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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Jan 25. 2024

부모가 부모이기 위해선

  나는 평소에 모자를 잘 쓰지 않는다. 머리가 눌리는 것도 싫거니와 그 꽉 끼는 촉감이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요즘의 강추위에는 모자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쓴다고 해도 패딩에 달려있는 모자인지라, 꽉 끼지는 않지만 그래도 머리가 눌리는 것이 신경 쓰이기는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모자를 쓰면 어릴 적 엄마와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어릴 적 나는 엄마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초등학생일 무렵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나를 불러서 방바닥에 앉혀놓고는 물었다.

  "제호, 너 야구 규칙 알아?"

  나는 야구를 해보기는커녕 TV에서 (나에게는 재미없는) 야구 중계방송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렸었기에, 당연히 아구 규칙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건 그냥 이 세상에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투수'가 뭔지 '타자'가 뭔지 조차 전혀 몰랐다. 

  그런 나를 두고 엄마는 갑자기 야구 규칙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공을 던지는 사람이 투수고, 그 공을 치는 사람이 타자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점수가 나고 어떻게 점수를 계산하는지, 언제 공수 교대를 하는지, 도루란 무엇인지 등 기본적인 야구 규칙에 대해서 모조리 설명을 해주었다. 다행히도 아직 어렸던 나는 엄마의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했고, 덕분에 야구라는 스포츠가 어떻게 흘러가는 스포츠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방법으로는 야구라는 스포츠에 흥미가 생기거나 좋아하게 되진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마는 엄마가 응원하는 야구팀을 나와 함께 응원하고 싶어서 가르쳐준 게 아닐까 싶긴 했지만, 그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내가 너무 커서 야구에 흥미를 가지기는 무리인 나이가 되어있었다.

  어느 날은 왜인지 모르지만 치킨을 먹던 도중에 엄마가 갑자기 닭다리뼈를 양손으로 붙잡고 똑 부러뜨렸다. 그리고는 부러진 뼈를 보여주며 말했다.

  "봐봐, 치킨 다리를 부러뜨리니까 반듯하게 부러지지 않고, 뾰족하게 부러지지? 그래서 이런 거는 동물들에게 주면 위험해."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봐도 왜 갑자기 엄마가 저런 생활의 팁을 전수해 주었는지 알 수가 없긴 하다. 집에서 개를 기르기는 했었지만, 저 말을 들을 때쯤에는 이미 동네 아주머니가 데려가서 키우고 있었던 터라, 딱히 내가 동물들에게 닭뼈를 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직접 보여준 저 교육방식 덕분인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읽힌 닭의 뼈는 동물들에게 주면 안 된다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어느 날 다 같이 집에서 새우를 구워 먹을 때였다. 갑자기 엄마가 나를 보며, 새우를 쉽게 까먹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엄마가 새우를 들어 2번째와 3번째 마디 사이를 양손으로 잡고 좌우로 당기니 놀랍게도 꼬리 부분이 쑥 빠졌다. 그리고는 새우다리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양쪽으로 벌리니 머리 쪽도 쑥 빠졌다. 그렇게 엄마는 순식간에 새우를 까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엄마의 일대일교육에도 새우를 까는 건 늘 어렵게 느껴졌고, 결국 요즘에도 가끔 새우를 먹을 때 엄마는 나를 보며 답답해하다가 결국 당신이 직접 새우를 까주시곤 한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생활의 지혜나 꿀팁 같은걸 참 많이도 배워왔다. 너무 많이 배워서 그런지 어떤 것들은 내 몸에 습관처럼 남아 있어서 자각조차 하지 못하다가, 가끔 남들이 그런 나를 보며 놀랄 때 '아, 이거 누구나 다 아는 게 아니었구나' 하며 엄마의 지혜에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나도 엄마에게 종종 실망할 때가 있었다.

  언제나 엄마는 머리를 손끝을 세워 박박 감으라고 설명을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배운 대로 머리를 감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두피는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고, 딱히 좋아지진 않았다. 엄마는 늘 나에게 제대로 머리를 감으라고 잔소리를 했고, 나는 엄마의 잔소리 전에도 이미 엄청 공들여 감고 있었기에 좀 억울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나중에 군대에 가서야 내가 머리를 감는 걸 본 선임이 "제호야, 그렇게 감으면 손톱이 두피에 닿아서 좋지 않아. 좀 가렵고 불편하더라도 손가락 지문 쪽으로 세게 눌러서 머리에 손가락을 비비듯이 감아야 두피에 상처가 안나."라고 충고를 해주었고, 그제야 내 머리 감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학생일 무렵 어느 날에는 전자레인지에 즉석식품을 돌려먹는 나에게, 엄마는 꼭 겉에 비닐을 씌운 다음에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라고 했다. 그래야 전자파가 차단된다며. 나는 그 얘기에 발끈해서 엄마에게 말했다. 전자기파는 비닐 따위론 차단되지 않으며, 애초에 전자레인지의 원리 자체가 전자기파를 통해 물 분자를 진동시켜서 데우는 것이기에 비닐로 차단이 된다고 하면 아예 데워지지 않는 것이 맞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내 의견을 묵살하며 그래도 비닐을 꼭 씌워야 한다고 했다. 억울한 나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라며 교과서까지 펼쳐 들었지만, 끝끝내 엄마는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외삼촌에게 전화까지 해서 나를 설득하려 했다. 결국에는 나에게 승산 없는 싸움임을 깨닫고 그냥 비닐을 씌우고 넘어가긴 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다 큰 지금 추측건대, 아마도 엄마는 부모로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그랬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릴 때 여름철 야외 활동을 할 때면 엄마는 나에게 꼭 모자를 씌웠다. 앞서 말했던 이유로 나는 어릴 때부터 모자를 싫어했기에 모자를 극구 거부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모자를 써야 덥지 않다며 억지로 모자를 씌우곤 했다. 당연히 모자를 쓰면 두피의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금방 땀이 줄줄 흘러 땀범벅이 되곤 했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자를 벗어야만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나에게 빨리 모자를 쓰라며 재촉하곤 했다. 그래서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부터는 모자를 극도로 혐오하게 되었고, 서른이 넘을 때까지 절대로 모자를 쓰지 않게 되었다. 


이런 식의 모자는 지금도 좀 꺼려지긴 한다.


  아마 내가 이 얘기를 하면 엄마는 대부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엄마에게는 사소하고 별것 아닌 에피소드들일테니까. 하지만 어렸던 나는 엄마의 생각보다 꽤 많은 것들을 기억했고, 그런 것들이 조금씩 쌓여 엄마의 말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낮아졌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 저 때 일들을 생각해 보니 많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나에게 잘 머리를 잘 감으라고 닦달만 하는 대신, 내가 머리를 감는걸 옆에서 한번 지켜봤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혹시 몰라 건강이 염려되니 어차피 전자파가 차단되지 않는다면 그냥 비닐을 씌우고 돌리면 어떠냐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자외선은 피부에 해로우니 좀 덥더라도 얼굴이 자외선을 많이 쬐지 않도록 모자를 쓰는 게 좋다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엄마와 나의 관계도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아마도 엄마 생각에, 나는 어린애고 엄마는 어른이니, 부모로서,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싶었을 것이고, 어린 나를 대등한 인격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그런 말들을 했었으리라 본다. 비단 우리 엄마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그러한 것이었으니. 하지만 결국 그런 행동들이 오히려 부모로서의 권위를 약화시켰고, 자식인 내가 엄마의 말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게 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자녀 교육이라는 게 늘 이론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오은영 박사 같은 전문가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자녀를 교육 또는 훈육할 때는 어린애라고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서 당장에 부모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한 순간만 다급히 넘어가기 위해 자녀를 다그치거나 거짓말로 넘어간다면, 정작 자녀는 그 일을 기억했다가 점점 부모에 대한 신뢰를 잃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몇 번 쌓이게 되면 교육과 훈육이 점점 어려워져만 가지 않을까.



아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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