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인 "어쭙잖게 위로하지 말아 줄래?"에서 주변인들이 나에게 하는 약간의 잔소리(?)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처럼 나는 요즘 만나는 사람들 거의 모두에게 늘 잔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잔소리의 9할 이상은 '너도 연애하고 결혼해야지'다.
그들이 나에게 왜 그런 잔소리를 하는지 절반쯤은 이해가 가고, 절반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이 보기엔 혼자 지내는 내가 외로워 보이고 가여워 보이니 그런 잔소리를 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 쳐도 내 기준에는 그들의 잔소리의 빈도와 정도가 심한 편이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잔소리하는 이유의 절반은 알겠지만, 나머지 절반은 도통 알 길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그들의 잔소리가 지겹다 못해 짜증을 유발하기까지 해서 요새는 종종 그들에게 화를 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잔소리는 그칠 줄을 몰라서,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최근 회사 사내 게시판의 어떤 글을 보고는, 그들의 그런 잔소리를 딱히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내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이상한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하루종일 일은 하지 않고 신문 기사만 퍼다 나르는 사람도 있고, 연말이면 모 커피숍의 쿠폰을 구걸하는 글들도 우후죽순 올라온다. 그런 와중에 가끔은 누군가 회사생활에 대한 고민을 올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 본 글에서 글쓴이는 자신이 근무하는 곳이 꽤나 먼 지방인지라 여러 가지로 회사 복지를 누리거나 혜택을 받기가 힘들다는 말을 했다. 자기뿐만 아니라 그런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부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격오지 사람들을 고려한 정책을 펼쳐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격오지에서 일하지는 않지만 업무 환경상 회사 밖에서 프로젝트를 따라 늘 돌아다녀야 하는 입장이라 그 글에 많은 공감이 갔다. 하지만 그 글에 달린 댓글 반응은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댓글을 통해 위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부서를 옮기면 되잖아?', '누가 거기 있으라고 협박함?'이라고 말하며 마치 글쓴이가 잘못한 것처럼 몰아갔다. 당연히 글 쓴 사람이라고 부서를 옮기면 되는 걸 모르겠는가. 다만 주거라던가 가족이라던가 경력 등의 제약으로 인해 쉽사리 옮기지 못하고 있을 뿐. 하지만 댓글을 단 사람들은 그 사람의 속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잔소리를 무신경하게 내뱉을 뿐이었다. 심지어는 부서를 옮기지 못하는 글쓴이가 무능한 것이 아니냐는 투로 비꼬는 댓글도 달렸다.
결국 글쓴이는 그런 댓글들을 견디지 못하고 글을 삭제해 버렸다. 마음속깊이 그에게 공감하고 있던 나는 그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회사에 실망했을지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걱정해 주는 사람들은
감히 아무런 위로도 하지 못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무신경한 놈들만
저렇게 잔소리를 하는구나
그러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나에게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잔소리하는 사람들은 정작 잔소리만 할 뿐 무언가 도움을 주거나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연애해라, 결혼해라 말만 할 뿐 누군가를 소개해준다거나 모임에 초대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작 내가 그 잔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물어보면 그저 나가서 헌팅을 해보라는 등, 동호회를 가입해 보라는 등 누구나 할 수 있을법한 그런 쓸데없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럴 때 내가 '당신은 그렇게 해본 적이 있냐'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다.
오히려 잔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을 해주고 걱정을 해주는 듯했다.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 그런 사람들이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잔소리를 할 만큼 친밀하지 않은 관계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새 그런 사람들이 나에게 연락해 매우 신중하게 말을 꺼내며 누군가를 소개해주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잔소리를 하지 않을 뿐, 나를 많이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새삼 그들에게 매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그런 그들을 보며 내가 그래도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님에 안도하기도 했다.
그래서인가 본의 아니게 이제야 주변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의 잔소리나 조언이 그리 좋은 의도가 아닐 수도 있으며 의도가 좋더라도 딱히 맞는 얘기는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지난날 그런 얘기들에 휘둘려
잘못된 결정을 내린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는 오롯이
내 갈길을 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