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 때 오늘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면 뿌듯했다. 오늘 하루 시간을 잘 보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은은한 향기가 나는 뽀송뽀송한 이불을 덮고 자는 날처럼 푹 잠에 들었다. 반대로 오늘 하루 뭐 했나 싶은 생각이 들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만 같았으니까. 거기다 오늘 있었던 잘 풀리지 않은 사건까지 떠오르면 오늘 하루 아주 망친 것만 같았다. 맞지 않는 목베개를 베고 자는 듯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 상태로 잠에 들면 오염된 기분이 무의식에 흘러가 꿈에서까지 괴로워했다.
내 기분은 혼자서 힘을 쓸 수 없는 걸까? 그날 하루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내 기분은 늘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건가? 하루를 온전히 잘 보내지 못하면 내 기분도 그렇게 엉망이 되어야 할까. 나의 대답은 심플했다. 절대 그럴 순 없지. 하루는 망해도 내 기분까지 망치게 둘 수는 없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충만하게 보낼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게 일상이다. 작고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까지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다. 이렇게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내 기분도 따라다닐 수만은 없다. 나는 여러 도구들을 시험해 보면서 나만의 방법을 찾았고 실제 내 삶에 적용하면서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다.
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나의 작은 루틴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이다. 이 기본적인 것이 사람을, 나를 구원해준다. 작은 루틴을 꾸준히 하는 것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겠지만 나는 이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 루틴을 지켜야하는지를 근원적으로 알고 있어야 그 가치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방법을 알고 있는 것보다 어떤 마인드로 그 방법을 해야 하는지 인지하고 있어야 꾸준히 행동할 수 있다. 그래서 방법이나 도구보다는 왜 그 방법을 해야하는지 그 마음에 대해서 알았으면 좋겠다. 방법은 알고 나서도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마음이 전해지면 깨달음을 통해 스스로 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법이니까.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 생각을 글로 풀어내고 싶은데.. 열심히는 쓰고 있다 ㅎ
하루는 망쳐도 기분은 챙길 수 있었던 방법으로 돌아와 다시 말하자면, 나는 매일 꼭 해야 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아주 작은 루틴'을 수행했다. 루틴을 마치고 나면 '오늘 할 일은 다 한 거다!' 하고 마음속으로 나에게 말했다. 여기서 핵심은 오늘 할 일은 다했다는 생각을 하루 내내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을 놓치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그 결과 요즘의 나는 하루는 망했어도 기분까지 완전히 망친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하루가 어땠어도 나의 기분은 챙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그 일들이 내 기분까지 영향을 크게 줄 수 없도록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루를 망쳤는데 어떻게 내 기분은 지킬 수 있었을까?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 꼭 해야 하는 그 루틴만 지켰다면 남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더라도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 덕분에 진짜 하루를 망친 건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사실을 뇌가 인지하게끔 만들었다. 그랬떠니 정말 내 기분도 이 생각을 따라가는 듯했다. 하루 중 안 좋은 일이 있어더라도 마음속에 '그래도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은 했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루를 전부 망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게 되었다. 하루는 망쳤어도 기분까지 완전히 망칠 수 없게 된 이유이다.
하루 중 꼭 해야 하는 루틴을 정할 때, 아주 작게 시작했다. 꾸준히 하려면 그래야 했다. 이불 개기처럼 1분 안에 끝낼 수 있고 쉽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부터 했다. 계속하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1분에서 5분으로 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갈 수 있는 것들을 매일 했다. 루틴을 끝낸 후에는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은 다했다'는 생각을 하루 내내 인지하려고 했다.
조금씩 루틴의 반경을 넓혀 요즘에는 요가 + 명상 + 글쓰기를 한 세트로 만들어 꼭 해야 하는 의식으로 만들었다. 이 한 세트를 마치고 나면 여전히 '오늘 할 일은 다했네!'라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루틴의 내용과 시간이 조금 늘어났을 뿐 과정은 똑같다. 꼭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오늘 할 일은 다했다는 생각을 하루 내내 인지하는 것이다. 이 의식들은 어느 순간부터 오늘 일어난 일에 영향을 덜 받고 내 기분을 늘 챙길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내 기분이 회복탄련성이 천천히 높아지고 있었다.
시간은 오전에 하는 게 좋았다. 실제로 이른 시간에 나의 의식을 마치고 나면 좋은 점이 있다. 남은 하루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 기분을 완전히 망칠 수 없는 짱짱한 보험을 든 채로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오늘 할 일은 다했다는 생각 덕분에 지금 이 시간부터 저녁까지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의 이벤트처럼 여기게 되었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럭키 데이라고 여겼고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래도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은 했잖아!'라는 생각으로 괜찮은 기분을 다시 데려올 수 있었다.
'오늘도 할 일 다 했다'는 생각은 회복력이 꽤 높았다. 만약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잘 풀리지 않은 일이 내 기분까지 오염시켜 난 그곳에 하루 내내 침전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할 일은 다 했잖아?'라는 생각 덕분에 기분이 완전히 오염되지 않는다. 어떤 사건에 침몰되더라도 빠져나올 수 있다.
이런.. 늦잠을 잤다. 나의 의식 세트를 해야 하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일어났다. 어쩔 수 없이 루틴을 건너뛰고 일을 시작했다. 아뿔싸! 일도 잘 안 풀린다. 오늘은 정말이지 되는 일이 없다. 진짜 하루를 망친 것 같다. 터덜터덜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뒤늦게라도 요가와 명상을 했다. 자기 전에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정해놓았던 루틴을 하고 나니 조금씩 기분이 회복되었다. 오늘 하루 망했는데 그래도 할 일은 했네라는 생각이 든 덕분이다. 이 의식들이 나를 구원해 주었다. 땡쓰.
나는 사람이다. 너무 바빠서 정신없어서 힘이 없어서 자기 전에도 나의 루틴을 못하는 날도 있겠다.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날엔 어쩔 수 없다. 그냥 어쩔 수 없는 거다. '오늘 하루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하고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루틴을 수행하면 되는 거니까. 오늘 하루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빠져 죄책감은 갖지 않기로 했다. 하루 망쳤다고 기분 망쳤다고 인생 망한 게 아니니까. 내일부터 루틴을 챙기면 다시 마음의 평화로움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노력하고 있다. 꾸준히 하면서 매일 하는 의식들의 반경을 넓힐 수 있었다. 계속해서 나의 루틴 반경을 다양하게 넓혀가고 싶다. 그런 날이 오면 '오늘 할 일은 다했다'는 생각을 너머 '오늘 하루 정말 충만하게 보냈다'는 기분이 들겠지. 자연스럽게 늘 기분 좋음을 유지하고 있겠지. 그런 날을 위해 오늘도 쉽지 않지만 노력 중이다. 그래서 오늘도 글쓰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예! 오늘 할 일도 다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늘도 내 기분을 챙길 수 있을 듯 하다. 정말 그렇게 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