 판매자와 소비자가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곳, 그 안에서 숨겨진 로컬과 각자의 가치가 투명하게 빛나는 곳. 이 순환을, 만들어 내는 것만큼, 지구를 생각하는 곳. 이 모든 것이 만나는 마르쉐를 가게 된다면 수많은 선들이 연결되는 무엇보다도 뜻깊은 장소를 경험하실 거예요. 


마르쉐 인스타 놀러가기


우리는 연결되어있다 : 음악 - Olafur Arnalds의 'We Contain Multitudes' 


아이슬란드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Olafur arnalds (올라퍼 아날즈) 의 we contain multitudes 에요.


이 곡의 앨범의 반은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 전에 만들어졌는데요. 이 기간을 거치며 고향을 떠나 시간을 보내며 ‘산다는 것’에 대해서 담았다고 하는데요.


올라퍼 아날즈는 이 곡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어요. “고향에서 떨어져, 다른 곳에서 분리된 삶을 사는 데에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어요. 내 마음은 전혀 다른 두 개의 문화에서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몸 안에 수없이 다양하고 모순적인 (=잘 섞이지 않는) 양상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요. 이 곡은 우리 마음이 일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발전을 이룬다는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올라퍼 아날즈는 살면서 받아들인 다른 요소들이 개인 안에서 결합되어 계속 발전되는 것을 곡을 통해 말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 주제의 메시지가, 뉴스레터의 주제와 연관이 된다고 생각해요.


We contain multitudes. 제목처럼 우리는 무수히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내 안의 섞일 것 같지 않은 문화들이 섞여 발전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커뮤니티로 연결되어 순환을 이루고, 또 세상의 다른 부분과 영향을 주고받아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내어 더 발전된 세상을 만들지요. 


우리 모두 하나의 도화지 위에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어요.

오늘도 묵묵히 하나의 선을 이어나가는, 자기신의 삶을 살고 계신 독자님의 하루에, 존경과 응원을 보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에 뵐께요!


- 독자님을 응원하며 삶기술학교 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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