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로는 時節因緣이라고 쓰며 '사물의 모든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한다'는 불교용어다. 정확하게 뜻을 말하자면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것으로, 시절인연이 맞으면 아무리 거부하더라도 인연이 생기고, 맞지 않으면 무슨 수를 써도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어의 뉘앙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때로는 한때 가까이 지냈던 사람과 시간이 흘러 사이가 소원해진 것을 보고는 '시절인연'이라고 하기도 하며, 시절인연이라고 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뜻을 떠올리곤 한다.
내가 시절인연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브런치에서였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쓴 글들 중 하나에 다른 작가분께서 '시절인연'을 언급하시며 댓글을 달아주셨었다. 그 당시 나도 시절인연의 뜻을 정확히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한때의 인연에 가까운 의미로 받아들였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무래도 나에게 더 와닿기도 했거니와 더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서였던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그 당시에 그 댓글을 보면서 이미 스쳐 지나간, 그리고 지금도 남아 있는 그런 여러 인연들이 생각났다.
나에게는 소꿉친구라고 할만한 친구가 몇 명 있었다. 소꿉놀이를 하던 친구라는 본래의 의미로 생각하면 6살 정도까지 같은 동네에 살았던 동네 친구들이 본래의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6살 무렵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그 친구들과는 꽤나 소원해졌기 때문에, 소꿉친구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라는 의미로 생각하면 두 명정도가 생각이 난다.
그 둘과는 어떻게 같이 친해졌는지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 A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만큼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었고 친구 B는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온 친구였다. 우리 셋은 삼총사처럼 늘 셋이 함께 붙어 다녔다. 각종 학원들도 대부분 셋이 같이 다녔고, 틈만 나면 서로의 집으로 놀러 갔다. 중학생이 되어갈 무렵에는 과외도 같이 받았다. 중간중간 다른 사람들이 잠시 합류했다가 빠져나가긴 했었지만 우리 셋은 늘 항상 고정된 멤버로서 함께 지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어느덧 중학교 3학년 즈음이 되었을 때, 생각보다 우리 사이는 많이 소원해져 있었다. 서로 다른 반이 된 것이야 늘 그랬으니 그렇다 쳐도, 서로의 성향, 어울리는 무리가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나름 공부에 신경 쓰는 범생이 라인에 속했고 친구 A는 잘 나가는 일진 라인, 그리고 친구 B는 둘 모두에 속하지 않았다. 어릴 때의 인연으로 같이 어울리고는 있었지만 너무나 달라진 성향에 서로 삐그덕 대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내 잘못으로 인해 친구 A와 크게 싸우게 되었다. 친구 B가 우리 셋 사이가 좋았지 않냐고, 왜 싸워야 하냐며 우리 둘을 말렸으나, 어리고 혈기왕성한 우리들은 먼저 사과하는 게 지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사과를 하기는커녕 주먹다짐만 하고 그 관계는 끝나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다른 지역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으로 그들과의 인연은 뚝 끊겨 버렸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대학생일 무렵, 중학교 때 살던 동네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친구 B를 마주치게 되었다. 오랜만에 본 반가움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물었다. 친구 B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딱히 할 게 없어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적어도 중학교 때까지는 친구 B도 나름 괜찮은 성적을 유지해 왔기에 당연히 대학에 진학했을 거라 생각한 나에게 친구 B의 근황은 꽤나 충격이었다.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나름 명문으로 소문난 고등학교였다. 학교 시설 자체는 낙후되었고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며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님들 천지였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매우 우수했다. 그 학교에서는 모의고사를 보게 되면 전교 50등까지의 점수와 이름을 그래프로 만들어서 각 교실 뒤편에 붙여두고는 했는데, 우리는 그걸 '명예의 전당'이라고 불렀다. 나는 중학교 때 나름 전교 5위 이내를 유지했음에도 명예의 전당에 올라본 적이 드물 정도였으니 정말 대단한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 학교의 학생들의 취미생활은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다. 여럿이 몰려서 놀러 다닌다거나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그런 학생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기껏해야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는 게 일탈의 전부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와중에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기보다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열중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게 나와 내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 이미 중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며 노래방을 같이 다니던 친구가 있었고, 거기에 더해 같은 반 친구들 중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 무리에 합류했다. 그렇게 우리는 툭하면 학교가 끝나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며 놀곤 했다. 인심 좋은 노래방 사장님이 서비스로 2~3시간의 시간을 더 넣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더더욱 노래에 심취하며 놀았다. 3학년때는 나를 포함한 몇몇은 다른 반으로 흩어졌지만, 그럼에도 계속 친하게 지냈고, 거기에 더해 멤버도 몇 명 더 추가되어 그때 만들어진 모임이 지금까지도 계속 잘 유지되고 있다.
이제는 잘해야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나고 노래방을 가는 빈도는 극도로 줄었지만,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네 어머니들끼리도 계속해서 교류할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처음에 입사했을 때 동기들과는 정말이지 마음이 너무 잘 맞았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매일 같이 회사 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서울에 계속 살았음에도 서울의 지리도, 맛집도, 술집도, 놀 곳도 하나도 모르던 나였는데, 동기들을 따라다니며 참으로 많이 놀고 많이 배웠다.
우리가 더더욱 유대감이 돈독했던데는 부서의 영향도 있었다. 우리가 입사했을 때, 우리는 선배들이 보기에는 소위말하는 '요즘애들'이었다. 지금이야 애들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MZ세대라 그런가 보다 라며 이해해 주지만, 그때는 얄짤없었다. 1년 위 선배들까지는 기성세대들과 꽤 마음이 잘 맞고 문화에도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우리 세대는 과도기였어서 그런지 부서 선배들과는 정말이지 친해질 수가 없었다. 매주 회식을 할 때마다 도망을 갔고 퇴근할 때는 인사도 하지 않고 몰래 퇴근했다. 선배들은 왜 남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냐며 우리를 다그치며 혼냈고, 야근비도 나오지 않는 야근을 강요하는 문화는 우리에게 너무 숨 막히는 문화였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반항아의 입장에서 선배들의 갈굼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만의 길을 갔는데, 그 결과 우리 기수는 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기수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낙인은 결국 좋지 못한 인사고과로 돌아왔다. 우리는 업무량이나 업무 숙련도와 상관없이 사이좋게 낮은 평가를 받았고,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끼리 뭉치자며 더더욱 돈독하게 지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날 때쯤, 다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면서 언젠가부터 서로의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또 어떤 동기들은 이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예전처럼 자주 대화를 나누거나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일 수 없게 되었다. 한번 얼굴이라도 볼라치면 한 달 전에 약속을 잡아야 했고, 그마저도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하는 유부남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자리를 파하게 되었다.
점점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끼리도 점점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우리 사이의 경쟁심이나 비교, 승진 등으로 인해 조금씩 마음이 상할 일이 생겼고, 결국에 그 상한 마음들은 풀어지지 않은 채 그저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결혼식이나 술자리에서 보면 반갑게 얘기를 나누고 종종 회사 메신저로 얘기도 나누곤 하지만, 예전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게 되었다.
1에서의 친구 A와 B는 지금 생각해 보면 성향 자체가 너무 맞지도 않았고, 결국에는 갈라서게 되었으며, 나중에 만났을 때 서로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걸어왔고, 걸어가는 상태였으니, 아무래도 그 어릴 때에는 시절인연이 맞아서 친구가 되었지만, 결국에는 성향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헤어진 게 아닐까 싶다.
2에서의 노래방 친구들은 지금도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20년 넘게 지내오면서 서로의 상황과 걸어온 길이 약간씩은 달라졌기 때문에 만약 지금 상태 그대로 처음 만났다면 우리가 친구가 되었을지는 미지수인 상태라고 본다. 그러니 이 친구들도 역시 시절인연이 맞아서, 바로 그 고등학교 2,3학년때였기에 친구가 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3에서의 동기들도 시절인연이 맞아서 친해졌지만, 결국에는 시절인연이 다해서 소원해지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1에서의 친구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인연은 이어가고 있지만 2에서의 친구들처럼 친밀한 사이는 아닌, 그런 상태로 쭉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보니 안될 인연들은 어떻게 하더라도 잘 되지 않고 될 인연들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원래 내 인생에 존재했던 것처럼 훅 들어오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와 친해지게 되면 시절인연이 닿았음에 감사하게 되고 누군가가 떠나게 되면 시절인연이 떠났음에 아쉬워할지언정, 어릴 때처럼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 많이 애쓰며 힘들어하지 않는, 좀 더 초연한 마음과 자세를 갖게 된 것 같다.
다만 요새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시절인연이 닿는 경우는 잘 없고 시절인연이 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조금은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가수 김광석이 부른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에 들어있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가사의 의미를, 마흔이 다된 요즘에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너무 애쓰지도 말고, 너무 초연하지도 말자며 스스로를 다잡는 중이다. 다가온 인연은 반갑게 맞이하고, 떠나가는 인연은 구태여 잡지 않으며, 그저 언제나 내 나름의 도리만 다할 뿐,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은 시절인연에 맡기려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을 하면 할수록 지금 내 곁에 남은 인연들이 더 소중하고 애틋해지기에, 그들이 곁에 있는 동안 많이 아끼고,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내 도리가 아닐까 한다. (… 가끔은 빡치지만. 아니 개빡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