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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Dec 14. 2023

외로움은 '이것'만큼 해롭다고?

  남들이 볼 때 나는 정말이지 무언가 이것저것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하는 사람이다. 주 2회 PT를 받고, 주 2회 클라이밍 강습을 받고, 그 와중에 사람들하고 술도 마시고, 집안일도 다 하고, 게임도 하고, 만화책도 보고, 레고도 조립하고, 브런치에 글도 쓰고, 소개팅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때로는 길게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할 시간이 있냐며 신기해한다.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아이를 돌보는 데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니까 시간이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나처럼 미혼이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의 24시간과 나의 24시간이 크게 다를 이유가 없기에 더더욱 신기해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차이가 나는 이유를 대략적으로 짐작하고 있긴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집에 TV도 들여놓지 않았고, OTT를 단 한 개도 구독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마 그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TV나 OTT를 틀어놓고 무언가를 가만히 보고 있는 시간이 아예 없다고 해도 무방하며, 대신에 그 시간 동안 다른 할 것들에 집중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무언가를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꽤나 시간이 많이 남는 편이라, 나는 평소에 늘 심심해하곤 한다. 매일, 매 순간 무의식 중에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과 "심심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면 사람들은 "너는 그렇게 많은 걸 하는데도 심심해?"라고 놀라워하며, "내가 볼 땐 넌 오히려 너무 바빠. 그냥 심심한 상태로 좀 쉬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면 나도 "그래야겠지?"라고 대답을 하곤 하지만 정작 뒤돌아서면 다시 심심해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하곤 한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나의 심심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일이 생겼다.




  얼마 전 본사에 들를 일이 있었다. 이왕 들른 김에 본사에서 일하는 후배에게 연락을 해 같이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오랜만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후배는 부모님이 두 분 다 여행을 가셔서 집에 혼자 있는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후배는 내가 봐도 절망적일 정도로 살림을 못하는 사람이었기에, 혼자서 지내는데 꽤나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보니 뻔뻔하게도 나보고 놀러 와서 살림을 좀 도와주면 안 되겠냐는 제안(?)을 했다. 당연히 나는 제안을 거절하고 후배에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살림이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데 혹시 너 ADHD인 거 아니냐"부터 시작해서 "너 정도로 살림을 못하면 나중에 결혼해서 배우자에게 평생 미안해하며 살아도 모자라다"까지. 후배는 내 얘기를 듣더니 세상 사람들이 다 선배처럼 혼자 알아서 다 하는 사람은 아니라며 반박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저는 외롭지는 않지만
혼자서 살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반대로 선배는 혼자서도 잘 살지만
외로운 사람인 것 같고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후배의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외롭다고? 아니, 나는 혼자 잘 사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후배의 말을 부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큰 충격이었던 지라 딱히 후배의 말에 대꾸하지는 못하고 "그런가?"라고 말하곤 넘어갔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자려고 침대에 누우니 낮에 들었던 후배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그리고는 계속 그 말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니 내가 왜 그렇게 보였지? 나는 혼자 잘 살고 있는데.'

  '쟤도 내가 혼자 잘 지내고 이것저것 하는 거 다 알잖아. 놀러 와보기도 했으면서.'

  '혼자서 잘 살지만 외로운 사람인 것 같다고? 딱히 외롭진 않은데.'

  '그냥 좀 심심할 뿐이야. 연애를 못해서 요새 더 심심한 거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심심한 게 아니라
외로운 거였구나.
그걸 구분하지 못해서
늘 심심하다고 했던 거구나.




  그러자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인 쿠르츠게작트(Kurzgesagt)라는 독일 채널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다. 이 채널은 모션그래픽을 통해 다양한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을 설명해 주는 채널인데, 이 채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상 중에 하나가 바로 '외로움'에 대한 영상이다. 

  그 영상의 내용에 따르면, 인류는 생존을 위해 사회적 고립, 다시 말해 외로움을 느끼면 뇌가 고통을 느끼도록 진화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와 기술이 발달되어 감에 따라 사람들은 개개인이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고, 그로 인해 오늘날에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예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왜 이 외로움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지에 대해 설명해 준다.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면 노화가 가속되고 암이 더 치명적으로 변하며 치매를 심화시키고 면역력을 약하게 한다고 한다. 비만보다 두 배나 해롭고, 매일 담배 한 갑을 피는 것과도 같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만성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면 뇌는 사회적 신호에 민감해짐과 동시에 사회적 신호를 해석하는 능력이 저하된다고 한다. 타인에게 더 집중하지만 정작 타인의 표정이나 감정을 잘못 읽게 되고 그로 인해 타인을 불신하게 되고 멀리하게 되며 고립이 가속화된다고 한다. 


출처 : 쿠르츠게작트 채널


  요즘 끝도 없이 우울하고 세상 모든 것들이 내 앞을 가로막는 것 같고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아 보였던 것이 모두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정작 그 외로움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로 사람들을 피해왔고, 거기에 더해 늘 심심하다고만 말해왔기에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스스로를 계속해서 고립시켜 온 것이었다. 

  그러자 요즘 느껴지는 몸의 변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요새 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 영향으로 몸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의 원인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정도 스트레스에 몸이 이 정도로 나빠지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외로움에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겹쳐진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내 몸 상태가 이렇게 된 것이 이해가 되었다.


  덕분에 이제는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사람들하고 연락도 주고받고,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안부도 물어보고 하면서. 

  하지만 반대로, 올해도 거의 다 갔으니 남은 기간은 그냥 쥐 죽은 듯이 살고, 내년부터 좀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모든 것이 안되기만 했던 2023년이 빨리 가고 다가오는 2024년에는 모든 것이 잘 풀리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내년에는 무엇보다,
덜 외로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쿠르츠게작트 한국 채널 링크를 눌러보세요~!

    외로움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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