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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좁은 문

한가위에 떠돌 린 과거의 문

by 홍재희 Hong Jaehee



한 때 피와 뼈와 살이 있는 육신을 지닌 한 사람이었으며 한 때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나 이제 한 줌 재가 되어버린 아버지였던 그 무엇을 납골당 단지 속에 담긴 뼛가루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당신이 이생에 반쪽으로나마 남겨놓은 당신의 유전자를 지닌 두 사람, 나와 동생이 말없이 가는 길.


지난 몇 년은 험난했다.


내가 병원에서 한 달을 보내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동생은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날리고 우울증과 공황장애와 PTSD에 시달리며 자살을 기도했고 빚을 갚으려 결국 어머니가 늘그막에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가야 했다. 이삿짐을 싸던 날 동생은 비상구 복도 계단에 서서 가까스로 숨죽이며 꺼이꺼이 울었다. 어깨를 들썩이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걸음을 돌렸다. 그러고 나서 더 이상의 충극은 없겠지 했다. 그러나 삶은 늘 예상과 기대를 배반한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병원에 덜컥 입원한 것이다.


이제 끝인가 한숨 돌렸다 싶음 더 큰 파도가 거세게 몰려온다.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그저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 설상가상. 나쁜 일은 한 번만 벌어지지 않는다. 불운은 불운을 부른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생각한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벌어져라. 터져라. 쓸고 지나가라. 남김없이. 그럼에도 나는 또 스스로에게 읊조린다.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운명은 절망이라는 구렁텅이로 영혼을 송두리째 밀어 넣고 헤어날 수 없는 림보를 울며불며 헤매게 했다. 죽은 자는 무덤에서 살아 돌아올 수 없지만 아직 살아있는 우리는 매일 죽고 매일 태어난다. 산 자는 불행으로 굴러 떨어지더라도 다시 운명이라는 비탈을 기어올라야만 한다. 빈 손으로 왔으니 맨 몸으로 날 것으로 살다가 다시 빈 손으로 떠날 때까지. 원망도 증오도 분노도 한탄도 모두 죽음 앞에는 한낱 헛되다. 침묵 사이에 눈물이 슬픔이 고통이 그리고 그 가운데 생이 그 끝에 죽음이 있다.


납골당 아버지의 영정 앞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네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불현듯 마태복음 한 구절을 떠올렸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길이 좁디좁아서 찾는 이가 드무니라."



인생은 좁은 문이다. 고통 없이 지혜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죽음에서 부활한 자 어둠의 긴 터널을 통과하여 다시 태어난 자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자의 이마에는 크고 빛나는 눈이 달려있는데 그 눈은 세상 너머의 것을 꿰뚫어 본다고 한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있으라. 너는 나는 우리는 살아있는 자 모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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