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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un 27. 2024

초빼이의 노포 일기[전남 목포시 중동 장터식당]

어영부영하다가는 발도 들일 수 없는 목포 꽃게 요리의 정점. 장터식당. 

목포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어떤 말로 정의 할 수 있을까? 

영화와 오래된 유행가의 제목처럼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도 떠 오르고, 1897년 외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된 '개항장'이라는 말도 떠 오른다. 하지만 초빼이에게 있어 목포는 '전라도 음식 문화의 보고'라는 말이 더 무게감 있게 느껴졌다. 전라도 일원의 풍부한 물산들이 영산강과 그 지류를 따라 내려와 목포에 도착하여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 떠나는 발판이 되는 도시가 목포였다. 그래서 목포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물자 수탈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무엇이든 모자람이 없는 도시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시절 목포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고, 목포의 음식문화도 꽃을 피웠다.   


남해와 서해의 풍부한 어패류와 인근 섬들의 다양한 해산물이 목포로 몰려들었고, 나주평야와 전라도 일원에서 생산된 풍부한 곡식들이 목포에 쌓였다. 그 모든 물산들이 모이며 목포는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었다. 거기에 전라도 사람들 특유의 손맛이 더해졌으니 무엇을 더 바랄까? 그렇게 목포는 '전라도의 부엌'이 되었다. 


목포를 대표하는 음식은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흑산도의 홍어가 목포에서 식탁에 올랐고 갈치는 조림이 되어 손님들에게 나왔다. 우럭은 간국으로 초빼이들의 속을 달랬으며 준치도 무침이 되어 술안주가 되었다. 하다못해 평범한 백반 식당마저 목포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을 끌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수많은 목포를 대표하는 음식 중 초빼이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 두 가지가 있는데 꽃게와 낙지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꽃게와 낙지는 전국 어디를 가서도 볼 수 있는 평범한 식재료이지만 이곳 목포에서는 그 평범함이 특별함이 된다. 그 특별함을 내주는 식당을 이제야 소개한다. 


이 집을 알게 된 것은 초빼이의 기억으로 10년이 훨씬 넘었다. 당시 초빼이가 맡고 있던 업무는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라는 어린이 오케스트라 교육 사업이었는데 이 사업이 9시 뉴스데스크를 타고 전국에 소개되며 전국적으로 업무 협약 및 어린이 오케스트라 사업에 대한 컨설팅 수요가 굉장히 많았었다. 때마침 전국 규모의 아동복지재단의 전남사업본부에서 연락이 와 업무 협의를 위해 당시 회사의 본부장님과 목포를 찾았던 길. 이런저런 업무협의가 끝나고 그분들과 목포의 가장 유명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겸 간단한 회식을 한 후, 본부장님과 따로 소주 한 잔을 하기 위해 추천을 받은 집이 목포의 '장터식당'이었다. "여기는 이 지역 사람들만 자주 찾는 정말 괜찮은 집"이라는 수식어도 으레 따라붙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식이 있던 당일은 너무 늦어 찾지 못하고, 다음날 점심 식사를 위해 추천받은 식당을 찾았었다. 목포시 중동의 장터식당이 바로 그곳. 일본의 영사관으로 쓰이다 지금은 목포 문화원을 거쳐 목포 근대문화역사관으로 쓰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장터 식당의 가장 유명한 메뉴라는 꽃게무침과 당시에는 '꽃게살'이라 부르던 메뉴를 주문했다. 싱싱한 꽃게를 먹기 좋게 살만 발라 매콤달콜한 양념에 버무려 내주는 꽃게살과 꽃게를 잘 분리해 같은 양념에 버무려 내주는 꽃게무침에 가뜩이나 술 좋아하시던 본부장님과 초빼이는 눈빛 한 번 교환 후 바로 소주를 주문했다. 싱싱한 꽃게의 향과 매콤 달콤한 양념향, 그리고 고소한 참기름 향이 중첩되어 코를 간지럽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 다행히 함께 출장을 갔던 본부장님도 원체 술을 즐기시던 분이라 서로의 코드가 맞았던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밥은 먹지 않고 소주만 대여섯 병을 마신 후 열차 시간에 임박하여 가게를 나섰었다. 겨우 열차 출발 2분 전에 목포역에 도착, 기차에 올라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서울에 도착해 있었던 기억도 선하다. 


꽤 오래된 기억이지만 목포의 '장터식당'에서 처음 만났던 꽃게무침과 꽃게살은 초빼이의 인생에서 처음 맛보았던 음식이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었다. 사실 그 후로 목포 여행이나 출장이 몇 번 더 있었지만 아쉽게도 함께 했던 일행들과 일정상 다시 들리지 못했다. 가끔 장터 식당 앞을 지날 때도 있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문을 닫아버린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이 집과 연(緣)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장터식당의 '꽃게살'에 대한 기억은 가슴속 깊이 자리하며 사라지지 않았다. 초빼이의 노포일기에서 이 집의 음식을 소개하고 싶다는 욕심이 너무나 강렬했다. 사실 조금 더 일찍 찾았어야 했는데(책의 교정을 보는 시기라 곧 출간될 노포일기에는 싣지 못한다.)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목포의 노포들에 대한 취재 일정을 잡게 되었다. 목포에 도착한 후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바로 이 '장터식당'이었다. 


첫날 저녁 부푼 가슴을 안고 찾았지만 마감시간에 걸려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둘째 날 사람들이 많은 점심시간을 피해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방문하여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입구에 줄을 선 사람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여 조금 수상했다. 그래서 가게로 가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재료 소진'으로 문을 닫는단다. '아침 일찍 찾아올 걸'하며 후회가 앞선다. 괜히 여유 부리다 둘째 날도 실패. 다음 날 오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해서 마음이 급해졌다. 직원분이 목포의 신도시인 '남악과 하당'에 분점이 있다고 안내해 주신다. 다행히 하당 쪽에 숙소를 잡았기에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하당점으로 갔다. 다행히 하당점은 유흥가와 주택가의 경계선 정도에 자리하고 있어 여유 있게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매장 문을 열며 "혼자인데 식사 가능할까요?"라고 물으니 어서 와 앉으시란다. 아주 오래전 본점을 찾았을 때도 이랬던 것 같다. 서글서글한 전라도 사투리로 반겨주시던 아주머니 사장님의 목소리가 떠 올랐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꽃게살'과 보해 잎새주 한 병을 주문했다. 분점에서 일하시는 직원분은 독특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쓰신다. 뜻하지 않은 이질적인 사투리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윽고 갖가지 반찬들이 상 위를 채우기 시작한다. 전라도의 밥집들을 찾으면 좋은 것은 어지간한 반찬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을 낸다는 것이다. 서울의 많은 식당들과는 달리 중국산 김치를 내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물론 목포에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은 다녀보지 못했다.) 최소한 김치만큼은 자신들의 집에서 담근 김치를 내는데 이런 점이 참 좋다. 목포의 노포들이 지키고 싶은 마지막 자존심이리라. 묵직하지만 깊은 맛을 가진 전라도식 김치의 존재감도 존재감이려니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김치 맛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곰삭은 전라도 김치를 한 점 집어 밥 위에 올린다. 그리고 한 술. 딱 한 수저의 밥과 김치면 그 식당의 음식솜씨가 가늠이 된다. 왜 예전에는 식당의 김치 맛으로 그 식당의 음식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말도 많이 하지 않았던가? 장터식당 하당점은 갓김치가 굉장히 좋았다. 평소에 먹던 갓김치의 '서울스러운 맛'은 근처에 얼씬할 수도 없는 강력한 맛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해주신 갓김치에 입이 길들여진 탓에 입에 넣자마자 전라도 갓김치 고유의 강한 향을 알 수 있었다. '갓'이 가진 고유의 향은 어느 향수보다 더 매혹적인 향을 피워 올렸다. 짐작건대 여수의 '갓'이리라. 배추는 해남의 것일 테고. 전라도 지역 식당 사장님들은 음식의 식자재를 고르는 것부터 공을 들인다. 그래서 오히려 음식의 맛을 손님에게 직접 묻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어째 음식이 입에 맞는지라?"라는 질문을 던지며 답을 듣지도 않고 "우리 김치는 해남 배추를 쓰지라. 갓은 여수 것 인디"라며 원산지 증명도 확실히 해 주신다. '우리 음식이 맛있냐?'라는 의미보다는 '우리 음식은 이런 음식인데 그 맛을 알겠냐?'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자신들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갓김치와 우거지 된장국에 소주 반 병을 비웠다. 그냥 '보통의 된장국'이라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들이켰다가 한 입에 국물의 절반을 마셔버렸다. 우거지 1톤 정도의 향을 추출하여 이 작은 국그릇에 모두 때려 넣은 것 같은 느낌이다. 정말 맛있는 우거지 된장국. 오늘에서야 알았다. 우거지 된장국 하나도 이곳 목포에서는 술안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드디어 꽃게살이 상에 올랐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날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때도 흰색 멜라민 그릇에 소박하게 담겨 나왔었고 자리에 놓자마자 고소하고 달콤한 향을 뿜으며 그렇게 다가왔었다. 꽃게살 무침을 한 수저 뜬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음식에 대한 초빼이의 경외심이다. 절대 어제 밤늦게까지 마신 술 때문은 아니다. 입에 넣자마자 순식간에 꽃게살이 사라졌다. 아니 증발해 버렸다. '아 역시 한 입에는 음식의 맛을 제대로 알 수 없지'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한 술 더. 장터의 '꽃게살(무침)'은 아마도 초빼이가 먹어본 꽃게 중 가장 신선하고 부드러운 맛을 가졌다. 한술 가득 입에 넣었는데도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 입에 넣고 수저를 빼며 입을 다무는 순간 '스르르륵'. 뒤늦게 매콤 달콤한 양념의 맛과 고소한 참기름 향이 따른다.

목포, 아니 전라도의 지역 소주 '잎새주'가 이 음식에는 잘 어울린다. 서울의 소주와 달리 조금 쓴 맛이 강하고 끝까지 강렬한 맛을 이어가는 이 지역의 소주는 갖은양념의 꽃게살을 한 입 먹은 후 마시면 입 안을 말끔히 씻어준다. 꽃게살 무침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행여 양념 한 방울이라도 바닥에 흘릴까 조심하며 숟가락을 놀렸다. 잠시 소주병에 눈을 돌리니 알코올이 이미 모두 증발해 있었다. 다시 소주 한 병 추가. 꽃게살 무침 그릇이 절반 정도 빈 상태. 여기서 함께 내 준 밥에 꽃게살을 올려 비비기 시작한다. 따뜻한 밥 위로 꽃게살을 올리니 스르륵 살이 녹아버린다. 김 한 장으로 수저를 덮어 입에 넣는다. '김'이라는 식재료의 마법이 시작되는 순간. 김은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의 비빔밥이나 볶음밥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을 수 십배 끌어올린다. 


찬으로 나온 콩나물을 조금 집어넣었다. 심심하게 간이 된 콩나물도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함께 넣었는데 꽤 조합이 좋다. 워낙 부드러운 게살의 식감에 사각사각 씹히는 콩나물의 식감이 섞이며 또 하나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단 김치와 갓김치는 워낙에 강한 맛을 내는 녀석들이라 꽃게살 비빔밥에는 곁들이지 않았다. 꽃게살의 그 싱그러운 향과 맛을 헤치고 싶지 않았다. 정신없이 탐닉하던 혼자만의 식사 겸 술자리의 흐름이 갑자기 끊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꽃게살도 소주도 이미 다 비워버린 상태. 마지막 남은 소주 한 잔을 남은 된장국 한 모금으로 비워냈다. 


잠시 아름다운 꿈을 꾼 것 같다. 신선한 꽃게살의 부드러움과 향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곳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꿈. 금세 깨어날 것을 알지만 그래도 깊이 빠져들어 좀처럼 꺠어나고 싶지 않은 꿈. 이런 꿈은 자주 꾸고 싶다. 아쉬운 것은 10여 년만에 목포의 장터식당 본점을 찾았지만 본점의 문턱을 넘어 보지도 못한 채 밀리고 밀려서 분점에서야 겨우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터 식당 음식들의 옛 기억을 다시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이 집의 꽃게 음식은 초빼이에게는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굉장히 새롭다. 꽃게로 만드는 음식이라고 해야 꽃게탕, 꽃게찜 그리고 게장 정도가 전부였던 초빼이의 미천한 음식 경험에 전혀 다른 장르를 보여준 음식


이이 집의 음식은 목포이기에 가능한 음식이었다. 전라도 각지의 품질 좋은 산물로 양념을 만들고 바로 옆 목포항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꽃게를 아침마다 받아 와 만들었던 음식이다. 물론 요즘은 수요가 많아져 꽃게철에 대량으로 꽃게를 매입, 급랭한 후 꽃게의 비수기에 사용한다고 들었다.   


사족을 붙이자면 초빼이는 왜 '꽃게살'을 '게살범벅'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예전에는 만호 장터라는 이름을 썼던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다. 다음에 본점을 찾아 사장님께 꼭 물어보고 싶은 부분이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꽃게살(기본 2인분 주문) + 보해 잎새주

2. 2인 이상 방문 시 : 꽃게살 + 꽃게 무침 + 보해 잎새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전용 주차장은 없다. 본점 가게 앞에 2대 정도 주차 가능. 인근 노상이나 인근 공영주차장을 이용.

2. 월~일 11:30~21:00 / 휴무일 매달 1,3째 일요일 / 브레이크타임 15:30~17:30  

3. 참고

    - 영업시간 및 휴무일은 본점 기준이다. 단, 목포 구시가지는 조금만 어두워지면 인적이 빨리 끊어지기 

      때문에 공지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마감할 수 있다. 평일 방문한다면 미리 전화로 확인해 볼 것 권장.   

    - 꽃게살(무침)과 꽃게무침이 대표적 메뉴. 현지인들은 꽃게탕도 자주 주문한다. 

    - 기본 제공되는 반찬 중 김치류는 정말 맛있는 전라도식 김치다. 강력 추천. 

    - 이번 취재에서 초빼이는 본점을 방문하지 못했고 하당점에서 음식을 먹었다. 참고하시길.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김정림 선지해장국, 선경준치횟집, 유달콩물, 코롬방제과, 대청, 영암갈비, 중화루, 청자횟집, 

      동궁가물치, 원조제일돌곱창, 너구리식당, 태동식당, 독천식당, 만선식당, 영암식당, 덕인홍어집, 섬마을

      식당, 춘광식당, 해남해장국, 영암떡갈비, 명신식당, 삼학복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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