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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톤 Nov 03. 2023

나의 태도를 담아주는 책장

거실에 책장이 하나 있다. 이사 올 때 소파 맞은편에 놓고 싶어서 구매한 책장인데, 아주 만족해하고 있다. 처음에 이 책장을 보고 편안하게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매했다. 나무로 만들어져 전체적으로 따뜻함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이 책장은 여백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져서 그 점이 참 좋았다. 총높이는 3단으로 되어 있어 천장과의 거리가 한참 남는다. 그리고 책장 한 칸의 높이와 깊이가 보통 책장보다 훨씬 길어 책 한 권을 꽂으면 위로 안으로 여백이 꽤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 여백은 내가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한 칸의 가로 폭이 짧아 여백이 살아남도록 의도적으로 한두 권의 책만 꽂았다. 한 칸 한 칸 빈틈이 있을 때, 그 공간에 놓여있는 책이 눈에 잘 들어왔다. 쓰고 나니 이 책장의 이름을, 여백의 책장이라고 불러야겠다. 




거실에 있는 여백의 책장에는 정말 좋아하는 책만 꽂는다. 소위 인생책이라 불리는 책이다. 그래서 그 책장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하루, 소파에 느슨하게 앉아있었다. 햇살이 밝게 비치니 책도 빛을 받았다. 책에 후광이 비쳤다. 햇살멍을 누리며 북멍 행복타임도 갖았다. 한 칸 한 칸 놓여있는 책들을 보면서 찰나의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나에게 가장 큰 호사다. 소파에 앉아 책장멍을 하고 있으면 큰 웃음 나는 화려한 행복은 아니지만, 평온하게 차분한 행복이 스며드는 기분을 느낀다. 




책장을 들여다보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들이 보인다.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며, 이 책의 어떤 점이 좋아서 책장 안에 들여놓았는지 다시 한번 상기한다. 수많은 단어들을 뚫고 내가 선택한 언어가 보였다.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지향하는 가치였다. 그때그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다를 수 있어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큰 틀 안에서 닮아있었다. 이 책장은 단순히 책을 넣는 공간을 넘어섰다. 이 복잡한 세계에서 나답게 잘 살아가기 위한 언어를 축적하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 이 책장을 주문했을 때는 그냥 너무 예뻐서 산 물건인데, 내가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태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나의 태도를 담는 나무 그릇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후에는 그 공간에 있을 때면 문득문득 책의 메시지가 부드럽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한 칸에는 한 권의 책이 있기 때문에, 심플함의 힘으로 책이 눈에 잘 들어왔다. 복잡하지 않으니 덕분에 그 언어를 더 명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책장의 책들은 혼내지도 강요하지도 큰소리치지도 않고도 소중한 가치를 공기처럼 은은하게 품고 있는 것 같다. 




책장을 보며 속으로 말한다. '내년 책장은 올해 꽂혀있는 책들과 많이 달라져 있을까. 내가 갖고 싶은 태도가 또 꽂히겠지. 시간이 흘러도 그 한 칸을 꿋꿋하게 지켜내는 책도 있겠지. 다시 놓아줬다 다시 꽂히게 되는 책도 있겠지. 엉덩이 힘이 가장 좋은 책도 있겠지. 여러 권의 책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에서, 나의 중심축이 만들어지겠지. 거의 모든 책들이 빠져나가고 새로운 언어가 들어오면, 나의 세계관도 영향을 받겠지. ' 




보이지 않지만 책장의 그릇은 넓어지고 있다. 책이 오며 가며 새롭게 바뀌는 동안 나무 그릇은 단단해진다. 좋아하는 책들을 담아주는 이 책장을 보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잘 산 것 같다. 책장 한 칸 한 칸에 인생책을 꽂아두니 그 가치를 내 안에 축적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가치를 살아내는 일은 내 몫이 되겠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한 쉽게 잊어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에 서 있을 태도를 알게 해 주고, 생각의 가장자리를 넓혀주는 나무 그릇 책장은 이미 제값을 넘어섰다. 책장의 그릇은 제법 무거워졌으니, 이제 그 가치를 살아내는 노력을 통해 내 그릇을 키워가야겠다. 




(번외) 아, 작은방 책장에게도 감사를!

작은 방에도 한쪽면을 차지하고 있는 큰 책장 하나가 있다. 그 책장에는 칸이 모자라 책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읽은 책도 있고 읽다 만 책도 있고 읽는 중인 책도 있고 아직 읽지 않은 책도 있다. 도움이 되는 책도 있고 나와 맞지 않은 책도 있고 시선을 끄는 책도 있고 읽을 타이밍이 아닌지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도 있다. 작은 방에 있는 책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만 꽂혀있지는 않지만 다양한 책들을 빼곡히 담아줘서 고맙다. 이 작은 방의 책장 안에 꽂혀있지 않았다면 거실 책장으로도 나갈 수 없었을 테니까. 인생책이라 선택되어 거실 책장으로 간 책들도 먼저는 이 작은 방의 책장에 꽂혔던 책들이다. 거실 책장보다 작은 방 책장이 선배다! 거실 책장이 내가 앞으로 세상에 서고 싶은 태도를 담아준다면, 작은 방 책장은 내가 세상에 대하는 모든 가능성의 태도를 품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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