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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스텔라 Feb 28. 2024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서

“청군 이겨라! 청군 이겨라!”

“필승! 백군! 가자~~!!

 앉고 서고 STOP! 뛰고 뛰고 뛰고 뛰고!"


 지금이야 유튜브, 인스타그램, 릴스, 각종 TV 프로그램 등 정보를 접할 매체가 다양해진 덕분에 내 방에서도 손쉽게 이런저런 ‘간접 경험’이 가능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체험하거나 지인을 통해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직접 경험’이 대부분이었다.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사촌 오빠, 언니들을 둔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대학 문화’에 익숙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신촌에 있는 학교를 다닌 오빠와 교직원으로 근무하시는 고모부 찬스를 이용하여 재미있기로 소문난 Y대의 축제와 K대와의 라이벌전 경기 관람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운동회를 준비하면서 유치하게 “백군 이겨라! 청군 이겨라!”만 반복하는 응원문구 대신에 대학교 응원가를 벤치마킹하여 새로운 응원가를 만들었다. 교생 실습 왔던 Y대 선생님들조차 “네가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아?” 할 정도였으니까 ‘응원가를 알아야 경기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다’ 던 오빠의 조기교육이 새삼 빛을 발하던 순간이었다.


 스케치북에 쓴 기가 막힌 -사실은 대학 응원가를 개사한- 응원가를 보며 뿌듯해하는데, 같이 응원 연습을 하던 친구들이 “목청도 좋고 응원가와 응원문구도 네가 만들었으니, 네가 해라 응원단장!”하며 나를 백군의 응원단장으로 만들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흠흠 죄송) 나서서 하기 귀찮았던 나는 감투 쓰기를 극구 거부하였으나, 실제로 보고 들은 나만큼 응원가를 잘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응원단장이 되었다. 기왕 하기로 했으니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함성을 유도하고, 스케치북을 넘겨가며 열심히 응원을 했다. 대학생 언니, 오빠처럼 멋진 동작은 아닐지언정 치어리딩도 하고, 상대팀인 청군도 신나게 조롱해 가며(응원을 라이벌전으로 배운 탓이다) 운동회를 즐겼다.


즐겁게 잘 놀고 백군의 승리도 거머쥔 그날 밤, 자꾸만 목이 따끔따끔했다.

‘응원하느라 너무 소리를 질렀나? 별일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다음 날 아침 내 입에서는 사춘기 소녀의 아리따운 목소리 대신 변성기가 세 번쯤 겹쳐온 것 마냥 쇳소리 섞인 걸걸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놀란 엄마와 함께 다급하게 달려간 이비인후과에서 내린 병명은 다름 아닌 ‘성대결절’.

다행히 초기였고, 아직 어리기 때문에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한동안은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소리도 크게 지르면 안 된다고 했다. 수년간 나를 보아온 단골 의사 선생님은 엄격한 목소리로 “특히 노래방은 절대 안 돼!”하셨다. 이비인후과 건물 지하에 있는 둘리노래방 단골이 나인 줄 어떻게 아셨지? 어쨌든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른 운동회의 추억은 진짜 목이 터져버린 나를 강제 묵언수행자의 길로 이끌었다.



모름지기 축제 뒤에는 시험이 따라오는 법. 하필이면 성대결절인 상태로 다른 시험도 아닌 음악 가창시험을 봐야 했다. 음악 선생님은 독특하고 예민하신 걸로 전교에 따라올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진단서까지 제출해 가며 시험을 좀 미뤄주면 안 되겠냐고 사정사정을 했지만 그분의 소신을 꺾을 수는 없었다.

“네가 노래 부르다 그렇게 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봐줘야 하니? 너네 반 시험일에 부르면 점수 주고 아니면 무조건 빵점이야.”

타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선생님 때문에 화가 난 나도 그냥 알았다고 하고 내 차례가 되자 당당하게 교단 앞으로 나갔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나가~~

구름속↗에~~~↗ 나부낀↗다~~~~아

제~~비도↗ 놀↗란↗ 양아아아아앙 크흐흑하하하

내가 불렀던 노래의 원곡 악보


앞장서서 열심히 응원하다 성대결절을 얻은 것도 모자라 음악선생님한테도 대차게 까인 나를 알고 있기에, 친구들은 처음에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귓속으로 꽂히는 내 노래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웃겼다. ‘흐윽’, ‘푸흐흡’ ‘끄으윽’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음을 참아내던 친구들과 눈이 마주친 내가 결국 먼저 웃어버리자 교실은 그야말로 ‘빵 터졌다’. 가창 시험은 상처뿐인 C+의 점수와 ‘노래 트라우마’만을 나에게 남겼다. (참고로 결석으로 시험을 못 본 친구의 점수는 D였다.) 음악선생님은 본인도 눈물까지 흘려가며 실컷 웃으셨으면서... 저런 점수 줄 거면 웃지나말지. 흥!


그 이후로 가족과 친한 친구들 앞을 제외하고는 노래를 하지 않는 대신 현란한 탬버린 치기 기술을 획득하였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바로 목부터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목캔디와 용각산(요즘은 복숭아 맛이 나와서 훨씬 좋다)은 내가 애정하는 제품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천둥벌거숭이 같은 두 아들을 키우다 나도 모르게 득음해 버려 다시금 ‘사자후’를 내뿜는 경지에 이르렀으나 그래도 너무 자주 하지는 않는다. 잃어버린 소리를 찾는 여정이 너무나 힘겨웠기에 두 번 다시 내 인생에 성대결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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