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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Mar 21. 2024

늙는 게 무서워

  요즘 지하철에서 맹인 안내견을 꽤 많이 보는 편이다. 예전에는 1년에 한 마리 보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는데, 왜인지 요새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정도는 보는 것 같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흐뭇해지곤 한다. 적어도 예전에 비해서는 맹인들이 좀 더 많이 밖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일 테니까.

  얼마 전 출근길에도 안내견을 목격했다. 수지구청역에서 마주쳤는데, 맹인도 나와 같은 지하철을 타려는 듯했다. 안내견이 개찰구를 통과해 자연스레 주인을 인도하는 모습을 보니, 지하철을 많이 타봤구나 싶었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 승강장을 이동하던 중 한 할머니께서 안내견을 발견하고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이구 이뻐라~"라고 말하며 안내견을 쓰다듬으려 했고, 당황한 안내견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잠시 주인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앗!"이라 소리를 냈다. 왜냐면 안내견은 절대로 쓰다듬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실을 할머니께 말씀드리고 제지를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천만 다행히도 할머니는 금방 자리를 떴고, 안내견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인을 안내했다.



  안내견들은 보통 온순한 리트리버 종류의 개들이 90% 이상이다. 안 그래도 온순한 데다가 훈련까지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꽤나 얌전하게 있는 편이다. 하지만 밖에서의 안내견은 주인을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아무리 얌전해 보인다 한들 쓰다듬거나 말을 걸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까 그 할머니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나야 그런 정보를 접할 일이 많지만, 그분은 그런 정보를 접할 일이 적었을 테니까.

  그러다 보니 왜 노인분들은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접하고 익힐 일이 적은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1.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 굳건하다.

  노인 분들은 이미 몇십 년 동안을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하며 살아오셨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것들은 아마도 쉽게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굳어져왔으리라 본다. 심지어 그런 방법으로 살아온 게 맞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으니 딱히 새로운 걸 배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가끔 본인이 맞다고 생각해서 무언가를 배우기보다는 남들을 가르치려 하고 훈계하려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요새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는 아이가 아직 걷지를 못하니 발이 시리지만 않도록 양말만 두, 세 겹을 신기고선 안고 밖에 나가면, 늘 지나가던 할머니들께서 왜 신발을 신기지 않았냐며 타박을 주는 게 너무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아마 이런 일도 저런 맥락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 새로운 걸 접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새로운 것 마저 편향적이다.

  일차적으로는 새로운 지식을 접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있다. 아무래도 노인분들이 요즘 사람들처럼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배우기는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약도 많을 것이다. 아마 이 단계에서 배움을 포기하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뚫고 새로운 지식이나 문물을 배우더라도, 오히려 너무 편향된 쪽으로만 정보를 취득하는 경향이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사용자에 맞춰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너무 보편적으로 보급된 요즘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져서, 입맛에 맞는 정보만 접하시고는, 확증 편향에 빠지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3. 나이 그 자체가 핑계가 된다.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기도 한데, 대부분은 나이 그 자체를 핑계로 삼아 새로운 걸 배우거나 익히려 하시지 않는다. 당장 주변의 어른들만 봐도 늘 무언가를 배우는 데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로 대부분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예전 같지 않아'라는 얘기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나이가 들면 확실히 습득하는 속도가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얼마 살지 않은 나도 느낄 정도니 나보다 더 나이가 드신 분들은 당연히 더 힘들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내가 아직 어려서인지는 몰라도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배우고자 한다면 배울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예전에 본 모 만화책에서 주인공이 공부의 재능을 잃어버린 장면이 나왔었다. 그래서 그 주인공은 순식간에 반에서 꼴찌가 되어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들보다 두 배, 세 배의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해 결국에는 다시 어느 정도 상위권의 성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그게 바로 내가 나이 들었을 때 가져야 하는 자세라는 생각을 했다. 나이 듦에 따라 머리가 굳는 건 당연한 것이기에 그걸 핑계 삼기보다는 그걸 극복하기 위해 시간을 더 들이는 게 맞다고.


아 근데 솔직히 키오스크는 좀 별로인거 인정


  가끔 내가 이런 말들을 하면 어머니는

너도 나이 들어봐라

라고 하시곤 한다. 어머니 말처럼 내가 아직은 나이 들지 않아서 젊은 객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말씀대로 나도 나이 들면서 저렇게 생각이 바뀌게 될 수도 있다. 그럼 그때의 나는 육체뿐만 아니라 생각이 늙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이 늙는 것이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이 늙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에 기대어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조차도 젊은 날의 객기일지는 모르나 어쨌든 그렇게 사는 게 무서운 것만은 사실이기에 오늘도 그러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며 살고 있다.


마음만은 늘 청춘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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