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경남 통영시 향남동 대추나무 다찌.
경상도는 우리나라에서도 드문, 자연의 혜택을 톡톡히 받은 지역이다.
좌로는 동해, 아래로는 남해를 접하고, 경북과 경남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낙동강, 전라도와 경계를 이루는 섬진강 등 2개의 거대한 강을 품어 농업의 발달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위로는 지리산과 태백산맥의 끝자락을 두고 있어 임산물도 풍부하고, 아래로는 넓은 평야를 끼고 있어 곡창 지대를 품고 있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졌기에 물산도 풍부하였고 이에 따라 음식 문화도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유사한 자연환경을 가진 전라도에 비해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눈도 없어 비교적 따뜻하였기에, 자연스레 경상도의 음식은 짜고 매워질 수밖에 없었다. 음식의 부패나 빠른 숙성을 막기 위해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겨울 한파는 전라도를 지나 경상도에 닿기 전 지리산 자락에 걸려 그 기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경상도 음식이 맵고 짜기만 하여 전라도 음식에 비해 맛이 없다는 평은 사실 이런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긴 차이라 경상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세간의 평이 조금은 억울한 면도 없지 않다. 음식 문화의 차이는 술에서도 차이를 보였고, 술에 곁들이는 음식과 내는 형태도 차이가 있었다.
경상도를 대표하는 술 문화를 들자면 통영의 '다찌'를 가장 먼저 떠 올릴 수 있다. 진주의 '실비집'과 마산의 '통술집' 문화와 유사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기원과 형태에서 서로 조금씩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통영 다찌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최근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일본의 '다치노미(立ち呑み)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다치노미는 손님들이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마시는 술집'을 뜻한다. 일본의 간사이 지방 중에서도 오사카와 그 일대 지역에서 발달한 술집의 형태인데, 간단한 안주를 놓고 한두 잔의 술을 즐기는 방식이다.(오키나와의 센베로 문화와는 그 기원에서 조금 다르다) 술집의 셰프가 즉석에서 안주를 내어주는 방식도 포함되는데 특별히 정해진 메뉴 없이 술값만 내고 안주는 알아서 주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오마카세(お任せ) 형의 술집과도 일부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다치노미의 문화는 일제 강점기, 수산업에 진출했던 많은 일본인들이 통영에 이주하면서 이 시기 자연스럽게 유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의 '이자카야' 문화와 한국의 선술집(조선조부터 이어 온 한국의 전통적인 선술집도 서서 마시는 형태였다) 문화가 결합된 형태로 1940~50년대 통영항 인근의 뱃사람이나 수산업 종사자들이 즐기던 형태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배를 몰고 항구로 들어온 뱃사람들은 고단한 몸을 달래기 위해 술부터 찾았다. 안주는 무엇을 내든 상관없었다. 바닷가의 술집이다 보니 신선한 수산물들이 음식의 재료가 되었다. 한 병, 한 병 술을 비울 때마다 새로운 안주가 따라 나왔다. 이런 전통이 이어지면서 통영을 대표하는 술 문화인 '다찌'가 그 형태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영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은 다찌집들은 주로 향남동에 몰려 있다. 향남동은 '강구안'이라는 작은 부두의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는 지역. 강구는 원래 강어귀를 뜻하였는데, 통영항 깊숙이 들어온 천혜의 항구라 '강구'라 불렀다고 한다. 통제영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수군 함선인 판옥선과 거북선이 정박하고 군사점호와 해상 훈련이 진행되던 곳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해군기지라고 할까? 현재에 이르러 강구안은 어민들의 어선을 정박하는 포구로 사용되고 있다. 강구안의 왼편에는 통영 중앙시장이 자리 잡고 있어, 항구로 돌아온 선박들은 그 자리에서 생선을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향남동이 있다. 향남동 다찌골목으로 불리던 곳이다. 고된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어부들의 발길은 자연스레 향남동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초빼이가 향남동 다찌 골목을 찾은 것은 지인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옛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던 옆팀 팀장 한 분이 몇 년 전 고향 통영으로 내려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그 분과 술 한잔 나누기로 했던 것. 통영 출신으로 진정한 '통영의 딸'이었던 그 동료가 소개해 준 집으로 향했다. 사실 이전에도 통영의 다찌집들을 네댓 번 정도 찾았지만 초빼이를 만족시킨 곳은 한 곳도 없었다. 통영의 다찌집들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다 보니 다찌집도 시류에 많이 편승하기 시작했던 듯하다. 통영 현지인들조차 "가장 서비스 좋고 음식 맛이 좋은 '다찌'는 개업한 지 1년이 안된 집"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기존의 다찌집들에 대한 약간의 실망과 새로운 경쟁에 뛰어드는 신생 업체들을 격려하고픈 마음이 혼재된 상태인 것 같아 보였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골목길을 걸었다. 다찌집의 위치를 먼저 확인하고 그 골목의 입구에 서니 바로 강구안 포구가 눈에 들어왔다. 덤덤하게 빛나던, 저녁 윤슬이 항구로 돌아오는 배들을 제 몸 위에 태우고 하루의 문을 닫고 있었다. 슬며시 골목 어귀로 몸을 숨기던 바람엔 윤슬도 한 손 거들었는지 바다 냄새가 '항그시' 올려져 있다. 기러기만 한 통영항의 갈매기들은 터줏대감마냥 강구항 이곳저곳을 살피며 낮게 날고 있었다. 관광객에게서 다시 찾은, 평일 저녁의 작은 항구는 '쇼팽의 발라드 4번'처럼 고요했고 열정적이었으며, 완벽했다. 뒷골목으로 다시 돌아가니 작은 골목골목 사이로 오래된 통영의 노포집 간판에 하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골목을 울리는 발걸음 소리를 찾기 힘들었다. 주말이 되기 전까진 이곳은 여전히 '현지인들의 시간이 지배하는 골목'이었다. 다시 다찌집으로 향했다.
햇빛에 시달리다 노랗게 질린듯한 사진이 다찌집 입구에 붙어 있었다. '통영 출신 연예인이 자주 찾았다는' 방송의 한 장면을 캡처한 사진이 새삼스러웠다. 원래 이 집은 통영에서도 유명한 곳으로 굳이 연예인의 힘을 빌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특히 장사하는 이들의 마음은 더욱 그렇다. 아무리 괜찮다 해도 항상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여닫이 문을 한 편으로 제치고 한 발 올라섰다. 주방 입구에서 일하시던 사장님과 직원, 가게를 이미 채우고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떨치려 부러 목소리를 냈다. "저, 일행이 예약했는데요, 제가 먼저 도착해서 들어왔습니다. 2인 예약입니다." 끈덕지게 따라붙는 호기심의 시선을 떨쳐내려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목 좀 축이게 맥주 한 병 먼저 주세요. 음식은 일행이 오면 주시면 됩니다." 라며 술을 먼저 청했다.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씩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술을 드시는데 찝어 먹을 건 있어야지예"라는 사장님의 사투리가 맥주 한 병과 함께 테이블 위에 놓였다. 시골의 인심은 이런 짧은 한마디에도 깃들어 있다. 사장님이 '찝어 먹으라' 처음 내주신 기본 안주들에서 이미 이 집에 대한 판단은 끝났다. 차로 30분 거리인, 내 고향 마산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통영의 향토 음식들이 테이블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굳이 명명하자면 '통영 바다 음식 3인방'이라 할까?
가장 먼저 운명처럼 마주친 음식은 청각 냉국.
'청각'은 바닷가가 아닌 도시나 내륙 사람들은 이름조차 들어보지도 못했을 수도 있는 해조류다. 생긴 것이 사슴의 뿔을 닮았다고 '청각'이라 부른다. 나도 어릴 적 마산에 살던 시절에만 먹었던 기억이 있는 식재료였다. 어지간한 해조류보다 좀 굵은 편에 속이 관처럼 비어 있는데 바위에 붙어 산다. 청각에 붙은 모래나 작은 돌을 떼어 내는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어머니는 보통 청각을 데쳐서 초장과 함께 내시거나 기름에 볶아 반찬으로 내셨다. 하지만 '대추나무'의 청각 냉국은 그 모든 상상을 깨트려 버렸다. 너무나도 완벽한 초와 단맛의 비율과, 칼칼한 고추와 양파, 오이 등의 채소는 그저 청각을 돋보이게 하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오직 청각만이 도드라졌다. 폭신하면서도 약간 흐물거리는 느낌의 식감은 미역보다 훨씬 더 냉국에 어울렸다. 게다가 은은하게 올라오는 청각 특유의 향은 너무나 매력적이라, 초빼이가 알고 있는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이 집에선 독특하게 청각으로 냉국을 하네'라고 그냥 넘겼지만, 다음 날 통영의 유명한 음식점인 '야소주반'에서 다시 청각 냉국을 접하고 나서야 '청각 냉국'이 통영의 '향토 음식'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통영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식재료는 멍게다.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메뉴판엔 멍게 비빔밥은 꼭 들어있다. 통영땅을 한 번이라도 밟아 본 이라면 모두 먹어본 기억이 있을 정도로 이미 통영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초빼이는 멍게의 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그리 즐기는 음식은 아니다. 가끔 횟집에서 찬으로 나오는 멍게나 한두 점 집어먹을 정도랄까? 심지어 멍게 비빔밥조차 아직 먹어보지 않았을 정도로 불호(不好)에 가깝다. 대추나무의 사장님은 이런 통영 앞바다의 멍게를 살짝 데친 후, 갖은 채소와 함께 기름에 살짝 볶아서 또 하나의 요리를 만들었다. 뜨거운 물에 멍게를 데치며 멍게 특유의 비린내는 지그시 누르고, 채소를 넣고 기름에 볶으며 멍게의 표면을 단단하게 만들어 독특한 식감까지 만들어 냈다. 단언컨대 내가 아는 멍게를 활용한 요리 중에선 최고의 요리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멍게 볶음은 향도 향이지만, 그 환상적인 식감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끓는 물에 데쳐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갖춘 '꼬시래기'도 식감과 맛에선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
'통영 바다음식 3인방'에 빠져 정신없이 손을 놀리다 보니 맥주 한 병을 다 마셔 버렸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값 비싼 '게 다리' 따위에는 손이 가지도 않았다. '어디 잡스런 게 다리 따위가!'라는 혼잣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당연히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했다. 통영의 다찌는 안주를 계속해서 내야 하는 시스템이기에 사장님이 순서가 밀리는 안주 때문에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음식을 앞에 두고 술을 멈출 수 없었다. "일행이 곧 도착한다"며 다시 한번 양해를 구했다. 소주를 반쯤 비우고 있으니 술친구가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왔다.
일행이 들어오자마자 사장님이 기다렸다는 듯 음식을 마구마구 쏟아내기 시작하셨다. 어쩌면 초빼이보다 더 내 술친구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다찌는 인당 정가를 받고 안주를 내주는 시스템이다. 거기에 술을 추가하는 시스템이다. 첫 번째 술에 나와야 할 안주를 마다하고 청각냉국에 멍게볶음에만 손을 대는 초빼이를 보며 얼마나 마음이 조급해지셨을까? 마치 그 한을 푸는 것처럼 쏟아져 나오는 음식들은 금세 테이블 위의 빈자리를 모두 지워버렸다. 잔칫상의 대표적 음식인 '잡채'나 '정구지 찌짐', '멸치회 무침' 따위는 대추나무 다찌에선 으레 나오는 흔한 음식들이었다. 전체 상차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쉬어가는 시간 정도의 역할만 했다.
흔한 음식들을 사이에 두고 몇 년 만에 만난 동료와의 이야기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직장을 관두고 통영으로 내려와 새로운 직장을 잡기까지의 무용담을 소맥잔에 함께 부어 잔을 부딪혔다. '초빼이의 노포일기'를 출간하고 북콘서트와 강의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던 내 이야기도 소주잔에 넘치도록 담았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며 소주 한 병을 추가하자 사장님이 본격적인 통영 앞바다 한 상을 내시기 시작했다. 대추나무 다찌의 본격적인 요리들이 빈 접시들과 교대하기 시작했다.
기름기 하나 찾을 수 없었던, 담백함이 인상적이었던 '용치놀래기 회'가 앞장을 섰다. 바닷가 출신인지라 꽤 많은 종류의 생선을 먹어봤지만 용치놀래기로 뜬 회는 초빼이도 처음이었다. 탄탄한 '금태구이'의 살결에선 바다 생선이 맞나 싶을 정도의 단단한 단맛이 폭발했다. 원래 금태는 구워 먹기 위해 잡는 생선이다. 곰탕처럼 우린 바지락탕의 그 진하디 진한 국물로 목을 축이고 반으로 몸을 가른 오징어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안으로 무식하게 쑤셔 넣었다. 잘 삶은 문어숙회는 한 점 한 점 혓바닥 위에서 녹아버렸으며, 내장까지 잘 삶은 뿔소라의 그 씁쓸함마저 내 뇌리에 특별하게 각인되었다. 소주병의 비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술기운이 조금씩 돌며 옛 직장의 상사들과 대표들에 대한 험담과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그 뒤를 이었다. 옛 직장 동료를 만나는 진정한 재미는 뒷담화에 있다. 물론 우아하게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지만, 어디 월급쟁이들의 삶이 그런 밋밋한 화제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상사들에 대한 더 많은 뒷담화가 나올수록, 그리고 뒷담화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우리 몸에 쌓인 스트레스는 날숨처럼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점점 뭉쳤던 어깨마저 가벼워지는 듯했다.
이야기는 점점 끝을 향해 다다르기 시작했고, 초빼이의 혀는 조금씩 마비되며 단어의 끝이 무뎌져가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이 시간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접시를 테이블 위로 들이밀었다. 음식이 조금씩 남은 접시들은 과감히 합병을 시도했다. 하찮은 게 다리 위로는 그 귀하고 맛있는 '해삼 내장' 접시가 층을 쌓았고, 뿔소라 접시엔 문어숙회와 가리비 찜이 슬쩍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전복, 소라, 해삼, 개불, 멍게 그리고 미더덕 회가 올라간 해산물 모둠 접시에서 축제는 절정을 찍었다. 통영 앞바다의 바닥에서부터 해수면까지 사람의 손으로 채취할 수 있는 모든 해산물이 '대추나무 다찌'의 한 상에서 올랐다.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비린 것들에 손을 대지 않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집의 음식들을 앞에 두고선 그러지 못했다. 오랜만에 산지의 신선한 바다 음식들을 음미하며 포식했다.
통영 사람들에겐 이 집의 음식들이 '일상의 음식'일지는 몰라도, 초빼이에겐 1년에 한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싶은, '귀한 음식'이었다. 이런 음식점을 소개해 준 지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나이가 들수록 고마운 일이 있을 땐 그 자리에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 '조금 있다 하지'라고 뒤로 미루다 고마움을 표할 시간을 놓치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지나면 항상 후회한다.
그리고 소주 한 잔을 들이켠 후 사장님께 조용히 여쭸다. "사장님 근데 왜 가게 이름이 대추나무 다찌예요?" 잠시 뜸을 들인 뒤 돌아오는 사장님의 대답이 너무 엉뚱해 입 안에 든 소주를 내뿜을 뻔했다.
"제가 여기 가게 시작할 때예, KBS 테레비에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드라마를 시작했거든예. 그 드라마 팬이라서 이름도 같이 지었습니더"
TV가 이렇게 무섭다. 30년을 넘게 이어온 노포의 이름마저 좌지우지하게 만든다. 초빼이는 이 집 뒤편에 작은 마당이 있는데, 좋은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어 그런 이름을 지었다는 답을 예상했었다. 팬덤은 그 시절에도 연령에 상관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라는 드라마가 요즘의 그 말 많은 막장 드라마 같았다면 통영시 향남동의 '대추나무 다찌집'은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었을까?
[음식, 음주, 노포 전문 크리에이터 초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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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 추천]
1. 2인 이상 방문 시 : 2인 기본 한 상(8만 원)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장은 없음.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권장.
2. 월~토 18:00~24:00 / 월요일은 17시 영업시작 / 비정기적 휴무
3. 참고
- 다찌집은 음식과 운영 시스템상 반드시 2인 이상 찾아야 한다.
- 평일에도 웨이팅이 있을 수 있다. 다찌집의 운영 시스템상 손님 회전이 느린 편이니 웨이팅 시 고려해야
한다.
- 사전 전화를 통해 영업 여부를 먼저 문의하고, 가능하다면 예약하고 찾는 것이 좋다.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산양식당, 통나무다찌, 벅수다찌, 서울삼겹살, 물레야소주방, 훈이시락국, 가마솥시락국,
해녀 김금단 포장마차(욕지도), 한산섬식당, 언양숯불갈비, 팔도식당, 곤리식당, 향남우짜, 터미널회식당,
서울식당, 오미사꿀빵, 뚱보할매김밥, 고성곱창, 원조밀물식당, 풍만복국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