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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불능자의. 비애

by 홍재희 Hong Jaehee



1.


배탈이 나서 꼬박 이틀을 굶었다. 첫날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고 둘째 날은 먹을 힘이 없어서 못 먹었다. 고질병이다. 고쳐지지는 않을 거고 조심하고 살아야 하는데 말처럼 되지 않는다. 내가 의지적 인간이기보다는 욕망하는 인간인 탓이다.



올 겨울에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비염도 쉽게 넘어가 병치레 없이 편안하게 봄을 맞이하나 싶더니....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럴 리가 없지. 통증엔 이골이 난 삶이라 어지간한 통증은 대수롭지도 않다만. 일주일 전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밤마다 헛트림이 급기야 아침부터 속이 쓰렸는데 그러다 괜찮아지겠지 했다. 그러다 갑자기 구역질에 숨 쉬는 게 힘들 만큼 통증이 왔다. 기관지 관절 멀쩡해서 좋아라 했더니. 이런 젠장! 가슴 부여잡고 동네 의원에 갔다.



아뿔싸! 역류성 식도염이 재발했다.

스트레스 받는 다고 땅콩버터를 밥 먹듯이 퍼먹은 게 문제였던가?

아니다. 운동한다고 단백질 파우더 먹어댄 게 화근이 된 건 아닐까.

어쨌든 둘 다 불타는 위장에 활활 기름을 부은 듯.



의사한테 엄청 혼났다.


약한 위장에 단백질 파우더라니 미쳤어요?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쓰레기를 들이부었다며 날더러 미.. 미쳤..... 냔다.

(아놔! 어쩐지 계속 소화가 안 되더라니!)

당분간 술도 안돼 커피도 안돼 차가운 거 밀가루 음식 초콜릿도 안돼 뭐든 여섯 시 이후엔 물도 절대 안 돼.

앞으로 사흘 동안 죽 먹고 약만 먹으란다.

그러고 나서 차도가 없으면 당장 병원으로 오란다.

호전되지 않으면 다시 위내시경 비롯한 정밀진찰을 받아야 한다.



2.



까무룩 기절하듯 잠이 들다 다시 반복되는 고통에 눈이 떠졌다.


아,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기가 있다. 병원 복도에 일렬로 선 간호사들이 나를 보고 달려온다. 함박웃음을 짓고 박수를 친다. 나는 이름이 없었다. 그저 홍아기였다. 그러나 드디어 어엿한 이름을 달고 개선장군처럼 병원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내 손을 꼭 잡은 어머니에게서 흥분과 자랑스러움과 감격이 느껴진다. 난 아마도 이 광경에 흠뻑 취해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풍경. 아아 그 냄새가 몹시 그립다.


동네 의원에 갈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꼬마로 돌아간다. 이제는 엄마손 대신 아픈 가슴 부여잡고 내 발로 걸어가지만 이런 순간은 다시 다섯 살 어린애 마음으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 내게는 주치의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병치레가 잦았던 나는 엄마손에 이끌려 김외과를 자주 다녔다. 탈만 나면 곧잘 가던 동네 의원. 나무 명판에 쓰인 세 글자 '김외과'. 아플 때마다 탈이 날 때마다 엄마 손 붙들고 들락날락거렸던 이웃 의원이다.


나는 김외과를 아주 좋아했다.


새시 문을 삐그덕 열고 들어가면 타일 바닥인 응접실이 나오고 천장까지 닿을 듯 잎사귀를 늘어뜨린 관상수가 보였다. 야자나무였을까. 기껏 다섯 살 즈음. 내게는 재크의 콩나무처럼 거대해 보였던 그 나무. 마담 프로스트의 정원이란 영화를 보며 문득 김외과의 응접실이 떠올랐던 까닭. 내게 병원은 낯설고 무서운 곳이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그중에서도 김외과는 특별했다. 병원에 친근함을 느끼는 이유, 아련한 향수를 느끼는 데는 바로 이 같은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원 같았던 김외과가 나는 좋았다. 그 병원 소독약 냄새가 참 좋았다. 윤이 반들반들한 가죽 소파에 앉았다 엎드렸다 하며 책꽂이에 꽂혀있던 어려운 의학사전과 여성지 따위의 주간지를 훑어보던 찰나 반투명 유리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이윽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굵직하고 나직한 목소리.


- 또 탈이 났구나? 어디 보자.


반백머리 의사가 인자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버지만큼 익숙한 사람.


-넌 주사 맞아도 울지 않는 용감한 아이잖아.

-네.

-착하다.

-네.

-대답도 잘하네.

- 주사 맞고 나면 하드 먹어도 돼요?

- 넌 다른 애들과 달라. 그러니까 똑같이 먹으면 안 된단다.

- 왜 안 돼요?

- 넌 특별한 아이니까.


나는 주삿바늘도 무서워하지 않고 쓴 약도 잘 먹고 잘 참고 떼쓰거나 울지 않는 씩씩한 아이였다. 인자한 의사선생은 그런 날 항상 폭풍 칭찬해 주었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애가 찬 거 먹고 싶어 해도 못 먹게 하세요. 죽 먹이고 꼭 끊인 보리차를 주세요. 그 순간 나는 생각한다. 그 의사. 그때 이미 반백이었으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구나. 아, 이제 오로지 내 기억 속에만 있을 뿐이구나.



세월이 흘러 흘러 나이도 먹고사는 곳도 달라졌지만 병 증세는 더 디테일해졌다.

이번에 새로 들린 우리 동네 의원 이름은 최내과다.

김외과는 가고 최내과.

주치의 삼아야겠다.



3.



불에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문득 한 장면이 스쳐 지났다.


-어디가 아프니?

-배가 아파요.


나는 고통에 겨워 잔뜩 웅크린 날 선 들짐승 같았다.


-아빠가 꼭 낫게 해 줄게.


내 배를 살살 문지르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날 내려보셨던 아버지. 어머니는 죽을 쑤어 날 끌어안고 내 입에 한 방울 한 방울 넣어주셨다.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 고를 반복하더라도 어머니는 결코 지치는 법이 없었다.


아프면 애가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아프면 일순간 정신적으로 퇴행한다. 나는 그 순간 아주 아주 어렸을 적으로 유영한다. 우주적 실의 끈을 부여잡고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다. 절대적 사랑과 돌봄이 있었던 그 순간으로 무한한 애정과 보살핌이라는 인큐베이터 속으로. 생과 사를 가르기 전 평화로운 시원인 모체의 자궁 속으로. 눈발을 헤치고 산수유 열매를 따왔던 아비의 품 안으로. 상상 속으로 떠나는 여행. 그리고 그 순간에서 멈추어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하지 않았으면 차라리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여행.


그러나 눈을 떠보면 그 아비어미는 이제 내 곁에 없다. 내가 그 아비어미처럼 나이를 먹었음이다. 내가 그 아비어미의 마음으로 독하게 살아야 함이다. 부모가 준 절대적이고 완전한 사랑을 타인에게서는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삶의 허허로움에 애달픈 순간이 있다. 고개를 떨구고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나면 또 한 번 죽고 다시 두 번 산다.


고통은 이제 끝났다. 언제 또 올지 모른다는 기약만 남겨두고 떠났다.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던 고통이 사라지니 극심한 허기가 생의 의지를 불태운다.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세포. 먹이를 달라 아우성이다. 그런데 집에 먹을 게 없다. 뭔가 먹어야 하는데 인터넷으로 요리 사이트를 넋 놓고 쳐다보고 있다. 정신 차려! 살아났으니 먹자. 나를 먹이자. 나를 돌보고 살필 시간이다.



4.


신년초 새해 운세에 위장병이나 관절 기관지염 조심하라고 타로 운세마저 경고했음에도. 미리 알고 있다고 다 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피할 수 없으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 나는 남들처럼 살면 남들 먹는 대로 다 먹고살면 탈 난다. 허약한 위장을 달고 태어났음에도 조심성 없이 여태껏 몸을 막 다루고 막살아서 만성질환을 달게 되었다. 평소에 늘 조심해야 하는데 별 탈 없을 때 남들과 똑같이 하다가 또 고장이 난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생활 방식과 삶이 있는데 그 사실을 또 깜박했다.


위장이 고기는 가려도 유청단백질 파우더까지 가리는 줄은 미처 몰랐다. 단백질 파우더 아무나 먹나. 근육 키우려다 위장 망가질 뻔.

단백질 파우더를 추천한 헬스장 코치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한다. 단백질 파우더 먹고 탈 나서 병원 간 사람은 난생처음 봤대나. 코치의 당황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코치님 탓이 아닌데요 뭘. 저도 처음 겪는 일인걸요. 이렇게 경험으로 또 하나를 더 배우는 거죠. 하하하. 분리유청이나 식물성 단백질을 먹으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지금 당장은 엄두가 안 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법이라서.

저처럼 날씬하고 마르는 게 소원이시라고요? 저질 위장을 달고 살면 살찔 걱정 다이어트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5.


역류성 식도염으로 명치끝이 타들어가는 통증을 오래 겪다 보면 자동으로 담배가 끊어진다. 금연이 따로 필요 없다. 토사곽란을 일으키는 술도 횟수와 양을 확 줄였다. 그런데 말이다. 니코틴 알코올까지는 그럭저럭 받아들이겠는데 카페인마저도 멀리 해야 한다니.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현대인의 필수품 영혼을 달래는 친구 삼종세트와 작별해야 한다니. 이제 일할 때 무슨 낙으로......?


술담배는 끊어도 카페인 이것까지는 제발......


집에서 디카페인 커피 한 잔 소심하게 마시다가 산책길에 카페에 들러 카푸치노를 덜컥시켜버렸다.

통증이 가라앉고 뱃속이 편안해지고 살만해지니까 카페인에 대한 충동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어쩌다 가끔 이런 일탈이 필요하다.

이것도 못하면 대체 무슨 낙으로 사나.

애당초 난 도덕군자가 되긴 글렀고.

몸에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생각만 하며 명상하며 살기엔 중독에 너무 취약한 인간이야.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 3대 즐거움 쾌락 중에 그나마 가장 건전한 거 아닙니꽈?


오늘은 정말 카페인이 절실해. 이것마저 없으면 너무 슬퍼서 일 못할 거 같아. 살만 하니까 덜 아프니까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일탈의 유혹. 까짓 거 아프면 또 약 먹지 뭐. 약 털어 넣지 뭐. 병원 가지 뭐. 병상에 누워 오늘내일하면서도 담배 한 대만 술 한잔만 하는 환자의 맘을 알겠어. 살 가망이 없다면 까짓 거 뭐가 두려워. 내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면 나도 하지 말란 거 다 하다가 죽을 거야. 그런 맘으로 돌이켜 삶에 한 점의 미련 없이. 후회 없는 오늘을 위해서.



6.


뭐든 아무거나 맛있다는 사람, 먹방이 취미라는 사람,

기름진 거 매운 거 뭐든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는다는 사람,

먹고 바로 누워 자도 속 괜찮은 사람,

오밤중에 야식 먹는 사람,

배불러 죽겠다면서 또 먹어도 큰탈 안나는 사람,

많이 먹어 살쪄서 다이어트해야 한다며 야단 떠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많은 걸 누리고 사는지 모를 것이다.



산해진미가 쌓여있어도 먹을 수 없는 슬픔.

아무거나 마구 먹을 수 없는 슬픔.

아무거나 많이 먹으면 안 되는 슬픔.

통증에 그나마 있던 식욕도 달아나는 슬픔.

배가 고프지 않은 슬픔.

배가 고픈 건지 아픈 건지 모를 슬픔.

먹방불능자의 슬픔.



죽집에서 숟가락 들며 슬픔에 잠겨.....

바람에 고운 풍경소리.

그래도 햇살은 따사롭구나.

동네에 죽집이 있길래 망정이지 없었음 어쩔 뻔했어

지금 이 순간은 세상에서 죽이 제일 맛있고나.

숟가락 들고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죽을 넘길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 그나저나 4만 원 넘게 주고 산 단백질 파우더. 어쩐다? 처치곤란이다. 소식을 들은 친구가 자기가 먹겠다며 냉큼 달라고 했다. 필요한 사람이 있어서 천만다행. 뭐든 임자는 따로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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