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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Jan 11. 2024

빵이 내 앞에서 다 팔려 굶어 죽을뻔한 건에 대하여

  최근 회사 게시판에서 본사 복지와 관련된 논란이 일었다. 본사에서는 복지차원에 빵을 만들어 싼 값에 판매하는데, 맨 앞에 서서 기다리던 누군가가 그 빵을 모조리 쓸어가는 바람에,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빵을 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 빵 논란은 순식간에 크게 번졌고, 게시판에는 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자기 돈 주고 사 먹는 건데 그게 뭐가 문제냐',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도 없다', '나가서 사 먹어라', '맛도 없는 건데 왜 집착하냐' 등. 그리고 블라인드 어플에도 글이 올라왔다. '판교가 빵 복지는 더 좋은데 왜 본사인 잠실만 조리돌림하냐'라고.

  이런 논란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참 답답해졌다. 사실 빵 문제 자체는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문제보다는 다른 이유에서 답답해졌다. 일단 빵 문제만 살펴보자면, 뒤에 줄 서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빵을 싹 쓸어간 사람이 배려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사갔는지, 혹은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 수 없기에 그를 비난하기에는 조금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딱히 편법을 쓰거나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기에. 하지만 이에 불만을 가진 사람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자기 시간을 들여 기다렸음에도 앞사람이 다 사가는 바람에 자기 몫을 사지 못했다면 기분이 나쁠만하다. 그래서 이 문제는 그냥 다음부터는 1인당 수량을 제한해 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리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이 별거 아닌 문제가 커지게 만든, 그리고 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 건 이 빵 문제의 근본원인이라고 생각된, 복지의 불균형과 이에 따른 논쟁 및 상호비난이다. 모두가 본사에서 근무하는 똑같은 상황이라면 그냥 적당히 넘어가졌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빵 문제가 이슈가 되자, 게시판에는 '본사는 배부른 소리 한다', '빵이 뭔데, 구경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등 타 사업장의 목소리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논쟁은 개싸움으로 번졌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비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사건은 계속해서 커져만 갔고, 하루가 지난 오늘에서야 조금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며 비난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대체 왜 이런 일들이 있어야 하는지 참 답답한 마음이 든 것이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 사람들이 왜 이렇게 서로 비난하는 모습들을 보이는지에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1. 글을 통한 소통이 되질 않는다.

  요즘 인터넷에 보면 요새 아이들의 문해력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글들이 종종 보인다. 심지어는 티브이 프로에서 아예 특집으로 다루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내 생각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어른들도 딱히 문해력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평소 책이나 글을 읽지 않아서 그런 게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일단 쓰는 사람이 글을 이상하게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일을 하면서 많은 메일을 받는데, 그 메일의 절반가량은 '그래서 이게 무슨 소리야?'라고 말할 정도로 내용과 문장이 이상할 때가 많다. 문장의 구성도 엉망이거니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메일을 보내기 전 다시 한번 읽어보기만 한다면, 또는 평소에 좋은 문장을 많이 접했다면 이상하다는 걸 느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런 메일을 받은 사람들도 딱히 문해력이 뛰어나지 않다. 잘 정리가 안된 문장일지라도 상황이나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때가 있음에도, 스스로 생각해서 내용을 파악하기는커녕 아무리 잘 정리해서 좋은 문장으로 전달한다 한들 그 글에 대한 맥락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다. 예를 들어 '지난주에 어떤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는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어떤 자료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메일을 보내면 제대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하지 않기로 한 일에 대해 왜 언급을 하시죠?'라며 날 선 답장을 보내오곤 한다. 달을 보라 했는데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셈이다.


2. 화면 너머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아마 악플러들도 비슷할 것 같은데, 화면 너머에서 나와 대화하는 사람, 메일을 받는 사람, 댓글을 읽는 사람이 본인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거의 AI정도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아예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니 무언가 글을 쓰거나 댓글을 남길 때, 당연히 상대에 대한 배려도 없거니와, 머릿속에서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툭툭 튀어나온듯한 말을 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날 서있고 무례하며 비꼬는 그런 글들이 넘쳐나고, 여기에 감정이 상한 사람들이 또 글을 남기며 자연스레 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익명성도 한몫하는 것 같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이더라도 익명성의 가면을 쓰면 차마 상대의 얼굴을 보며 할 수 없는 말들을 마구 쏟아내는 게 보일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들은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얼굴을 밝히고 할 수 없는 말이라면 가면 뒤에 숨어서도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물론 공익을 위한 제보는 예외지만.

  그래서인가 나에게는 다산 정약용이 말한 편지 쓰는 법이 꽤 많이 와닿는다.


편지를 한 장 쓸 때는 두 번, 세 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가 사통오달 한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 본 뒤에야 비로소 봉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바다.


자녀 훈육을 위해 유배지에서도 계속 편지를 쓰셨다고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곳이 요즘의 웹툰, 웹소설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웹툰, 웹소설 독자들이 장문이나 복잡한 글을 꺼려하고 이를 통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웹툰이나 웹소설작가들은 은 점점 더 짧은 문장과 빠른 전개만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간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주인공이 답답한 모습을 보이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극성 독자들은 댓글로 작가에게 극심한 욕을 쏟아내곤 한다. 마치 '자유욕설권'이라도 얻은 듯, 작가뿐 아니라 작가의 가족들까지 들먹이면서 욕을 한다. 분명 화면 너머에 있는 그 작가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인격체인데 말이다.

  그래서 한때 웹툰, 웹소설을 즐겨보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런 것들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웹툰은 가벼운 일상툰 정도만 보게 되었고 웹소설은 완전히 끊고 오히려 이전의 순수문학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오히려 더 많은 사색을 하며 깊게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음도 잔잔해지면서 평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이제 세상은 빠르고, 짧고, 효율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많이 바뀌기도 했다. 80부작 대하드라마, 2~3시간짜리 영화에서 어느덧 10분 남짓의 유튜브로 넘어왔고, 다시 1분 미만의 쇼츠로, 틱톡으로 넘어왔다. 열 편이 넘는 대하소설에서 한 권짜리 장편 소설로, 다시 단편 소설로, 그리고 한 화 한 화 가볍게 보는 웹소설로 넘어왔다. 수십 권이 넘는 연재만화에서 한 편 한 편 가볍게 보는 웹툰으로, 그리고 컷단위로 보는 컷툰으로 넘어왔다. 이처럼 세상은 더 빠르게, 더 짧게, 더 효율적으로 변해왔고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오히려 더 느슨해지고 배려를 잃어가며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그런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던 그런 소중한 것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봐 많은 우려가 된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
그런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는 사실마저
잊혀질지도

후 불면 날아갈 것만 같네



PS. 제목은 일부러 시대의 흐름에 맞춰 웹소설 처럼 지어봤는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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