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지난주까지 더워서 반팔, 반바지를 입어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는데 하루 만에 온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였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의 11월 강설량은 1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눈으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학교 일부는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고 도로 곳곳에서도 교통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서울 도심의 일부 주택가에서 정전 사태가 일어나 시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습니다. 이처럼 때아닌 폭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가운데 즐거운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었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눈이 내린 것을 매우 즐거워하며 등원길에 올랐습니다. 제법 눈이 쌓인 관계로 썰매를 태워 등원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인데요. 덕분에 등원 시간도 평소보다 훨씬 단축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등원시킨 뒤 썰매를 다시 집으로 가져다 두기에는 다소 시간이 빠듯해서 차에 그냥 싣고 학교로 출근하였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학생들은 눈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고 있었습니다. 일부 센스가 있는 학생들은 눈으로 오리를 만드는 기구를 가지고 와서 오리를 여러 마리 만들고 있었고요. 때마침 오늘은 운동장 체육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운동장에서 눈을 가지고 놀게 했고 마침 차에 실어두었던 썰매를 투입했습니다. 학생들은 우리 아들, 딸처럼 썰매를 보자마자 반색했고 서로 사이좋게 끌어주면서 재미있게 타고 놀았습니다.
그렇게 학생들과 눈을 가지고 재미있는 하루를 보낸 뒤, 퇴근 후 아이들을 하원하러 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어린이집 앞 조그만 공터는 눈을 갖고 놀고 있는 가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썰매뿐만 아니라 오리 눈 만드는 기구, 공룡 눈 만드는 기구 등 다양한 아이템들을 활용해부모님과 재미있는 놀이를 하였습니다. 요새를 만들어 오리를 지키는 가족이 있었는가 하면 썰매로 손님들을 계속 실어 나르는 가족들도 있었죠. 그 와중에 전통을 고수한 부모님들이 있었으니 바로 '눈사람 만들기'였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장갑을 우리 반 학생에게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맨손으로 눈사람을 만들어야 하는 다소 열약한 환경에 봉착했죠. 그렇지만 저는 아이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맨손 투혼으로 눈을 열심히 뭉치고 굴려 눈사람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공작 실력이 다소 모자라 다른 부모님들처럼 눈, 코, 입이 근사하게 달린 눈사람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돌, 나뭇가지, 나뭇잎 등을 이용해 사람 형태의 눈사람을 우여곡절 끝에 완성하여 아이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다른 부모님들이 만든 눈사람을 더 선호하였고 제가 봐도 재야의 고수들이 만든 눈사람이 더 우수했기에 박수를 치며 존경을 표했습니다.
아이들, 학생들과 늘 함께 호흡하다 보니 눈이 오는 것을 즐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 학생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 학생들도 눈이 싫을 때가 있겠지만 나중에 커서 그래도 눈을 좋아했던 그때를 추억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오늘도 아이들, 학생들과 어제와 다름없이 눈과 함께 보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