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시 쓰게 된 이유

그만둘 명분보다 계속할 이유가 더 많았던 날

by 하얀 오목눈이

낙선을 겪고 나서
나는 한동안
아무 결심도 하지 않았다.
다시 도전하겠다고 다짐하지도,
이제 그만하겠다고 선언하지도 않았다.

그저
다음 날도 글을 쓰고 있었다.

그게 이유였다.
그만두려면
이유가 필요했는데,
계속 쓰는 데에는
아무 이유도 필요하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습관처럼 노트를 펼쳤다.
잘 쓰기 위해서도,
어딘가에 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안 쓰면 하루가 빠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이미
결과로 쓰는 사람이 아니라
리듬으로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낙선은
나를 현실로 데려왔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포기하라는 신호도,
계속하라는 확신도 없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일도 쓰겠다.”

대단한 목표는 없었다.
두 번째 공모전을 준비하겠다는 말도
아직은 하지 못했다.
다만
첫 번째 낙선이
마지막 문장이 되지는 않게 하자는
아주 작은 약속만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 몰랐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시 노트를 펼치는 선택이
얼마나 긴 시간을 결정하게 될지.

하지만 지금은 안다.
작가가 되는 순간은
상을 받을 때가 아니라,
낙선 이후에도 같은 자세로
책상 앞에 앉는 날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그날도 썼고,
그 다음 날도 썼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이었지만,
그 글만큼은
나를 계속 앞으로 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쓰고 있었다.
이미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조용히 받아들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