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생과 나이차이가 꽤 많이 나는 편이다. 무려 8살이나 차이가 난다. 이렇게 나이차가 많이 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부모님은 나를 낳고선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않으려고 하셨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외동으로 컸다. 하지만 커 감에 따라 주변에 동생을 가진 친구들이 계속 부러웠다. 특히 친하게 지내는 친구집에 놀러 가면 친구는 항상 동생과 함께 레고를 하거나 게임을 하며 놀고 있었기에, 나는 그게 부러워서 부모님께 동생을 갖고 싶다며 계속 졸랐다. 심지어는 정월 대보름날에도 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보라는 부모님의 말에,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꼭 모아 동생을 갖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다.
결국에는 그런 나를 본 부모님은 둘째를 갖기로 했다. 내가 워낙 간절히 원한 것도 있지만 나중에 엄마말에 따르면 내가 외동으로 커서 그런지 꽤나 이기적인 아이였던 게 많이 걱정이 되었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래서 늦게나마 둘째를 갖기로 했고, 덕분에 나에게는 한참 어린 동생이 생겼다.
하지만 그로부터 무려 30년이나 지난 지금, 지난 30년 동안 내가 만난 외동들은 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이기적인 사람이 거의 없었다. 물론 간간이 이기적인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체감상 그 비율이 외동과 외동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 친절하고 이타적이어서 내가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절반은 외동이었다. 그래서 '외동인 것과 이기적인 건 상관없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이 맞는지를 찾아보았다. 실제로 몇몇 연구자들이 이 가설이 맞는지에 대해 여러 실험들을 통해 면밀하게 검증을 했고, 연구 끝에 나온 결론이 '외동인 것과 이기적인 것 간에는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다'였다는 기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자 '그럼 내가 어릴 때 이기적인 건 왜 그랬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눈앞의 마시멜로를 바로 먹어버리는 아이들과 더 큰 보상을 위해 참는 아이들의 차이는 집안의 소득 수준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언제든 마시멜로를 사 먹을 수 있는 아이들은 먹지 않고 참을 수 있었지만, 소득 수준이 낮아 다음을 보장할 수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먹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정도의 이기적인 성향은 저렇게 여유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나는 게 아닐까 싶다. 언제든 원할 때 원하는 만큼 과자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과자를 베푸는데 망설이지 않겠지만, 반대로 지금 이 과자를 또 언제 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 환경이라면 남들에게 베풀기는 많이 어려울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다면 나도 어릴 때 환경이 썩 좋지 않았던 게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그 어린 나이에도 우리 집형편이 좋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는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늘 그들의 장난감을 부러워했고, 그들의 집이나 그들의 환경(아버지는 일하시고 어머니는 살림하시는)을 많이 부러워했었다.
그들은 장난감을 잔뜩 가지고 있었지만, 나에게 장난감은 쉽사리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다 장난감을 살 기회가 생기면 매우 신중하게 고르고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오랜 고민 끝에 산 장난감을 누군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불같이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점을 미루어 볼 때 결국에는 사람이 이기적이게 되는 건 아마도 여유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일단은 나를 온전히 챙기고 나서 어느 정도 여력이 남아야 남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가끔 그런 말을 듣곤 한다. 여유는 지갑에서 나온다고. 어릴 때는 그 말을 돈 가진 사람을 추켜세워주는 너무 속물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새는 어릴 때와 반대로 저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하고 있다. 금전적인 여유가 있다는 것 만으로 남들을 잘 챙기는 이타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그렇기에 주변사람들을 잘 챙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봐왔기 때문이다. 어릴 때 사람의 성품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배워왔고, 그렇기에 마음을 늘 곱게 써야 한다고 배워왔는데, 실제로는 사람의 성품 또한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 셈이다.
하지만 반대로, 종종 내가 금전적 여유가 많아질 때를 상상해 보곤 하는데, 그 상상 속에서의 내가 딱히 이타적인 모습이 아닌 것을 보면 한번 굳어진 성품이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체 어느 쪽이 맞는지 지금의 나로선 도통 알 수가 없기에,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보고 싶다.
그렇게 여유가 생겼을 때의 내 모습이
진짜 본래 내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