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무해한 물건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나의 생활양식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것, 단정하고 심플한 취향을 닮은 것, 나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 쓰는 동안 마음이 편안한 것,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손이 가고, 아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그 자체로 조용하고 강한 존재감이 있는 것, 아름다워서 소장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것. 이런 무해한 물건들과 같이 살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상을 잘 살아가고 싶어서다. 매일 조금씩 더 건강한 삶의 결을 만들고 싶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지향하는 삶이 또렷해졌다. 거창한 성공이나 큰 변화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생활을 단정하게 보내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내가 원하는 삶의 양식을 건강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리고 삶을 돌보는 일에는 체력만큼이나 감각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자연스럽게 그 생각이 물건이라는 영역으로 이어졌다. 물건이란 결국 나의 삶의 방식이 드러나는 또 하나의 언어니까.
읽고 쓰며 내 안의 질서를 세우다 보니, 그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했따. 생각이 단정해지면 시야도 단정해지고 싶은걸까. 그때서야 무해한 물건을 욕망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생활이 건강하게 이어지게 하는 매개체였다.
나는 단정하고 간결한 삶의 양식을 좋아한다. 단정함에서 오는 해방감이 참 좋다. 내게 무해한 물건은 단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하루의 공기를 가볍게 해주는 생활의 리듬이다. 어떤 물건을 들일 때면 ‘이것이 내 삶의 흐름과 어울릴까?’를 먼저 생각한다.
그 물건이 공간의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나의 생활에 작게나마 여백을 더해줄 수 있는지를 살핀다. 내게 무해한 물건들은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주는 것, 심플한 생활방식을 더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알아가며 이런 결의 편안함이 내게 무해한 물건이란 걸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나의 생활방식과 어울리는 물건을 안다는 것
내가 물건을 소유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나의 생활방식이다. 어떤 물건이 나의 단정한 삶의 양식과 조화로울 수 있는지가 기준점이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조화로울 수 있는지 그려본다.
그 기준을 갖게 된 뒤로는, 유혹 앞에서 마음이 덜 흔들렸다. 특히 큰 물건을 들일 떄는 시간을 두고 본다.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한참이 지나도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건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사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예쁜 물건을 보아도 이제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눈으로 충분히 즐기고, 사진으로 담으면 된다. 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정말 아름다운 물건은, 나를 잠시 멈춰 세운다. 그럴 때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예술을 소장하는 마음으로 산다. 그 자체로 시간을 품은 듯한 물건, 오래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것. 그런 물건은 존재 자체로 나의 하루를 한 톤 고요하게 만든다. 나는 그 틈을 ‘행복한 소비의 여백’이라 부른다.
무해한 물건을 곁에 두게 되면서, 하나의 물건이 주는 만족감이 커졌다. 예전엔 ‘많이 가지는 것’이 풍요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제대로 가진 하나’가 훨씬 더 큰 만족을 준다. 무소유자는 아니지만, 이제는 무엇이 나를 돕고 무엇이 나를 흐트러뜨리는지 안다.
새로운 제품 앞에서 서성이지 않고, 사지 못해 불안하지도 않다. 사지 못해 불안하거나 우울한 기분은 그 찰나에 강하게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알아차리면 마음이 조용해진다. 그리고 곧 깨닫는다. 사지 않는다는 건 결핍이 아니라 해방이라는 걸.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먼저 들여다볼 것
좋은 물건을 고르기 전에, 나는 먼저 나 자신을 들여다봤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그 물건을 사고 싶은지. 이런 질문들이 쌓이자 소비의 결이 바뀌었다. 좋아 보이는 물건이 아니라, 진짜 내 삶과 닮은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무해한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해한 물건을 알게 된 이후, 내 안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욕망의 방향’이었다. 더 많이 소유하기 보다는 내가 갖고 싶어하는 하나, 그 하나를 들일 때가 훨씬 더 기쁘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기 떄문에 욕망을 잘 풀었다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욕망을 잘 다루는 일은 결국 삶을 잘 다루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물건들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 삶을 위해 어떤 물건을 곁에 두어야 하는지 몰랐다면, 아마도 원하지 않은 물건으로 욕망을 잘못 풀고 있었을 것이다. 좋아 보이는 삶을 위한 물건을 사며 나를 소모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물건을 들이기 전에 원하는 삶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내 생활양식을 건강하게 지켜주는지, 그 감각이 생기면 무해한 물건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예쁜 물건을 집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많은 물건을 소유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다. 내 기분과는 달리 좋아보이는 물건들을 계속 들이는 모순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어질 뿐이다. 지금 나의 생활양식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물건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물건에 대해 생각할 것이 아니라 먼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내게 무해한 물건들과 함께 할 것
모든 물건을 최선의 것으로 고를 수 없더라도, 가능한 한 원하는 삶과 닮은 결의 물건들을 옆에 두려 한다. 나의 공간을 내가 원하는 물건으로 완벽하게 무장시킬 수는 없어도, 조금씩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 자체를 즐겁다. 하나하나 무해한 것들로 나의 공간을 채워가며 변화를 느끼는 일도 꽤 흥미롭다.
여전히 물건으로 둘러싸여 산다.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크게 작게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날씨에도 사람에도 음식에도 영향을 받듯, 늘 쓰고 있는 물건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무해한 물건을 옆에 들이는 노력은 아깝지가 없다.
무해한 물건과 함께 할 때 내 공간에서 어떤 것에도 자주 긍정할 수 있다. 나와 생활방식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무해한 물건과 함께하면서 나는 계속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