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나날들

퍼펙트 데이즈

by 설민

나의 완벽한 나날들

퍼펙트 데이즈


설민


운전할 때 라디오를 듣는다면 어떤 방송을 선택하시나요?

광고가 귀에 거슬려서 평소에는 클래식 방송을 주로 듣는데, 이번 겨울 여행을 가면서 다른 지역에 가니 자연스럽게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운전하며 듣게 된 라디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 겸 가수 ‘윤상’이 라디오 DJ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방송에서 [영화 대사관]이라는 코너를 우연히 듣는데,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소개하는데, 무척이나 인상적이어서 찾아보게 되었다. 독일 감독이 일본 배우를 만나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 이야기였다.


{{공중화장실 개선 프로젝트 “The Tokyo Toilet”.

도쿄 올림픽 개최 전에 전 세계 사람들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나 디자이너를 기용해서 17군데 화장실을 리뉴얼했다.

프로젝트의 화장실을 무대로 한 청소원의 이야기를 단편영화와 사진집으로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감독의 제안으로 장편 영화로 만들어졌다.}}


일본 도쿄에서 공중화장실을 예술적으로 고치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를 홍보할 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을 감독을 섭외했는데, 이곳을 와보고는 2주 만에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장편 영화로 찍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시민들에게 쾌적하고 아름다운 장소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으로 공중화장실을 바꾸고, 이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고 거기에 나온 남자 배우가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극영화와는 다른 느낌인 ‘퍼펙트 데이즈’는 청소부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자유롭고 아름다운 영화다. 대사가 거의 없는 주인공 히라야마. 그는 세상에 필요한 캐릭터 청소부 이전에 다른 일을 한 것 같고, 행복한 과거는 아니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그에게서 묻어나는 평온하지만 침울한 표정이 그러하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주인공. 그 사람의 과거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그가 혼자서 루틴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상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도 만만치 않게 힘든 과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정말 본인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 소중한 것에만 둘러싸여서 그런 생활에 만족하며 사는 히라야마. 사건보다는 그의 반복되는 일상, 인물의 습관과 생활 태도를 보여주는 영화다.

일어나서 양치질하고 면도하고 집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한번 쳐다보고 미소 짓는다. 카세트테이프를 골라서 틀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일터로 향한다. 반복적인 일상의 하루하루를 새롭게 느끼게 하는 감동이 있다.


히라야마가 동네 주민의 비질하는 소리에 눈을 뜬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양치와 세면을 하고 화초에 물을 주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는 가지런히 놓인 선반에서 차 키와 열쇠, 동전을 가지고 문밖을 나간다. 집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들고는 차를 타고 화장실 청소를 하러 간다. 조용한 움직임이지만 일상이 리듬처럼 흐른다.

정성스럽게 화장실 청소를 하고 점심에는 근처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찍는다. 어른거리는 그림자 같기도 하고 무언가 불분명한 모습이 영화 사이사이에 주인공의 의식처럼 끼어든다. 일상의 한 장면처럼 끼어드는 코모레비. 코모레비란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을 의미하는 일본 단어다. 영화에서는 햇빛에 의해 순간적으로 바뀌는 장면을 묘사한다. 또 하루 중 일상의 근심을 잠시 잊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시간처럼 쉼표를 찍는다. 매일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코모레비는 오늘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조카와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며 자전거 타는 장면도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는 그의 삶의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점심을 먹고 청소하며 일과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다. 자전거를 타고 공중목욕탕으로 간다. 목욕한 뒤에 지하상가에 있는 단골집에 가서 술 한잔과 간단한 음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책을 보다가 잠이 드는 루틴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주인공.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코인 세탁을 하러 가고, 헌책방에 가서 책을 한 권 골라오고, 매일 찍은 코모레비 사진을 현상한 뒤 잘 나온 사진만을 골라 정리한다. 그러다 단골 가게에 가서 식사하는 게 그의 일주일이 마무리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한 조카가 찾아오면서 그의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조카의 등장에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이는 자신의 루틴을 깨는 사건이기도 하다. 조카와의 대화에서 보면 오빠와 여동생의 사이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서로를 피하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힘든 가족 간의 일이 있는 것 같다.

오래 살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세월의 더께가 두껍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벗겨내는 작업이 힘들지만 그대로 두면 더 무뎌지고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그런데도 히라야마는 마치 그 아픔을 감내해 가며 살아갈 사람처럼 느껴진다.

화장실에서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나, 공원에서 지내는 홈리스의 모습을 관찰하는 모습이나, 화장실에 누군가 꽂아둔, 굳이 버려도 괜찮았을 종이에 오목으로 대응하며 소통하는 모습은 히라야마가 마음이 따뜻하고, 자신이 힘들지언정 상대에게 아픔을 전가하는 사람이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해 질 녘 도쿄 시내를 운전하며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편안하면서, 기분이 살짝 들뜨면서도, 뭉클해지고, 불현듯 슬퍼지는 표정. 그러다 울컥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음악까지 더해지니 그 한 장면이 머릿속에 박힌 기분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히라야마라는 사람과 그의 일생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함께 뭉클하며 눈물지을 수밖에 없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일었다.


도쿄의 청소부 히라야마가 음악과 책, 자연과 함께 일상 속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들을 담은 영화.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음날 그는 또다시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하기 위해 일터로 향한다.


일상의 작은 즐거움. 정갈하게 쓴 오래된 일기장 같은 영화다.

다른 모든 순간과 비슷하게 보이는 단 하나의 순간들로 일렁이는 온전한 나날들!

또다시 시작된 내 인생의 열두 달, 7,760시간.

무언가를 하면서 열심히 집중해도, 잠깐 한눈을 팔아도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니 마냥 흐르는 대로 놓아두지 말고 내가 나가야 할 방향으로 시간을 써야 한다.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가치를 찾아가며 의미를 깨닫는 시간. 히라야마가 완벽한 나날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나의 퍼펙트 데이즈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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