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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집  아재

( 가족소설 2장)

재너머 이 층집  관철아재의 집은 인근지역에서 보기 드문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양철지붕의 이층 집이었다.


상훌은 고개너머 양철집 앞을  지나갈 때가 많았다. 번잡스러운 형님인 상둔의 큰 동네 마실길에  어린 남동생인 상훌을 자주 동반시켰기 때문이다.

장남인 상둔은 여동생 셋을 건너 태어난 남동생인 상훌이가  마실길 동반에 아마도 만만했을 것이다.


양철집아재 관철은 그 당시 다소 우락부락한  호인의  인상이었다. 상훌을 볼 때마다 장군이 왔냐며 말을 걸어왔고 뚫어지게   어린 상훌을 바라보았다.  그때마다 상훌은 아재의 강한 시선을 피하고자 매번 애쓰곤 하였다.

 

물론 관철아재의 그런 행동은 관심의 표현이었다. 상훌네가 이 십리밖 들판 건너 송당촌에서 재넘어 윗집으로 이사 온 후 태어난 첫 사내아이였고  어릴 적만큼은 외탁이 강하여  우량아였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관철아재는 상훌의 삶과 진로에 항상 관심을 가져주었다.


관철아재는 세력가인 부친의 늦둥이로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큰 조카들 몇은  그보다도 연배가 높았다. 조카들 중에 대기업 사장, 주요국 대사 등이 나왔지만 그는 대학을 나오고도 묵묵히 집안의 많은 토지를 관리하며 고향집을 지켜온 순탄한 분이었다.


그래도 상훌이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관철아재도  눈물 흘리며 고생하던 때가 한 번은 있었다고 한다.

논산훈련소 군대시절이었다. 훈련이 얼마나 고됐던지  고향집 쪽인 임천 성흥산을 바라보며 울기도 많이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권력과 뒷백이 난무하던 그 시절에도 군대훈련소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상훌이가 어릴 적 어느 해던가 그 아재 부친이  노환으로 상을 당했다.

장례식전야에 몇 날동안 참나무 화톳불이 타올랐다.  호상으로 밤마다 빈상여놀이가 행해지기도 했단다.


출상날 상여앞를 인도하던

만장이 아흔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 집안의 위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만장들이 신작로

수백 미터를 줄지어 따라와  말랭이 묘지가에 빙 둘러 꽂혀 펄럭이던

그 장례식날이 상훌은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상훌이 최근에 만났던 80대 어르신은 자신의 선친생전을 회고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 선친장례식 때 만장이 아흔아홉 개였다고 깊은 감회에  젖어하면서 가세가 기운 현실을 씁쓸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상훌은 그 만장의 숫자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그 어르신의 집안이 대단했음을 한 것 치켜세워 주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상훌의 젊은 동료는 그 의미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상훌은 쉽게 설명하여 요즘으로 말하자면 장례식장에

근조기나 화환의 숫자가 아흔아홉 개였다고

말해주니 그재서야 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상훌은 요즘의 근조기나 화환보다 옛날의 만장이 무개감이나 의미가 더 컸을 것이란 부언을 덧붙여 주었다.


​재너머 양철집 아재 부친은 일제강점기 법무시설의 기관장이었다. 위세가

그럴 만도 했다.

또한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일면인 친일파의 주류였으니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그 아재가 상훌이 부친의 외가 육촌이 되니

뒤틀려버린 우리 현대사에 어쩔 수

없는 아쉬움만 남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이 소위 이 시대의 주류에 녹아들었다.


물론 상훈은 그 후손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래전 상훌은 귀촌한 매형과 시국대화 중 인상깊이 들었던 한마디를 떠올렸다. "친일, 보수, 진보가 그동안 어떻든 우리나라가 극한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되었다."


대 때 상훌은  고향에 온 관철아재 큰 조카를  한번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삼성의 중간간부였다.

그 후 상훌의 대학시절 우연히 그분의  삼성 내에서의  위상을 알게 되었다.


상훌은  같은 학교 삼 년 선배와 하숙집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선배는 삼성인사팀에서  근무하다가 전문직을 원하여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상훌은 그에게  관철아재 큰 조카 예기를 꺼내게 되었다.


그 선배는  상훌이 삼성의 문 상무이사를 안다는 것과

같은 고향이라는 것에 경외롭게 바라보던  선배의 시선을 잊을 수가 없었다.

문 상무이사의 그곳 내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삼성인사팀의 문 상무이사는

케이대를 졸업하고  고시준비 중에 동기들의 강한 요청으로 삼성에 입사했다고 한다. 친화력이 뛰어난 그는 법조계 등과 밀접하여 삼성 내의 마당발로 통했다고 하였다. 몇 년 후 그는 전자사장에 취임하였다.

ㅡ3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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