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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Feb 22. 2024

죄송하면 군생활 끝나냐?

  얼마 전, 과거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친구와 화해의 자리를 가졌었다. 곱창집에서 만나 소주 한잔 기울이며 근황을 나누었다. 그리곤 잠시 후, 친구는 과거의 일을 사과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그 자리에 가기까지 많은 상상을 해보았었다. 친구가 나에게 어떻게 말을 할지, 그리고 그럼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하지만 그런 상상이 무색하게도 친구가 사과했을 때 나는 대체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를 도통 몰랐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잠시 후에 겸연쩍게 웃으며, "그래."라고만 말을 했다. 그렇다 보니 이어서 다시 회포를 풀며 그날 술자리를 나름 훈훈하게 마무리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나의 가슴속이 썩 개운해지지는 않았다. 무언가 해소가 되다가 만 듯한 찝찝함만이 남았을 뿐.



  얼마 전 인터넷에서 약간은 무서운 글을 보았다. 한 남자가 마트에서 통로를 지나가다가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를 툭 쳤다고 했다. 그래서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를 했으나, 아이엄마는 조심 좀 하라며 타박을 했고, 아이아빠는 미안하면 다냐는 식으로 그 남자에게 따졌다고 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지나가다가 실수로 부딪힌 거고, 그래서 사과하는데 좀 받아주시죠.'라고 했으나, 그럼에도 아이아빠는 계속해서 남자를 쏘아붙였다고 했다. 그러자 그 남자의 눈빛이 갑자기 변하면서 "야, 너 여기서 그만 안 하면 평생 후회한다. 애 목숨 두 개 아니잖아."라고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부부는 당황하면서 그 자리를 떴다고 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기에 정말 어떤 말이 오고 갔고, 어떤 분 위기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부딪힌 남자가 건성으로 사과를 했을 수도 있고, 정중하게 사과를 했음에도 아이아빠가 분이 덜 풀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 사건을 보니 왠지 모르게 예전의 군생활이 떠올랐다.


주말 마트는 정말이지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부딪히지 않기가 힘들긴 하다


  휴대폰이 사용이 허용되기 전 군대에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부조리와 가혹행위들이 남아있었다. 특히나 내가 갔던 부대는 21세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시설도 낙후되어 있었고 쌍팔년도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욕설과 가혹행위는 기본이고 폭행을 당하는 일도 예사였으며, 심지어는 잠을 재우지 않기까지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으레 후임들을 갈굴 땐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야, 이걸 너 청소라고 한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하는 거야?"

  "다음부터 잘하겠습니다."

  "왜 이번에는 대충 하고 다음부터 잘하겠다는 거야?"

  "제가 잘 몰랐습니다."

  "모르면 청소 대충 해도 돼?"

  "잘 알아보고 잘 청소하겠습니다."

  "근데 왜 오늘은 안 알아본 거야? 청소하기 싫어?"

  "아닙니다."

  "아닌데 왜 청소를 이따위로 해?"

  "다시 하겠습니다."

  "다시 할 거 왜 첨부터 제대로 안 해?"

  "처음부터 제대로 하겠습니다."

  "이미 다 지났는데 뭘 처음부터 제대로 해?"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군생활 끝나냐?"


  대화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 후임의 잘못을 혼낸다기보다는 그저 선임의 분풀이에 불과한 대화다. 자기 기분이 좋지 않으니 후임의 사소한 잘못에도 화를 내고 아무리 사과를 한다 한들 계속해서 갈궈댄 것이다.


정확히 이런 곳이었습니다. (군생활 이야기는 추후에…)


  살면서 사과를 잘하기란 참으로 쉽지가 않다. 사과를 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사과를 한 사람을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어 집단으로 린치를 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점점 사람들은 사과를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가끔은 가벼운 사과만으로 끝날 일도 사과를 하지 않아 일이 커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가끔은 큰일로 번질법한 사건인데도 사과문 하나로 수습하고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기도 한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잘 쓴 사과문들의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사과문의 정석이라 평가받는 이재용 회장(전 부회장)의 사과문


짧고 강렬하면서도 필요한 건 다 담은 서가앤쿡의 사과문


  이처럼 우리는 살면서 사과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고 이를 실제로 느끼기도 하고 경험하기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떤 경우에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가기도 하고 많은 예시를 보고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의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 친구와 싸움이 발생했을 때, 어른들이 둘을 화해시킨답시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시킨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는 고작 그런 사과 한마디에 기분이 나아질 리가 없음에도 어른들은 용서를 강요하고 만약 용서하지 않을 경우에는 오히려 피해자가 속이 좁다며 질책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고,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과를 잘하는 법은 알아도 아마 사과를 잘 받는 법은 모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위의 사례들처럼 아기아빠와 어떤 남자 간의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군생활에서도 저런 일들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상대로 인해 자신의 기분이 상했을 때, 그리고 상대가 그에 대해 사과를 했을 때 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상대를 압박하고 질책하는 것 외에는 사과를 받는 법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러자 나와 그 친구의 일이 떠오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나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개운하게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었는데, 그럼 나는 그 친구의 사과를 어떻게 받아들였어야 할까?'

  지금도 여전히 그 의문에 대한 마땅한 답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죄송하면 군생활 끝나냐?"라며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분풀이를 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누군가가 속 시원하게 알려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사과 잘 받기 (아재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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