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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선산 방문 길

부모님 묘역을 마주하며ᆢ

설날과 입춘이 지나서인지 바람결이 한층 부드럽다. 선영의  산아래 펼쳐진 저수지의 수면물결이 유난히 넘실 거린다.  저수지마다 최고 만수위를 채우고 있는  겨울철의 풍부한 담수량 때문일 것이다.  다가올 농사철을 기다리는 충만된 수량이

들판에 퍼져나갈 듯 기대감에 출렁인다.


고향 선산입구 언덕을 자동차로 천천히 진입해 본다. 휑하게 드러난 나뭇가지와 겨울풍경이 다소 낯설게 나를 맞이하는  느낌이다.


그동안 꽃피는 봄이나 여름휴가 때 그리고 가을  밤수확철에 주로 찾아왔다.

이렇게 추운 계절, 선산을 찾은 경우가 드물었던 이유일 것이다.


선영을 덮고 있는  촘촘한 잔디는  연갈색으로 말랐지만 어쩐지 푸근함을 준다.  아마도 부모님 묘역이 있어  그런 것 같다.


한동안 부모님 묘역 앞에 우두커니   있다.  이내 망연자실 상념에 빠져든다. 부모님의 살아생전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 세상에는 물질적 흙 한 줌만을 남기고 가시지만 우리의 가슴속에는 많은 것을 남기셨다. 평온하고 자애로운 기억들과 푸근한 추억들을 가득 채우시고 영원 속으로 떠나셨다.


이곳은 삼대독자셨던 조부님의 오래전 선대로부터 내려온  선산이다. 어릴 적 매년 시제를 맞으러 늦가을 녘에 이곳을 오가던 때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교통이 불편하던 어린 시절, 지름길인 이십 리 들판길을 가로질러 걸어 다녔다.

귀갓길은 항상 늦은 밤중이었다. 하얀 달빛아래 찬이슬을 밟으며 줄지어 논두렁길을 걷고 수로길을 지나야 했다.


하얀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부친께서 항상 앞장을 서셨다.

부친께서는 주로 한복을 애용하셨는데 이는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 복식이었다.


입을때마다 세탁하여 풀을 먹이고 그늘에 말렸다. 다듬이질을 하고 카라 부분은 매번 흰색동정을 사다가 바느질로 붙여야 했다. 또한 매번 인두와 숯불 다리미로 세심하게 다림질을 하였다. 모든 것을 고스란히  집에 계시는 모친께서 감당해 내셨다.

이 또한 모친에게는 빛 바래져 가는 종가집 종부의 숙명이었다.

그렇게 차가운 늦가을 밤 들판을 걸어갔던 추억이 가끔 인상 깊게 떠오른다.  밤중에 멀리서 적막을 깨고 들려오던 격지마을의 개 짖는 소리가 지금도 내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전통예법에 익숙한 선친께서도 장차 영면장소를 미리 여기에 정하시고 가셨다. 사후세계를 믿지는 않으셨지만 후손들이 돌봐주는 것을 내심 바라셨을 것이다.


오늘 이렇게 부모님 묘역 앞에  다시 서보니 이러한 장소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에 관대해진다. 즉 실증적 의미를 떠나서  부모님과의 옛 추억을 소환해 줄 수 있는 현실적 장소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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