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호 Feb 15. 2024

유리멘탈이 살아가는 법

  얼마 전에 우연히 그릇 브랜드들 별 특징에 대한 리뷰영상을 봤다. 디자인이 어떻고, 내열성이 어떻고, 기능성이 어떻고 등등. 그런데 그중에 내 눈길을 끈 그릇 브랜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코렐이었다. 코렐은 예전에 TV광고로도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내세웠던 만큼 실제로도 잘 깨지지 않는 그릇으로 유명하다. 우리 집에도 꽤 많은 수의 코렐그릇이 있었는데, 실제로도 깨진 적이 없긴 하다. 그런데 이 영상에서 말하길 코렐이 잘 깨지지 않는 것은 사실상 재질이 특수강화유리라서 그런 것이며 이런 그릇의 특징인 만약에 깨지게 될 경우 다른 그릇들처럼 몇 조각으로 깨지는 게 아니라 아주 산산조각이 나고 가루형태로 부서지게 되어 작은 틈새들에 들어가 치우기가 매우 매우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는 실제로 코렐 그릇이 산산소작 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바로 이렇게 깨진다고 한다…


  그 영상을 보고 나니 코렐 그릇과 내가 꽤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꽤나 단단하고 강인해 보이지만 실제 나는 극도의 유리멘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멘탈이 산산조각 날 것이 두려워 늘 조심조심하며 살고 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한다면 나를 아는 사람들 중 업무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만 동의할 듯하다. 입사 초반에야 멘탈을 제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멘탈을 잘 제어해서 특수강화유리처럼 단단한 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것도 회사에서나 가능할 뿐, 일상에서까지 단단한 척을 하기에는 꽤나 힘들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상 전반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 개인적인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웃음을 잃어버리며 계속 불안정한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 요새는 좀 덜하지만 식욕도 뚝 떨어지곤 했다. 심할 때는 스트레스로 그냥 며칠 내내 굶은 적도 있다. 그만큼 스트레스에 많이 취약한 편이다. 이에 대해서 나름 생각해 본 결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 성장 배경과 그에 따른 자존감 부족이 원인일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어릴 때 무수히도 부모님이 싸우시는 걸 보며 자랐다. 고성이 오가는 건 기본이거니와, 밥상이 엎어지거나 그릇이 깨지거나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친척집에 갔다가 친척분들의 부부싸움이나 자식을 혼내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목격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옆에서 누군가 큰소리를 내거나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라도 하면 정말이지 심장이 떨어지다 못해 죽을 것 같은 충격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여전히 회사에서도 내 옆에서 사람들이 싸울 때면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못해 자리를 뛰쳐나가고픈 충동을 느낀다. 

  자존감이 낮은 것도 성장 배경의 영향이 크다. 다른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살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늘 모자라다는 소리만 듣고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왔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남들이 아무리 칭찬을 해줘도 스스로가 늘 부족하다고만 느끼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겪고 있다. 누군가 조금만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더라도 그게 나라는 사람 전체에 대한 평가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신경이 쓰여 잠을 못 자기도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늘 사람들이 나를 떠날까 두려워하고 사람들과의 다툼을 두려워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다투게 되면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먼저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가끔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보이는 불안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이다.



  그런 나도 이제는 이런 유리멘탈을 부여잡고 잘 살기 위한 몇 가지 노하우가 생겼는데, 그중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감정이입을 자제하고 남일처럼 신경을 끄는 것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싸울 때면 내가 그 싸움에 끼어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마치 라디오 방송에서 재연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걸로 생각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들으면 그래도 좀 괜찮은 상태가 되었다. 물론 가끔은 그 싸움에 내가 끼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도 최대한 말을 줄이고 남일처럼 지켜보다가 모두가 진정되었을 때 의견을 개진하는 게 효과적이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힘든 일이 닥치면 최대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곤 한다. 회사에 속한 몸인지라 완전 혼자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잠시 사람들과 떨어져서 이 문제가 과연 내 멘탈에 타격을 줄만큼의 일인지를 잘 생각해보곤 한다. 예전에는 오히려 유리멘탈을 보호하기 위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으로 방어기제를 표출하곤 했었는데, 효과도 별로 없을뿐더러 오히려 사회생활을 더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느끼고는 그만두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요즘에는 내 멘탈을 챙기고 회사생활을 수월하게 하는데 많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 방법에도 부작용이 없진 않았다. 최대한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 또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나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을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주변에 신경 쓰지 않는 방관자, 혹은 소시오패스처럼 보일 수 있었다. 실제로 가끔 내 멘탈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얘기를 남일인 것처럼 듣다 보면 "제대로 듣고 있니? 영혼을 좀 담아서 대답을 해."라는 말을 듣곤 한다. 


제 영혼이 어딘가에 있긴 할 겁니다


  그래서 요새 내 과제는 내 멘탈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둘지 그 기준선을 정하는 것이다. 너무 선을 미리 그어버리면 사람들에게 외면받을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뒤에 선을 그어버리면 내 유리멘탈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니 이 선을 잘 정하는 게 꽤나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나름, 내가 챙길 사람과 챙기지 않을 사람을 분명히 해서 내 사람들에게만 잘하자는 것, 누군가 힘든 얘기를 하면 위로를 해주긴 하되 감정적으로 이입해서 어떻게든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그대로 실천해 보는 중이다. 

  여전히 그 선을 긋는 게 많이 어렵기도 하고, 잘 조절이 되지는 않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나 같은 유리멘탈이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한 이쯤 그으면 되려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