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와 도피의 잘못된 선택을 끊어내기 위한 과정
내가 선태한 회피와 도피가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불편하거나 불안한 감정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그것을 피하려는 반응을 보인다.
특정 과목이 어렵거나, 새로운 환경이 낯설거나, 예상치 못한 실패를 경험할 때 아이들은 그것을 ‘위험’으로 인식하고 회피하려 한다. 그리고 회피가 반복되면 도피로 이어지고, 결국 완전히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반응은 어른들에게도 다르지 않다. 회사에서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경험을 한 사람은 특정 프로젝트나 상사를 마주할 때 객관적인 무게감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현실보다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부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 개념을 설명할 때 ‘회피 행동’과 ‘도피 행동’을 구분한다. 도피 행동(escape behavior)은 이미 경험했거나, 경험 중에 혐오 자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특정한 행동을 하는 것이고, 회피 행동(avoidance behavior)은 혐오 자극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그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결국, 두 가지 행동 모두 우리가 불편함이나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방어 기제로 작동한다. 문제는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특정 대상에 대한 거부감이 강화되고, 점점 더 많은 것을 피하려는 습관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불편한 것을 피하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려움의 크기가 커지고 결국 완전히 도망쳐버리는 상황을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방어 기제를 만들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내가 두려워하고 피하는 이 대상이, 정말로 평생 도망쳐야 할 존재인가?”
“혹시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낸 오해는 아닐까?”
나는 무엇을 회피하여 왔는지 떠올려 본다.
난 수영을 잘하지 못한다. 어릴 때 수영 시험을 억지로 치르면서 숨이 가빠지고 힘들었던 기억이 쌓였다. 이후 물놀이를 즐기기는 했지만, ‘수영’이라는 정형화된 활동을 해야하는 상황을 회피했다. 물 자체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수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피했다.
아마도 수영만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피하며 살아왔을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스스로의 세계를 좁히고 있다. 실패할까 봐, 힘들까 봐, 불편할까 봐. 그렇게 쌓인 회피는 결국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한한다.
회피와 도피를 넘어, 성장의 선택을 하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봐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위기를 피하고 있는가?"
"어떤 과거의 경험이 만든 착각을 피하려 도망치고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일방적인 보호보다는 그것을 극복하는 경험이 진짜 나를 보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두려움을 마주한다면, 오히려 새로운 경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회피와 도피가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의식적인 습관이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는 벽을 쌓게 된다.
정승호 시인은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에서 벽에 대해 말한다.
"문 없는 벽은 없습니다."
"모든 벽은 문입니다."
"벽은 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벽 없이 문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벽은 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모든 문에는 벽이 있다. 결국 벽은 나를 가로막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성장으로 이끄는 길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벽에 막혔던 만큼 문을 만들어 성장해왔던 것이다. 문이 막혀 있다고 회피하고 도망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벽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난 앞으로도 수 많은 벽들을 만나 계속 더 많은 문들을 만들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