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알코올중독자의 딸입니다 .
48 아빠는 나의 영적 스승
"O 병동 OOO 환자 보호잔데요. 아빠와 통화가 안 돼서 전화드려봤어요. 혹시 지금 통화될까요?"
아빠는 길고 긴 섬망의 늪에서 겨우 빠져나와 어떤 날은 어눌해 보였고 또 어떤 날은 짜증과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하루는 열두 번이나 전화를 하는 집념을 보였다가도 또 어떤 날은 마지막 입원이다 생각하고 견디라고 말하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입원을 시킬까 말까 수십 번 수백 번 고민했던 시간들은 입원 중에는 이게 과연 맞는 것인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더 최선은 없는지를 끊임없이 묻게 만든다. 아빠를 위해 알코올 전문병원으로 전원을 고민했었지만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쳤었는지 아빠는 병원 내에서 독감과 코로나에 연달아 걸렸다. 일단 아빠가 회복을 해야 전원을 하든 퇴원을 하든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격리치료를 받으며 입맛이 없다고 하루 한 끼 정도를 자꾸 거르는 바람에 밥맛을 돋을 수 있는 영양제를 따로 사서 드리고 있다는 간호사의 전화를 받았었다.(덕분에 간식비와 입원비가 올랐다) 그리고도 꽤 수일이 지났는데도 아빠에게 전화가 없어서 나는 병원으로 전화를 해본 참이었다.
"아빠! 잘 지내셨어요? 왜 전화를 안 했어?"
"응 웬일이냐? 바빴지 뭐."
꽤 정신이 또렷해진 말투에 안심이 되었지만 바빴다고? 병원 생활이 적응이 되신 걸까?
"언제 시간 나면 데리러 와라" (워킹맘인 나를 배려해서 늘 네가 시간 나면~이라고 말해주는 아빠가 고맙다)
"아빠가 입원하고 싶다고 해서 가신 거잖아. 기억 안 나세요?"
"집에 가서 쉬려고."
"이제 곧 3개월이 다 되어가니 의사랑 할머니랑 함께 상의해 볼게요. 오늘 하루도 잘 지내요!"
독감과 코로나까지 연달아 걸렸다고 하니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먼저 걸었지만 괜한 짓을 했다. 그날 이후로 매일 아빠로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으니....
"언제 시간 나면 데리러 와라"
"담배 좀 사가지고 와라"
"퇴원하련다. 여기 이제 지겨워서 못 있겠다"
"오늘 들려라"
"담배 좀 사가지고 올 수 있니?"
"몰래 와서 좀 전해주고 가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퇴원과 담배 이야기뿐인 통화.
후..... 화내지 않고 인내심을 가져보자.
"아빠! 다음에는 입원 받아줄 수 없다는데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생각하셔야 돼요"
"집이 습하고 더우니까 장마랑 더위 끝날 때까지만 계시다가 나오는 거 어때요?
"언제 퇴원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빠가 퇴원하고 나서 식사 잘하시면서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 보셔야 돼"
"담배 사다 드릴 수 있는지 간호사한테 물어볼게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제 더 이상 수신거부는 해놓지 않는다.
알코올중독 아빠의 인생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
그 대신 여섯 번 전화가 오면 그중 한 번만 받는다.
나도 내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오늘 아침에는 막무가내로 담배 좀 사서 들리라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나는 아빠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노력해서 전화받는데 매일 전화해서 담배 얘기만 하면 나는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 아빠 건강 때문에라도 담배 많이 피우시면 안 되는 거 알면서 왜 자꾸 그러세요?" 목소리가 다소 거칠어졌는지 아빠는 "아빠는 긴말하기 싫으니까 끊어. 이제 전화 안 할게" 하며 통화가 종료됐다.
아빠는 짜증을 내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그 순간, 그런 아빠에게서 두려운 마음을 읽었다.
부끄럽게도 지난날의 나는 차곡차곡 눌러왔던 상처와 분노를 아빠에게 폭발하듯 토해낸 적이 여러 번이다. 한번 터지면 감당할 수 없는 눈물과 울부짖음으로 아빠에게 포효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러고도 당신이 아빠냐고? 당신이 없어지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고...
아빠는 그런 순간을 다시 마주할까 두려워 보였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
그건 바로 알코올중독 아빠다.
그건 변하지 않았다.
그런 아빠에게 한 가지 이름을 더 얹어준다.
나를 끊임없이 깨닫게 하는 사람
나를 끊임없이 성장하게 만드는 사람
나를 끊임없이 다그치는 나의 영적 스승
아빠는 나에게 얼마나 더 많은 깨달음을 주려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