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언젠가 친구네 집들이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집주인이 아니라 나와 같이 초대받은 친구와 언성을 높이며 싸운 일이 있었다. 싸움의 계기는 진짜 별것도 아닌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멘탈이 영 좋지 못했다. 거기에 더해 집주인 친구의 새 외제차와 좋은 집을 보고 나니 마음속에서 열등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까지 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그런 사소한 것에도 괜히 화가 났고, 그러다 보니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아 결국에 싸우게 된 것이다. 언성을 높이며 싸운 것까지야 그렇다 치는데, 분에 못 이긴 나는 식탁을 내려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덕분에 집주인 친구의 아내분이 화들짝 놀라셨고, 아이도 놀란 듯했다. 그래서 같이 초대받은 또 다른 친구가 흥분한 나를 데리고 나가 진정시켜 주었고, 일단은 그렇게 싸움은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집주인 친구에게 연락해서 거듭 사과를 했다. 집들이를 하는 좋은 날에 싸움을 한 것도 그렇거니와, 집주인 친구 가족들을 많이 놀라게 한 데에 대해서도 사과를 했다. 사과의 뜻으로 선물이라도 보내려 했으나 극구 거절하기에 계속해서 사과를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절교를 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기에, 그에 대해 약간은 각오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잘 풀렸고, 지금은 종종 집주인 친구가 그때 사건을 얘기하며 나를 놀리곤 한다.
그렇게 한바탕 사건을 겪고 나니 문득 다른 한 친구가 떠올랐다.
2022년 가을쯤, 헤어진 여자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자기에게 이러는 거냐, 자기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는 원망 섞인 메시지였다. 연락을 받은 나는 이게 당최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없었다. 이미 헤어진 지 두 달이나 지난 시점이었기에 더더욱.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달래 가며 사정을 들어보니, 내가 헤어진 여자친구의 물건을 다 망가뜨려서 보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언컨대 그런 적이 없다고 했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주선자였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왜냐면 나는 헤어진 직후, 여자친구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곱게 포장해서 잘 정리한 다음 전 여자친구에게 전해달라고 주선자 친구에게 부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연락을 받은 주선자 친구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을 했다.
그 순간 화가 많이 나기는 했지만 딱히 그 친구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본인의 어조를 볼 때 본인이 별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고, 그런 사람에게 화를 내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일단은 나 스스로 생각을 좀 해보았다. 그 주선자 친구가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을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어떤 사정이 있어야 잘 포장해서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물건들을 중간에 뜯어서 마음대로 쓰고 아무렇게나 담아다가 전달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이런 것들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전 여자친구에게는 거듭 사과하며 다 보상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금전적으로라도 내가 다 보상을 해주겠다고 얘기했다. 그럼에도 전 여자친구는 나에 대한 원망을 거듭해서 쏟아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서야 중간에 누락된 짐들이 전 여자친구에게 도착했는데, 그중에는 전 여자친구의 사촌언니가 사줬다는 등산화도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 신발이 전 여자친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물건임을 알고 있었기에 몇 겹이나 포장을 해서 박스 안에 담았었다. 그 덕분에 박스나 그 안에 담겨있던 다른 물건들은 많이 망가졌지만 그 신발만큼은 몇 겹의 포장을 해놓은 상태로 온전히 전 여자친구에게 전달되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전 여자친구는 "그래. 네 성격상 네가 그랬을 리가 없지. 이 신발처럼 하나하나 꼼꼼하게 포장해서 보냈었겠지."라며 그제야 오해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결이 될 때쯤에서야 주선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미안하다는 내용이었으며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미 친구에 대한 신뢰를 잃은 나는 더 얘기를 들어보고 싶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한들 내가 납득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주선자 친구와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났었다.
그 뒤로 약 반년뒤에 글 첫머리에서 말한 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잘 마무리되자, 중간에 물건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던 그 주선자 친구 생각이 났다. 집주인 친구에게 절교를 당하지 않은 나는 어떻게 보면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물건을 제대로 전해주지 않았던 주선자 친구에게도 뭐라 변명할 기회정도는 주는 게 맞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을 한편에 놓아두고 살고 있었는데, 바로 얼마 전 12월 말에 그 친구로부터 무려 1년 만에 연락이 왔다. 여전히 그때 일이 마음에 걸려 사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네 동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렇게 만난 친구는 표정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때 그 일 이후로 마치 벌을 받는 것 마냥 모든 일들이 풀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그때 그런 일을 저질렀을 때 미쳤던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 친구가 생각해도 딱히 변명할 거리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입장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그런 사고를 친 것 자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만, 일단 사고를 친 이상 수습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묻어두는 바람에 내가 그 사건을 전 여자친구를 통해 들어야 했던 점이나 그러고도 수습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 등으로 인해 많이 화가 났었고 많이 실망을 했었다 얘기를 했다. 그리자 그 친구는 미안하다며 뭐라 할 말이 없다 했다. 그렇게 그 사건에 대한 얘기는 마무리가 되었고 그 뒤로 남은 시간 동안 지난 1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약간의 소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서로 만나 얘기를 하기는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마음이 생각만큼 썩 개운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 친구는 나에게 용서해 주어 고맙다고 했지만, 정작 나는 그 친구에 대한 신뢰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에. 그래서 무언가 뒷맛이 씁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눈 것은 다행이고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각박하고 힘든 세상에, 잘못을 저지른 친구에게 아무런 기회조차 주지 않고 무작정 내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좀 오만한 소리지만, 최소한 나 만큼은 주변 사람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면, 누군가 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았던
그 사건이 마무리되며
2023년이 마무리되었다.
그래서인가,
2024년에는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자상하고
조금 더 관대하고
조금 더 베푸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