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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Apr 18. 2024

초빼이의 노포 일기[인천 남동구 간석동 부암갈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천 최고의 돼지생갈비 집의 귀환.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듯이 사람과 식당에도 인연이 있다는 것을 초빼이는 믿는다. 

어느 날 무심히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지인을 따라 찾았다가 먼저 다니던 지인보다 더 깊은 인연을 맺기도 하며, 기대하고 찾았다가 깊은 실망감에 다시는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거나 아무 기대 없이 찾았다가 마음속 깊이 담아두는 그런 인연들이 생겨난다. 사람이나 식당이나 인연을 맺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사람들 간의 인연에는 많은 요소들이 작용을 하는데 반해, 사람과 식당의 인연에는 '음식' 하나만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얼마나 명료한 관계이자 인연을 맺기 위한 조건이던가?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렇게 한번 맺어진 인연은 마치 얇은 유리병 같아 세심히 다루지 않으면 쉽게 깨진다. 한 발자국만 잘못 디디면 무너질 수 있기에 소중하게 다가가야 한다. 상형문자보다 더 어려운 형이상학적인 말로 가득 찬 철학 서적을 읽듯,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공을 들여야 한다. 그제야 낚싯줄보다 더 가느다란 인연이 자리할 수 있는 틈을 조금 내어준다. 사람들 간의 어설픈 인연보다 좋은 음식을 내는 식당과의 연이 때로는 더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전생에 쌓은 5백 겁의 인연이 현생의 옷깃 한 번 스치는 인연이 되고, 1천 겁의 인연으로 한 나라에 태어나고, 2천 겁의 인연으로 하루 동안 길동무가 되며, 5천 겁의 연이 쌓여야 한 동네에서 태어날 수 있으며, 7천 겁의 인연으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고 한다. 같은 땅에서 태어나 연을 맺고 단골이 되어 애정을 가지는데 필요한 전생의 '선근(선한 결과를 받을 수 있는 원인)'은 얼마나 쌓여야 되겠는가? 


식당을 찾는 손님의 입장에서도 함부로 대할 수 없으며 손님을 맞는 식당의 입장에서도 한번 스쳐가는 손님들에게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우연찮게 이어진 인연의 끈이 훗날 어떤 형태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날그날 마주하는 음식에, 사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제야 손님이나 식당은 진득한 인연을 맺을 준비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어렵고 지난한 일이다. 그러기에 더욱 소중하기도 하다.  

인천 간석동에는 누구에게 소개해도 부끄럽지 않을 기막힌 고깃집이 하나 있다. 초빼이와는 10년 넘는 연을 맺은 곳으로 인천 남동구 간석오거리 역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부암갈비'가 바로 그곳이다. 이미 많은 방송에 방영된 곳으로 이 집은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게다가 평일에도 '웨이팅은 기본, 포기는 선택'이라는 공식이 일상화된 곳이라 방문 일자나 시간의 선택이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집이 몇 달을 넘게 문을 닫는 일이 생겨 버렸다. 처음엔 '무슨 일이 있나?'라고 걱정한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몇 년 전 이 집 1대 사장님께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 한동안 매장에 얼굴을 비추지 않으셨던 적이 때문에 드는 당연한 걱정이었다. 다행히 조금 더 나은 식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내부 인테리어 공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을 놓게 되었다. 새 단장을 했으니 당연히 찾아가는 것은 인지상정.

2024년 3월 초에 깔끔해진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부암갈비를 찾던 날 함께 동행했던 분이 사장님과 굉장히 잘 아는 분이라 오래된 베테랑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누며 대기줄에 합류했다. 단골에 사장님의 지인이라도 '지인 찬스' 따위는 통하지 않는 곳. 절대 예외는 없었다. 30여 분을 넘게 밖에서 기다리다 겨우 입장하였다. 3월이지만 아직도 저녁 바람엔 겨울의 흔적이 끈적하게 남아 있던 날이었다. 

부암갈비의 가장 좋은 점은 사장님께서 직접 갈비 부위를 선별하여 구매해서 포를 떠서 내주신다는 것이다. 다른 고깃집의 갈비에는 목살이나 다른 부위의 고기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 집에서는 항상 갈비 부분만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이곳을 다닌 10여 년 동안 한 번도 질 나쁜 고기나 잡내 나는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좋은 부위만 선별하기에 불판 위에 오래 올려놓아도 고기가 쉽게 퍽퍽해지지 않는다. 부암갈비와 초빼이의 인연은 이런 '양질의 고기'로 맺어진 인연이다. 양념이 전혀 없는, 생갈비임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입안에 넣으면 고소함이 극치를 이룬다. 요즘 유행한다는 '드라이 에이징'이나 '워터 에이징'과 같은 현란함이 없어도 투박한 이 집의 고기는 항상 최고의 수준이다. 


빈자리에 앉자마자 생갈비 2인분(두 판)을 주문했다. 

이 집에 가면 언제나 '맛있고 신선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신뢰'가 가슴속 깊이 탄탄하게 버티고 있다. 불판에 오래 올려둬도 퍽퍽하지 않은 부위만 고르다 보니 재료의 로스(loss) 분도 많다. 그래서 이 집의 고깃값은 상대적으로 다른 고깃집에 비해 조금 비싼 편이다.(사실 인천의 돼지고깃집 중 가장 비싼 편이다.) 하지만 몇 천 원 더 지불하는 돈이 부암갈비에서는 전혀 아깝지 않다. 심하게 다이어트 한 지갑을 한 달 더 가지고 다니면 된다. "어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顔)가... 아니 맛을 모르는 사람이던가?" 


이번에 찾아가니 큰 변화가 있었다. 건강을 회복한 후 다시 매장에 나오신다던 1대 사장님도 보이지 않고 부인이신 여자 사장님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직원들도 거의 모두 바뀌어 예전에 계시던 베테랑 직원 한 분만 제외하곤 모두 바뀌었다.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 직원께 여쭤보니 다시 1대 사장님의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계신다고 한다. 여자 사장님께서는 간병을 위해 매장에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 현재는 2대 사장님이 주도하여 매장을 운영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마음 한편이 훅 꺼지며 가라앉는다. 덕분에 매장에서 직접 포를 뜨던 갈비도 고기 납품업체에서 받게 되었다고 한다. 


안으로 털어 넣는 소주잔의 빈도가 잦아졌다. 먼저 주문한 고기를 먹은 다시 2인분을 추가했다. 여전히 집의 갓김치는 몸을 움츠리도록 농익어 있었고, 고추 장아찌는 식도를 긁고 내려가는 듯 심하게 매웠다. 시간이 흐르자 다른 직원분이 아이스크림 컵에 계란을 풀어 계란말이를 만들어 주신다. 돼지기름에 구운 계란말이 때문에 집을 찾은 적이 있을 정도로 녀석은 별미이자 집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마음이 허한 것인지 속이 허한 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애매모호함이 깨끗이 흘려보내려 소주잔을 더 끌어당겼다. 다시 안줏거리로 젓갈볶음밥을 추가했다. 부암갈비의 대표적 소스 중 하나인 '갈치속젓'을 넣어 볶은 젓갈볶음밥은 오랫동안 고기를 먹어 기름진 입안을 깔끔하게 씻어내 준다. 은은히 피어오르는 '쿰쿰한' 젓갈향이 굉장히 매력적인 음식이다.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달리기를 한다'던 금성무의 독백이 이제야 마음에 와닿는다. 초빼이도 우울해진 마음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음식'을 먹었다. 금세 젓갈볶음밥을 다 비워버렸다. 속을 채워도 무언가 '허'하다. 


오랜만에 찾은 부암갈비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처럼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여전히 맛있는 음식으로 사람들과의 이어진 연의 끈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모든 음식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까지 많은 이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래야 부암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떠 올랐다.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몇 년 전부터 2대째 사장님에게 가업을 물려주기 위한 준비를 하는 듯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명나라 말기의 격언집으로 '동양의 탈무드'라 불리는 '증광현문(增廣賢文)'에는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일대신인환구인(一代新人煥舊人)'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장강의 앞 물결은 뒷 물결에 밀리고, 새로운 인물은 옛사람을 대신한다"라는 의미다. 자연스러운 승계이든, 환경의 변화에 의한 승계이든 이렇게 노포의 한 대(代)가 시들고 새로운 세대가 그 뒤를 잇는다. 오랜 시간 인연(因緣)을 이어 온 사람으로서 부암의 앞으로의 행보에 좋은 일만 생기도록 기원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입구 바로 앞의 테이블 하나는 없애는 것이 직원들과 손님들의 동선상 좋을 것 같다는 것? 통로까지 막아버리니 조금 번잡한 느낌이 들었다.   

* 참고 - 부암갈비 편을 올리는 2024년 4월 18일, 부암갈비가 임시 휴무를 했다. 갑작스러운 상을 

  당했다고 공지것을 보면 아마도 1대 사장님의 상이 아닐까 추측한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1대 사장님의 건강이 많이 좋지 않다는 전언을 들었다. 비록 직접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멀리서나마

  고인의 명복을 기원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메뉴추천]

1. 2인 이상 방문 시 : 돼지생갈비 + 젓갈볶음밥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부암갈비 건너편 류카공업사에 주차 가능. 월~토는 18시부터 23시까지, 일, 공휴일은 16시부터 23까지

    이다.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인천지하철 1호선 간석오거리역이 가깝다. 

2. 수~월 11:30~23:00 / 정기휴무 매달 3번째 화요일 / 라스트 오더 22:30 

3. 참고 

    - 평일에도 웨이팅을 해야 한다.  

    - 젓갈볶음밥은 꼭 드셔보아야 한다.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인하찹쌀순대, 황해모밀냉면, 태화각, 삼화정, 사곶냉면, 유키돈까스, 삼대청국장, 명월집, 

      문화반점, 삼강설렁탕, 맷돌칼국수, 대전집, 토시살숯불구이, 해장국집 등

    - 2차는 자리를 조금 이동하여 인천 구월동 인근의 음식문화거리나 만수동 일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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