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퇴사하기로 했다.
파이어족을 꿈꾸긴 했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먼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회사를 정하지 않아서 이번 회사가 마지막이 될지 다른 회사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이곳에서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저께 이 방이 나갔고, 나 이후에 입주자가 들어오기 전에 나는 2022년 5월 13일 부로 이 집을 비워 주어야 한다. 진짜 지금까지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스무 살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나의 고향은 충청북도의 충주이다. 대부분의 사람의 고향이 어디야?라고 물어서 충주라고 대답하면 아, 충주.라고 대답해 놓고 나중에 꼭 청주라고 기억하는 그 도시. 예전에는 청주 아니고, 충주요.라고 백이면 백 대답을 고쳐 주었다면 나이가 먹고 그다지 인식시켜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겐 예예. 그쯤이요. 하고 말기는 하다. 나는 충주에서 태어나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고, 충주에서 자랐다. 이제는 나고 자란 만큼 고향에서 멀어져서 살아서 익숙하지만 제법 낯선 도시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처음에 충주에 돌아가겠다고 부모님께 말했을 때 일단 두 분 다 반대를 하시기는 했다. 나이는 서른여덟이나 먹어서 결혼도 안 하고, 할 생각도 없이 갑자기 잘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돌아온다고 하니, 대번에 "여기 와서 뭘 할 건데." 이 시골에서.라고 하셨다. 뭐든 하겠지. 근데 회사는 별로 안 다니고 싶은데...라고 별생각 없이 대답했을 때도 아마 걱정이 크셨을 거다. 그런데 엄마 잘 생각해봐. 나는 제법 이런 삶을 살았어. 하고 싶은 건 했던 것 같아. 지금에야 돼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고향에 돌아가기로 한 내가 굉장히 생각 없고, 무대포 같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잘 생각해보면 나는 대부분의 결정이 이랬다. 그다지 생각을 하지 않고 하는 행동파였었다.
잘 생각해봐 엄마.
사실 대학은 계획에도 없던 원주에서 나온 건 원주에 있는 대학에 붙었으니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첫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내러 학교에 직접 갔었다는 것과 1학년 1학기 첫 주말에 충주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3월에 폭설이 내려버려서 터미널에서 충주에 가는 버스 운행이 중단이 되어 그다음 주에 집에 가면 되는 것을 징징 울면서 죽어도 집에 가겠다고 그 폭설에 운행한다는 제천행 버스를 타고 제천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충주에 간 기억. 그때 생각하면 참 아가였다 싶기도 하고 전화로 엉엉 울던 나에게 다음 주에 오면 되지! 하지 않고 집에 갈 방법을 알려주었었다. 그때는 그냥 아무것도 못하는 애기였었나 싶기도 하고, 엄마, 아빠한테 건 스스로 느끼기도 말이야.
그렇게 얼렁뚱땅 대학을 졸업하고 순탄하지 않은 첫 직장에서 진짜 더러운 꼴 다 겪고, 내 능력치 뼈저리게 느끼고 이 회사 아니면 누가 나 받아주겠나 싶은 생각에 진짜 맨날 울면서 꾹 참고 꾸역꾸역 다니다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을 때, 사실 워낙 꾹 참고 다녔어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갑자기 그만두고 일본 보내달라고 통보했었다. 왜 그랬더라.
하여간 워킹홀리데이 가고 싶다고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때까지도 우리 부모님 진짜... 얘가 가려나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당시 비자받기도 힘들고, 혼자 집 구하기도 처음이고. 근데 운 때였는지 혼자 인터넷 찾아서 준비하던 비자가 한 번에 덜컥 나왔고, 원룸 한번 내 손으로 구해 본 적 없던 애가 일본에 혼자 집을 구해서 이민가방 끌고 울지도 않고 김포공항 출국장을 들어섰었다. 그때까지 제주도 가는 비행기 말고는 외국 가는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었고, 일어를 전공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진짜 못했을 때다. 알아듣기나 하면 참으로 다행일 때, 그리고 가서도 잘 살았다. 갈 때 쥐꼬리만 한 퇴직금이랑 엄마가 보태 준 돈이랑 해서 갔던 거 같은데 아르바이트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말도 많이 늘고. 허투루 살진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가서 모임도 척척 하고 그런다는데 나는 워낙 내향적이라 한국인 모임엔 끼지도 않았고, 일단 살던 동네에 친구도 없었고, 아르바이트하던 곳은 한국인이 없어서 저절로 말이 늘었다. 그냥 한국인이랑 못 놀았다는 소리다.
그리고 한국 들어와서 운 좋게 들어간 회사에서 운 좋게 사무실 확장한다고 성남으로 올라갈 직원들 추릴 때도 엄마가 내가 일본에서 무사히 별 탈없이 살았던 게 좋았는지 너는 무조건 간다고 하라고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당연히 그때도 아빠는 또 반대했다. 자꾸 어딜 나가냐고. 처음부터 안 갈 생각이 없던 나는 또 얼렁뚱땅 성남 올라와서 일했다. 그리고 또 갑자기 회사에서 일본 법인을 세울 건데 너 가볼래? 근데 금방은 못 와. 하길래 오케이 했다. 뭐, 가서 알바도 하고 살았는데 공짜로 집도 주고 밥도 주고 월급도 준다는데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또 떠났다. 나는 생각해보면 늘 그런 식이었다.
다녀와서도 수십 번을 일본을 왔다 갔다 하고 그 회사도 그만두고 서울에 있는 회사에 입사하고 퇴사하고, 또 판교로 입사하고 퇴사하고, 이번엔 고향으로 가고 싶었다. 나 나와서 너무 얽매여서 살았던 것 같아서, 부모님 눈에는 과년한 딸내미가 결혼도 안 해. 연애도 안 해. 답답하시겠지만 여기저기 남의 좁은 집에서 출퇴근이나 하면서 답답하게 살기도 지쳤고, 편하게 또 진짜로 과년해서 언제 누가 나타나 시집 갈지도 모르는데 엄마, 아빠 옆에서 재미나게 살고 싶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약 3주. 돌아가는 동안의 기록 겸 돌아가서의 기록 겸 내가 뭘 하고 살지에 대한 깊은 생각...은 또 물론 하지 않고 살겠지만 기록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