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과 식품업을 덮친 가성비의 늪
자취생 스타팅 포인트, 한국판 백엔샵, 싼 게 비지떡의 현현. 5년 전쯤, 다이소가 가진 이미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주부들의 구원자, 관광객 필수코스, 아이들의 놀이터. 어떤 곳에서 어떤 물건을 봐도, 다이소에서 천 원이면 사지 않을까? 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그곳.
몇 해전, 다이소는 가격 빼고 장점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미쳐버린 물가 속에서 가격이란 장점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구매의 제1 옵션이 되었다. 조금 떨어지는 기능, 조잡한 마감, 상관없었다. 조금 흐린 눈을 하면 되니까. 어차피 천 원이니까. 그 모든 단점은 가격으로 방어할 수 있다.
가격은 전통적으로 쓰여온 마케팅 기법이자 소비자를 유인하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타겟과 한계가 명확했다. 이렇게 모든 산업, 모든 소비자를 대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끼쳐온 적은 없었다. 우리 일상에 파고든 가격은 마침내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상품에 초저가, 최저가, 초특가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만들었다. 모든 산업이 다이소처럼 변하고 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예외란 없다.
스무 살 무렵, 학교 앞에 9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가 생겼다. 당시 커피 관련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꽤 놀랐다. 이게 가능한가?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만큼 커피는 마진율이 괜찮은 아이템이었으니까. 물론 900원으로 소비자를 유인하고 다른 메뉴에서 이익을 취하는 구조의 카페였지만 그런 형태의 카페가 그 이후로 우후죽순 생겨난 것을 보면 사업성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제3의 물결이라 불리는 스페셜티 이후로 한국 한정, 이후의 물결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는 저가커피의 혁명이 근 5년 간 이뤄졌다. 업계에 있던 사람들은 꽤 놀랐다. 아무리 전략이자, 마케팅이며, 눈속임일지라도 소비자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폭증한 점포수가 그것을 방증한다. 기호식품임에도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 중간 신분에 있는 커피와 물가상승에 대한 소비자들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물가는 올랐다. 급여는 오르지 않았지만 사용해야 할 돈의 크기는 커졌다. 결정을 해야 했다. 소비를 줄여야만 했다. 반드시 써야 할 것은 차치하고 쓰지 않아도 될 것을 정했다. 사치스러운 소비를 줄였다. 욜로와 오마카세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생필품을 다이소에서 구매했다. 다이소는 공룡이 되어갔다. 저가커피는 미친 듯이 몸집을 불렸다. 당시에도 과포화였던 시장은 정말 한계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여전히 팍팍했다. 그래서 또 생각한다. 먹는 것은 필수적인가...?
당연히 먹는 것은 필수적이다. 의식주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흐름에 따라 그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거주할 집이, 입을 옷은 너무 중요했다.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급격히 커졌고 이는 모두 소비로 직결된다. 전 세대에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뿌리내리면서 식사량을 줄이고, 식습관을 고쳤다. 비싼 것을 많이 먹기보다는 적정량을 섭취하며 비용을 줄이는 것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음식은 커피 시장과 비슷해지는 것 같다. 평소에는 저렴한 저가커피, 특별한 날에는 가격대가 있는 전문점 커피. 평소에는 최저가 딱지가 붙은 생활과 생존 위주의 음식, 특별한 날에는 보상 개념의 디저트와 가격대 있는 음식. 비단 커피뿐 아니라 우리 식생활 전반이 양극화되어가는 추세다. 아주 값싼 것, 혹은 아주 비싼 것.
그에 맞게 많은 유통 채널에서 최저가 혹은 초저가 상품들을 연이어 출시했다. 소비자 경쟁은 뜨거웠기에 경쟁은 치열했다. 퀄리티와 마진을 낮추고 가격표의 숫자를 내리는 것이 중요했다.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포만감보다, 저렴하게 한 끼를 때웠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소비를 점점 맛과 품질보다는 가격으로 그 가치를 옮겨가는 것 같다.
맛있다는 표현은 너무나도 모호하고 주관적인 표현이다. 그렇다면 맛과 가격은 비례하는가? 대체로 그렇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음식의 가격은 너무 많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열량, 성분, 원산지, 조리법, 심지어 누가 요리하고 유통하느냐에 따라서도 갈린다. 그리하여 맛있음의 모호함과 앞선 요인들은 맛과 가격의 간극을 종종 벌려놓는다. 그리하여 비싸고 맛없는 최악의 형태도 낳았지만 반대로 싸고 맛있는 환상적인 음식도 이따금씩 시장에 등장한다.
맛있음을 형성하는 것도 과거에 비해 비교적 쉬워졌다. 각종 기술은 발전했다. 유통은 더욱 활발해졌고 정보는 더할 나위 없이 넘쳐난다. 가공식품부터 식당의 음식까지 전반적인 맛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다. 저렴하다고 해서 맛없을 걱정을 전보다 덜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방은 몰라도 맛의 하방은 확실히 단단해졌다. 싼 게 비지떡이란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 비지떡을 맛있게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싸면서 환상적인 맛을 내는 것은 참 어렵다. 그래서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필요한 것만 넣는 추세다. 한계점보다 살짝 괜찮은 곳까지 품질을 낮추거나 양을 줄이기도 한다. 적당히 맛있다 내지 먹을만하다 정도로 맛이 세팅되고 있다. 우리가 먹는 것 역시 다이소처럼 변하고 있다. 그 수가 많아지고 있다. 음식에 가격을 맞추는 게 아니라 마치 가격을 정하고 음식을 꾸역꾸역 끼워 넣는 것 같다. 먹을만한 그 수준까지 끼워 넣는다.
나는 요리를 좋아해서 식재료를 살 일이 많은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격이다. 먹을 것에는 크게 인색하지 않은 편인데 요즘엔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상추 한 봉지가 육천원인 것을 보고 기겁했다. 절로 가성비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자취생인 나에게 가격표는 너무너무 중요하다. 당장 나조차도 맛과 품질보다 가격이 우선인 순간이 아주 많다.
저렴하게 먹을만한 식재료를 사고 먹을만한 음식을 만든다. 가끔은 먹을만한 외식을 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과 비교했을 때 벌이는 좋아졌다. 그런데 나는 잘 먹고 있나? 내가 좋아하던 음식이란 것은 무엇이었나? 내가 음식에서 느끼는 행복은 사실 먹을만한 것에서 오지 않았다. 나는 잘 먹고, 더 잘 먹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편이었다.
가성비도 좋지만, 그리고 가성비를 택해야 하는 것도 물론 맞다. 나는 다이소가 좋지만 내 일상을 다이소로 가득 채우고 싶지는 않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가격, 중요하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나는 먹고살아야 한다. 언젠가 내가 궁핍해져 가성비만을 좇을 수도 있다. 물가가 너무 올라 더는 먹는 것에서 행복을 찾지 못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내 식탁의 전부를 가성비 식품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다. 그건 좀 울적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