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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Dec 31. 2023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발!

  요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단톡방에 소소한 낙이 하나 생겼다. 바로 덕담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소위 말하는 어르신들이 서로 주고받는 덕담이 적힌 그림이나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한 2년 전에 친구 하나가 장난스럽게 자기네 부장님께 받은 메시지라며 올린 이미지를 시작으로, 어느샌가 다들 월말이나 월 초가 되면 "야, 이번에는 그거 없냐?"라며 그 이미지를 찾곤 한다. 시작은 소소한 장난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진심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들은 진짜로 어르신들이 만드는 이미지가 맞다고 한다. 한 유튜브에서 이런 이미지들이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생겨 돌아다니는지를 본격적으로 캐본 적이 있는데, 주로 은퇴하신 분들이 문화센터나 행정복지센터에서 컴퓨터 강좌를 들으며 만드시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그 영상에서는 실제로 어르신들이 수업을 들으며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인가 시간이 지날수록 컴퓨터를 잘 다루는 어르신이 많아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미지의 퀄리티도 조금씩은 올라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오늘 단톡방에 올라온 이미지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어김없이 단톡방에는 위처럼 다가오는 24년에 많은 복을 받으라는 이미지가 올라왔는데, 그 이미지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니, 문득 이제는 내가 새해 인사말에 너무 진심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과 작년까지는 새해가 오는 것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익숙해진 연도 표기를 새로이 바꿔야 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야 하는 것일 뿐이지요 새해가 오건 말건 나랑 별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도 그냥 형식적인 인사일 뿐이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의무감으로 이런 인사를 돌리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이런 인사를 주고받는 우리네 풍습이 영 마뜩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화요일, 부서원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를 공지하며 메일 말미에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문구를 넣을 때는 무언가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 말은 부서원들에게 한 말이었지만, 묘하게도 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진 것이다. 요즘에 사람들하고 얘기하면 내가 2023년은 너무 힘든 한 해였기 때문에 빨리 지나가고 2024년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해서 그런지, 저 말을 썼다는 것 자체가 왠지 모르게 내가 나에게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라고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2023년의 마지막 근무일인 금요일에도 사람들과 메신저를 통해 이런저런 일을 얘기하는데, 메신저 말미에 나도 모르게 "2024년에는 우리 새해 복 많이 받아요."라고 쓰는 것을 자각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새해에 복을 받는데 진심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이 들어오라고 현관에 선물 받은 명주실 감은 액막이 명태를 걸어놨다.


  그러자 어른들이 예전부터 그런 이미지들을 주고받고, 늘 좋은 말, 좋은 글귀를 단톡방에 올리는 이유가 어느 정도 추측이 되었다. 아마 지금까지의 이런 팍팍한 삶은 지나가고 제발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런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모두 포함해서 다 같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있었을 것이다. 아마 이런 마음은 더 많은 삶을 살아오고 많은 경험을 겪어서 이 세상이 녹록지 않은 곳임을 피부로 더 많이 느낀 어른들이 우리 같은 젊은이들보다 더 많이 느꼈을 것이기에 어느샌가 어른들의 단톡방의 상징처럼 굳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저런 인사말에 진심이 된 나도 이제는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고 인생이 팍팍하다고 느끼는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낮술 하는 친구들이 술을 마시면서 나를 주제로 얘기한 적이 있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얘기하다가 뭔가 궁금한 게 생겼는지, 일하는 나에게 전화해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 나는 단톡방에서 그들에게 욕을 하며 무슨 대화를 하는지 물었고, 전화한 친구는 다들 행복하게 잘 살면 좋겠다 얘기를 했다고 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비슷한 것들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가 그 친구의 얘기처럼
나도, 가족들도, 친구들도, 동료들도,

그리고 내 글을 봐주시는 모든 분들도
새해에는 행복한 일만 가득하고
다들 복 많이 받으면 좋겠다.
꼭.



으이그 푼수데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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