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인 수지에 산다. 그리고 지금은 역삼역 근처로 출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출근을 할 때면 신분당선을 타고 서울로 올라가서 강남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한 후, 한 정거장 뒤인 역삼역에서 내려 출근을 하고 있다. 출근길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앉아서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지하철 내 붙어잇는 온갖 광고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사람들에 끼어서 휴대폰의 좁은 화면만 바라보며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광고가 하나 있다.
강남역에서 신분당선과 2호선 사이 환승구간은 거리가 꽤 되는 편이다. 신분당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와 환승 게이트를 찍고 나면 2호선까지 긴 통로가 이어진다. 생각보다 길다 보니 짧게나마 무빙워크도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통로의 양옆은 광고판으로 쓰인다. 광고판은 크게 두 개로 나뉘어있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보는 것처럼 사진이나 포스터를 붙이는 광고판이고 하나는 스크린으로 영상을 틀어주는 광고판이다. 그리고 보통 사진이나 포스터를 붙이는 광고판에는 한 개, 많으면 두 개의 광고가 걸린다. 그러다 보니 그 광고의 스케일은 생각이상으로 많이 큰 편이기에 아무리 휴대폰을 보면서 걷는다 한들 그 광고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큰 광고판에 얼마 전부터 걸려있는 광고가 내 눈길을 끌었다. 바로 모 아이돌 가수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광고였다. 거기에 광고를 거는 것은 꽤나 큰 비용이 들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수의 팬들은 그렇게 광고를 내어 그곳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가수의 생일임을 알리고 싶었나 보다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지금 나와 같이 출근하고 있는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분명 오늘이 생일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은 이 인파 속에 섞여서 출근을 해야 하며 이 인파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이 생일인지조차 모를 테니까. 생일이 아니라 그런 사람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었다. 물론 그 사람도 오늘 퇴근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동료들과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옆에 걸린 아이돌 가수의 생일과 그 사람의 생일이 이토록 다르다는데 약간의 불공평함과 씁쓸함을 느꼈다.
옛날에는 왕권이라는 것이 절대적이었다. 왕권은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라고도 했고, 그래서 왕을 하늘의 자식이라는 뜻의 천자(天子)라 부르기까지 했다. 세상은 절대적인 한 사람과 소수의 귀족들, 그리고 다수의 평민과 노예들로 이루어졌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못 하게 불공평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왕과 왕족, 귀족들은 평민들의 세금으로 놀고먹으며 노예들을 부리고, 자신들의 탐욕으로 전쟁을 일으킨 다음 평민과 노예들을 전선으로 보내 죽게 만들었다. 나름의 대의가 있는 전쟁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당장 오늘 먹고사는 게 걱정인 평민과 노예들을 전장으로 내보내는 게 정당화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인류는 긴 시간에 걸쳐서 극도의 불공평함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세상이 좀 더 풍요로워지고 사람들에게 지식이 쌓이기 시작하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모든 걸 쥐고 있는 절대왕정에서 공화제로 변화하며 조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평등해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노예제도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일정 비용을 치르면 노예에서 해방시켜주기도 하고, 징병제 대신 모병제로 전환해서 군인들에게도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나폴레옹처럼 황제로 추대되는 사람들도 가끔은 나타났지만,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 왕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왕이 잘못하면 언제든 몰아낼 수 있다는 인식이 박혔기 때문에, 결국에는 나폴레옹도 황제 자리에서 쫓겨났고, 결국에 사회는 다시 공화제로 돌아갔으며 이는 다시 민주제,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까지 이어졌다.
민주주의도 시작부터 모두가 평등하지는 않았다.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없던 시절도 있었으며, 피부색에 따라서 차별을 받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계속해서 발전해 왔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평등해지고 공평해져 갔다.
이처럼 인류 역사는 다수의 사람이 더 많이 평등해지는 방향으로 흘러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마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날 기사를 보는데 자녀의 성공에 가장 큰 요소를 미치는 것은 IQ나 EQ도 아닌 아버지의 재산이라는 글을 보았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가 없으며 부모의 도움 없이 성공하기란 엄청 힘들다는 얘기였다. 물론 그 와중에 용이되는 사람도 있으나, 그 수는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이 되고 그 계급은 점점 더 견고해져 후대로 계속 대물림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의 대표적인 예로는 영국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보이지 않는 계급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사람들은 점점 더 대도시에 모여 살고 통신을 통해 연결되면서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예전보다 더 정확하게 알아버리게 되었다. 예전에 마을의 오십 가구 중에 스물다섯 번째로 잘 살던 가정은 그런대로 행복하게 지냈을 것이다. 왜냐면 중간은 가니까. 하지만 이제는 너무 세상이 발달해 버린 나머지 SNS를 통해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잘 알게 되어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본의 아니가 전국 5천만의 인구 중에 내가 몇 등인지까지도 낱낱이 알게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모든 부와 명예, 인기가 상위 10% 상위 1%로 몰리게 되어버리며, 나름 예전에는 행복하게 잘 살던 사람들도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나름 우리 마을에서 미남이라고 소문난 철수는, 우리 마을 안에서는 나름 인기도 얻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곤 했었지만, 세상이 발전하고 전국의 모든 미남들의 순위가 매겨지는 이런 사회에서는 철수가 딱히 미남이 아니게 되고 철수에게 향하던 인기는 모두 철수보다 더 잘생긴 사람에게 집중되어, 철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그런 식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생일이라고 남들이 큰돈을 들여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광고를 내주는 한편, 누군가는 생일이건 말건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그런 격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제는 상대적 박탈감이 극도로 심화되어 이를 극복하기보다는 아예 자식을 낳는 것을 포기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아이를 낳으면 적어도 남들이 해주는 만큼 해줘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들처럼 잘 키울 자신이 없기에 애초에 낳지 않겠다는 셈이다. 남들의 눈을 신경 쓰지 말고 소신을 갖고 기르라고 하기엔 우리 사회가 너무나도 심화된 경쟁사회이며, 그에 다른 책임은 온전히 그들이 떠안아야 하기에 쉽사리 조언을 해줄 수도 없다.
어느샌가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끝에 지금 한국은 출산율 0.7이라는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경이로운 수치를 달성해 내었다. 모든 생물의 최우선 본능인 종족의 번식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지금의 시대는 과연 대체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좋지 않은 의미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