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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앗티즌 Jan 19. 2022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중학교 2학년까지의 내 삶은 단조롭고 평화로웠다. 대충 공부하면서 살아도 55명 중 십몇 등 정도 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만화 영화나 '어메이징 스토리' 같은 영화를 보고, 숙제 하고, 저녁 먹고, 별밤 듣다 자고 다음 날학교에 갔다. 가끔 친구들과 도서관에 몰려가 놀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갔다. 아무도 공부를 좀 더 열심히, 잘하라고 하지도 않았고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뭔가 이상해졌다. 일단 생리를 시작했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등교하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서 공부하다 밤 열두 시에 집에 들어왔다. 

교회에 가기 싫어했던 어느 일요일에는 어떤 아저씨가 뭘 좀 도와달라고 해서 도우러 가다가 갑자기 목을 졸 랐다. 목덜미에는 그 사람의 두 손을 포갠 크기의 멍이 들었는데, 바로 그다음 날 그 사람을 다시 만나 사색이 되어 덜덜덜덜 떨기도 했다.

봄 소풍 가기 전 날에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미용실로 가 즉흥적으로 머리를 짧게 커트 쳤다. 머리를 자 르고 집에 들어갔더니 엄마는 밤늦게까지 등짝부터 잡히는 대로 때렸다. 나는 밤새 울었다. 소풍을 다녀온 다음날에는 담임선생은 교무실로 부르더니 머리를 규정에 어긋나게 잘랐다며 구레나룻 근처 어딘가 머리카락 한 움큼 잡아채더니 차갑고 커다란 시커멓게 녹슨 가위로 잘라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를 증오했다. 머리를 잘랐더니 사람들이 나를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친구들은 잘 어울린다고 좋아했다. 

엄마가 아파 병원에 입원한 한 주 동안은 간병인 침대에서 등교하여 밤 열두 시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조는 버릇이 생겼다. 학교 선생들은 돌아가면서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때려댔다.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아름다운 보라색, 남색, 파란색, 누런색, 연두색, 빨간색으로 자주 물들었다. 건강에 좋다며 양말을 벗으라고 한 뒤 발바닥을 때리는 선생도 있었다. 

특히 담임선생이 미친 사람처럼 때려댔다. 빗자루나 마대자루가 부러져 자신의 손에서 피가 나기도 했다. 자 주 있던 일인 듯 밴드를 붙여 가며 성심성의껏 때려댔다. 한 번은 숙직실로 데리고 가 귀싸대기를 때리기도 했 는데, 귀에 이상이 생길 것 같아 두려웠다. 엄마는 언젠가 백화점 상품권을 들고 담임선생을 찾아가 애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일이 있으니, 혹여나 머리를 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어느 날 머리를 한 대 치 더니 검지로 내 이마를 찍찍 밀면서 야, 너 머리 때리면 안 된다며? 물었다.


학기 초 신체검사할 때, 내가 체중계에 올라갔더니 한 친구가 외쳤다. “야! 40킬로그램이야!” 나는 늘 말랐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중학교 3학년이 다 지나고 보니 12킬로그램 살이 쪄 있었다. 내 얼굴은 늘 퉁퉁 부은 사람 같았다. 어느새 나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다가 견디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때 나는 죽고 싶다,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하며 살았다. 


그때의 나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들을 많이 좋아했다. 친구들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던 부분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내 모습, 친구들을 좋아하는 내 모습이 가장 보기 에좋았던 것 같다. 나를 계속 미워하지 않고 죽고 싶지 않기 위해 했던 최선이었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사십 대가 되었고, 매일 건강을 살뜰히 챙기며 아침에는 홍삼을 챙겨 먹고 자전거도 타고 테니스도 치며 운동도 열심히 한다. 내가 제일 많이 듣는 칭찬(?)은 공감 능력이 좋다는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어쩌 면 나는 그때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고 다양한 경험을 해오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는 능력이 향상된 건 아닐까?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의 사정을 잘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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