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한국식 나이로는 38살, 만으로는 36살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을 만나면,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질문을 꽤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결혼이 뭐 내 마음대로 되는 거냐며 투정을 부리고는 결혼하면 대체 뭐가 그리 좋길래 자꾸 나에게 결혼하라고 닦달하는 거냐 묻곤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내 질문에 답을 하지는 않고, 자연스레 결혼해서 힘든 점들을 털어놓곤 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이 좋은 점이나 행복한 점을 얘기를 하기에는 너무 간질간질하고 부끄러워서 그러겠거니 하면서 듣는다.
그럴 때 그들은 항상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더 재밌고 행복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며 기회비용 얘기를 하곤 한다.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밤새 좋아하는 게임을 잔뜩 하고 친구들하고 맘껏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눈치 보지 않고 했을 거라고. 그러면서 마지막엔 "그냥 하지 마. 하지 말고 혼자 행복하게 살아"라며 처음 꺼낸 말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곤 한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결혼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그들보다 조금 더 오래 총각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들이 말하는
'결혼하지 않았으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믿는 근거'가
완전 글러먹었다고.
그들은 대부분 인생의 최절정기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들과 같은 길을 걷는다. 그래서인지 다들 한 가지 큰 착각을 하곤 한다. 바로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인생의 최절정기에 그대로 머물러서 쭉 갔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들이 결혼했을 때 그들은 정말이지 삶을 재밌게 살고 있었을 때였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연애를 하고, 밤새서 술을 먹고 게임을 하고, 해외여행도 자주 가고, 동호회에 나가 취미도 즐기고 운동도 하고,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기도 하는 그런 삶을 영위했었다. 그럴 때 결혼을 했으니 당연히 그 대부분을 포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도 절대로 그 생활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성들은 내 나이만 듣고도 피할 때가 많고, 밤을 새기엔 체력도 떨어지며, 게임을 같이할 친구도 없어지고, 슬슬 미래나 노후를 생각해서 여행은 자제해야 하며, 동호회에서는 받아주지도 않고, 운동은 생존을 위한 것이며,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많은 제약들이 생긴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한다
당신은 인생의 최절정기에
결혼을 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절대로 그 상태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드니까.
누군가는 결혼에 따른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말하기도 한다. 결혼을 함으로 인해서 포기해야 하는 게 너무 많았다고. 당연히 결혼을 함으로 인해서 포기하는 게 많은 건 당연하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상응하는 행복이 따라온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기회비용은 조금 다른 차원의 얘기다.
종종 그들은 말한다.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여름에 바닷가에 가서 서핑도 해보고, 뮤지컬도 잔뜩 보러 다니고, 운동도 많이 했을 텐데, 결혼해서 이런 것들을 못하게 됐어. 기회비용이 너무 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딱히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저런 것들은 애초에 차선책이 되지조차 못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100만 원짜리 TV를 샀다고 생각해 보자. 근데 100만 원이면 500원짜리 껌을 무려 2000개나 살 수 있는 가격이다. 그럴 때 당신은 "TV를 안 샀으면 껌을 2000개나 살 수 있었을 텐데, 기회비용이 너무 크네."라고 말할 것인가? 아마 분명 아닐 것이다. 왜냐면 TV를 사지 않는다고 해서 껌을 2000개나 사지는 않을 것이기에.
위에 그들이 말한 것도 그 관점에서 보면 완전 틀린 얘기다. 그들이 정말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서핑을 가고 뮤지컬을 보고 운동을 했을까?
결혼 전에도 하지 않았던 일들인데?
사람은 보통 관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보통 살아왔던 대로 살고, 하지 않았던 일들은 계속해서 하지 않는다. 저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특별한 계기가 있으니 갑자기 그전의 삶에서 하지 않았던 그런 일들을 할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 것일 뿐, 결혼이라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면 그냥 살던 그대로 살았을 것이기에, 저런 것들은 절대로 기회비용이 아니다.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TV를 2시간은 더 봤을 텐데"라고 말하며 기회비용을 따지는 게 더 적합하다고 본다.
요즘 시대의 흐름은 결혼을 하지 않고 출산을 하지 않는 흐름이다. 결혼과 출산이 어렵기도 하고 혼자서 사는 삶이 예전에 비해 꽤 많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전에 비해 좋아진 것일 뿐, 혼자만의 삶이 둘의 삶보다 더 윤택하고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SNS의 발달로 극 소수인 '화려한 싱글'의 삶이 대다수인 것처럼 자꾸 노출되고, 이를 본 기혼자들이 더더욱 싱글의 삶에 대한 환상을 가지면서, "늬들은 결혼하지 마라'라는 풍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본다.
분명 결혼을 하면 많은 손해를 보기도 하고 희생을 해야 하기도 하며 때로는 많이 괴로울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반대로 안정감을 얻고, 평생의 동반자를 얻으며, 아이가 자라는데서 느끼는 행복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최소한 싱글인 나로서는 결혼을 하지 말라고 말할 거라면, 저 위에 이유들 보다는 좀 더 납득 가능하고 이해가 되는, 그런 이유를 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결혼은 하는 것이 좋다며 진지하게 설득하는 사람들의 말에 좀 더 납득이 가곤 한다. 그중에 꽤나 인상 깊은 말을 남긴 선배가 있는데 이번 글은 그 선배의 말로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수록
옆에서 같이 웃고 울며
감정적 교류를 할 사람이 필요해.
그런 사람을 만나서
같이 나이 들어가는 게
좋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