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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Feb 26. 2024

다음에, 다음에

제삿날

하하하 그 댁도 제사인가 봐요?

눈이 감기게 웃는 얼굴로 숙주나물과 두부, 생선 전 재료가 담긴 카트 옆에서 삶은 고사리와 도라지를 고르는 내게 여자가 묻는다.

아, 네

먹지도 않아 늘 남는 나물들의 가격을 보면서 한숨이 났다. 전은 그래도 부쳐놓으면 제사나 차례를 자내고 나서라도 제주에 곁들이기도 하고 나중에라도 냉동실에 넣어 뒀다가 먹어도 되니까 유증기 삼켜가며 부치는데 나물은 늘 냉장고에 들렀다가 버려진다.


전 이번엔 그냥 살까 봐요, 너무 비싸네 저흰 네 식구끼리 지내서 먹을 사람도 없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뱉더니 나물 봉투를 들고 있는 내 얼굴을 살핀다, 나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었나 보다


저어기, 같이 가서 살래요?


손으로 가리킨 곳은 마트 안에 있는 반찬가게다.  딱 학교 다닐 때 수업 빼먹고 나갈래 하던 친구 얼굴이다. 눈이 사라지도록 웃으면서 처음 본 내 팔을 잡는다. 지금의 내 눈이 그런 것처럼.

슬쩍 끄는 대로 카트를 밀고 간다.


두 개는 사야겠죠?


그녀는 먼저 고사리랑 도라지를 챙겨 내 카트에 넣어준다. 자기 걸 챙겨 넣고 또 웃는다.


그럼 제사 잘 올리세요


웃음을 참으면서 나는 먼저 돌아섰다. 그녀도 나도 혼자라면 못했을 일인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 나물이 든 용기 네 개를 꺼내면서 또 웃음이 났다.

그런데 가슴이 또 철렁한다. 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이번이 세 번째 제사인데.


재료를 손질해 씻어 놓고 물을 끓여 숙주와 시금치를 삶고 포를 떠 온 생선과 두부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펼쳐 놓고 표고기둥을 잘라 행주로 닦고 간 고기와 두부를 섞어 치대고 고추를 길게 갈라 씨를 빼놓고 달걀을 풀고.

몇 시간 서서 전을 부치고 화구와 작업대를 닦고 기름 튄 주방바닥을 걸레질을 했다.

집에 가득한 기름냄새가 내 몸에도 붙어 있다. 천천히 목욕을 하고 머리를 말리고 욕실 바닥에 떨어진 나의 긴 머리카락을 주웠다.

어둑해진 소파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가 결국 벌떡 일어났다.

슬리퍼를 꿰어 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도라지와 고사리를 샀다. 아아 마트보다 거의 두 배는 비싸다.

바쁘다, 6시까지는 끝내야 한다.

소금을 넣어 도라지를 바락바락 씻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었을까 생각한다.

아버님은 도라지는 손도 대지 않으셨는데.


그래도 내년 제사에도 꼭 그녀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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