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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Feb 01. 2024

언어, 그 미묘한 차이란

  때로는 언어라는 게 참으로 신기할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언어라 함은 의사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의사 전달과정에서 단어의 선택과 문장 구성에 따라 때로는 세세하고 미묘한 감정까지 잘 전달되기도 하고 때로는 뜻이 왜곡되어 전달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늘 표현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중학교 3학년 무렵,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둔 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학원에 남아서 친구들과 같이 시험공부를 했다. 보통은 저녁 9시 정도가 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공부를 좀 더 하려는 친구들은 9시 이후에도 남아서 언제까지고 공부를 했다. 나도 시험기간에는 나름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날도 9시를 넘어서 학원 문을 닫을 때까지 공부를 했다.

  옛날에는 요즘과 달리 밤에도 아이들이 밖을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그다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던 시절이기도 했거니와, 학원 자체의 규모도 그리 크지는 않았기 때문에 별도의 학원 버스가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남아있는 경우에는 집에 가는 방향이 같은 선생님들이 각자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그리고 나도 그날은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시는 물리 선생님의 차를 얻어 탔다.

  차를 타고 가면서 선생님과는 이런저런 많은 얘기를 나눴다. 얼마 전에 튜닝한 차 실내에 대한 자랑이라던가, 요즘 중학생들도 연애를 하냐, 연애를 하면 어떻게 하냐는 물음이라던가. 반대로 나는 현재 공부하는 것들 중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을 물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선생님이 물었다.

  "제호, 너는 공부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

  "더 잘하면 좋죠?"

  선생님의 질문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물어보신 것이니 나름 생각해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거기서 그치지 않으셨다.

  "네 성적은 지금 좀 애매한 것 같아. 물론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이는데, 선생님 생각에는 왠지 모르게 그만큼 더 잘하려 하지 않는 것 같거든. 아마 그 방법을 모르는 거일 수도 있고 그만큼 더 하기는 싫어서일 수도 있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선생님이 보기엔 그래. 그래서 욕심이 있냐고 물어본 거야."

  선생님은 학원에서의 나만 보아왔으니 아마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여러 가지로 매우 어려운 가정환경에 놓여있어서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웠고, 집에 가는 것보단 학교나 학원에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한 시간인 아이였다. 그래서 계속 학원에 있고 싶었고, 학원에 있으려면 공부를 해야 하니 공부를 했을 뿐인 아이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내 사정을 알리가 없으니, 선생님 눈에는 학원에 남아서 공부를 하기는 하는데 그리 열심히는 하지 않는 아이로 비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살짝은 발끈하며 대답했다.

  "저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러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잘하는 아이보다는
뛰어난 아이가 되어야지

  그 뒤로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저 말 한마디와 그 말 한마디에 내가 꽤나 많은 충격을 받았었던 것만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잘하는'것과 '뛰어난'것의 차이도 저 날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껴버렸다. 그래서인지 유독 저 날의 대화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남아서 스스로 '이만하면 잘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며 해이해질 때면, 어김없이 "뛰어난 아이가 되어야지."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잘하다'와 '뛰어나다' 고작 단어 하나의 차이일 뿐이지만 그 차이가 가져다주는 느낌은 이처럼 많이 다르면서도 강렬했다.



  종종 연애에 관한 얘기를 듣다 보면 여성들은 유머러스한 남성에게 끌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실제 연구결과로도 있는 것이니 여성에게 어필하는 방법으로썬, 꽤나 신빙성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유머러스'한 남성이라는 말의 뉘앙스 때문인지, 이를 꽤나 곡해했다가 낭패를 겪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학시절 한 남자 후배는 자기보다 한학번 낮은 여자 후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모임 때마다 그 여자후배가 참석하는지 아닌지 확인을 했고,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여자후배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항상 재미있는 농담들로 그녀를 한껏 웃겨주었고, 그 덕분에 같이 모임을 가지는 우리도 많이 웃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3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그 여자 후배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상대는 같은 과의 동기라고 했다. 그러자 남자후배는 크게 낙담을 했고, 나와 몇몇 동기들이 모여 그 남자 후배에게 술을 사주며 위로를 해주었다.

  술자리에서 남자후배는 거칠게 술을 들이켜고 말했다.

  "아니, 여자들은 유머러스한 남자를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맨날 웃게 해 줬는데!"

  그의 말에 우리는 그저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그 새끼보다 뭐가 못났길래! 여자들은 유머러스한 남자 좋아한다는 거 다 구라야!"

  과제가 있어 늦게 자리에 참석한 여자 동기가 때마침 그 후배 앞에 앉다가 후배의 성토를 듣게 되었다. 후배의 성토를 들은 동기는 그 남자 후배에게 말했다.

  "너, 유머러스한 남자가 뭔 줄은 알고 그러는 거야?"

  후배는 눈에 독기를 품고 말했다.

  "누나도 이러기예요?"

  하지만 동기는 지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유머러스하다는 건 적당한 유머감각으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걸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유머러스하지 않다는 거예요? 아니 대체 그게 뭔데 그러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웃겨 줬잖아 진짜."

  그러자 동기는 후배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유머러스한 남자는
재밌는 남자를 뜻하는 거야.
너는 그냥 웃긴 남자고.
재밌는 남자는 계속 알아가고 싶지만,
웃긴 남자는 그냥 광대로밖에 안 보여.


  동기의 일침 때문에 후배의 마음은 그날 만신창이가 되었고, 덕분에 집에는 기어가야 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으로 그날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후배의 실연 덕분에 나는 '재밌다'와 '웃기다'의 명확한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어서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이 나 웃음을 짓곤 한다.


물론 치트키도 존재한다…


  이처럼 언어란 참으로 오묘하기 그지없다. 고작 단어 하나, 혹은 조사 하나의 차이에도 많은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위태로우면서도 강력하다고도 느껴진다. 그래서 저런 일들이 하나씩 발생할 때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최대한 정확한 단어와 정확한 표현으로 말하고 작성하려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쌓일수록 표현이 풍부해지고, 표현이 풍부해지는 만큼 내 감정이 더욱 확장되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가 제자들에게 '짜증 난다'는 표현을 금지시킨 적이 있다고 했다. 사람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에는 '서운하다', '억울하다', '속상하다' 등 다양한 감정이 있음에도, 이런 감정들을 뭉뚱그려 '짜증 난다'고만 표현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어를 어떻게 선택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제한을 둔 것이리라.

  이처럼 언어의 그 미묘함은 때로는 우리에게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한계로 우리의 세상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좋은 글들을 많이 읽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계속해서 나 자신을 확장할 수 있도록 스스로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이 미묘한 감정들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웃는 듯 우는 듯 참으로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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