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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엄마와 김장

by 홍재희 Hong Jaehee


본가 어머니 댁에 딸랑무 김치를 담그시겠다하여 도와드리러 갔다.


대수술후 고작 석달 밖에 안 지난 환자가 굳이 김치를 담가야겠다니.


재활에 힘써야할 노인이 운동이 아니라 노동하는 걸 김치 담그는 꼴은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제발 내가 할테니 손 하나 까딱하지 말고 꼼짝말고 기다리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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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 없이 엄마는 김장을 하겠다 했다.


대수술 후 엄마는 다시는 김장을 못 할거 같다 올해부터는 김장을 안한다 선언했다가 이맘 때 즈음 슬그머니 말을 바꾼다.


할까 말까 하면서 네가 도와주면 김장을…슬며시 운을 띠운다.


그러면 나는 짐짓 해야죠 하셔야죠! 우리가 할테니 엄마는 간만 봐주세요 편을 든다.


그러면 엄마는 내가 언제 또 살아서 김장을 하겠냐 못 이기는 척 김장할 날짜를 잡는다.


엄마와 나 사이엔 해마다 똑같은 대화가 오고 간다.


같은 대사를 칠 것 알면서 뻔하지만 알면서도 속아주는 그런 것.


어릴적 마당에서 엄마는 백 포기 김장을 담갔다.


세월이 흘러 백 포기는 오십 포기 열 포기…로 줄어들었다.


이제 우리집은 명절 제사도 없앴다. 그러나 김장만큼은 없애지 못했다.


그만큼 김장은 엄마에게 우리에게 한국인에게는 일년을 버틸 영혼의 일용할 양식.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근원.


김장하면 나는 엄마를 떠올린다. 다른 그 무엇은 상상할 수도 없다.


나는 김장할 줄 모른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무를 씻고 갓과 쪽파를 썰고 무를 채썰고 자르고 새우젓을 고추가루를 넣고 배추와 버무릴 뿐이다.


내가, 내 손으로, 스스로 김장을 하는 날이 올까?


글쎄다. 김장보다 먼저 집에서 김치를 담가먹는 게 더 순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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