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독립 선언

by 제인톤

하루를 망쳤다고 기분까지 망칠 순 없다

오늘 하루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다. 불필요한 말을 했고, 저녁 약속도 취소했다. 분명 망친 하루였다. 그런데 잠들 때는 괜찮았다. 이상한 일이다. 차이는 단 하나였다. 아침 7시, 요가 매트를 펼쳤다는 것. 15분. 그게 전부였다.


그날 나는 알았다. 하루 전체를 구할 수는 없어도, 내 기분은 구할 수 있다는 것을. 하루는 망해도, 나는 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기분의 독립

잠들 때 오늘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면 푹 잠들었다. 반대로 오늘 하루 뭐 했나 싶은 생각이 들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 같았다. 거기다 오늘 있었던 안 좋은 일까지 떠오르면 오늘 하루 완전히 망친 것만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 상태로 잠들면 꿈에서까지 괴로웠다.



특히 중요한 약속을 망쳤거나,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해버린 날. 그 장면이 계속 재생되었다. 내 기분은 혼자서 힘을 쓸 수 없는 걸까? 그날 하루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내 기분은 늘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건가? 하루를 온전히 잘 보내지 못하면 내 기분도 그렇게 엉망이 되어야 할까.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절대 그럴 순 없다. 하루는 망해도 내 기분까지 망치게 둘 수는 없다. 그날부터 나는 '기분의 독립'을 선언했다. 하루의 사건들로부터 내 기분을 분리하기로 한 것이다.





앵커를 내리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충만하게 보낼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게 일상이다. 작고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까지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내 기분이 따라다닐 수만은 없다.



나는 여러 도구들을 시험해 보면서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작은 루틴을 지키는 것. 이 기본적인 것이 나를 지켜준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루틴을 '앵커(anchor)'라고 부른다. 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하는 닻처럼, 내 하루가 흔들려도 나를 잡아주는 지점.



작은 루틴을 꾸준히 하는 것의 중요성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 루틴을 지켜야 하는지를 근원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법을 아는 것보다 어떤 마인드로 그 방법을 해야 하는지 인지하고 있어야 꾸준히 행동할 수 있다. 방법은 알아도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움직이면 스스로 하게 된다.





오늘 할 일은 다 했다

나는 매일 꼭 해야 하는 '의식'처럼 아주 작은 루틴을 수행했다. 루틴을 마치고 나면 '오늘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핵심은 오늘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을 하루 내내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을 놓치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그 결과 하루가 망해도 기분까지 망치지는 않게 되었다. 하루가 어떻든 나의 기분은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그 일들이 내 기분까지 크게 영향을 줄 수 없도록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루를 망쳤는데 어떻게 내 기분은 지킬 수 있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 꼭 해야 하는 그 루틴만 지켰다면, 남은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더라도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 덕분에 진짜 하루를 망친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한 문장이 하루 전체를 재정의했다. 프레이밍 효과였다. 같은 하루를 '망친 하루'로 볼 수도 있고, '할 일은 한 하루'로 볼 수도 있다. 어떤 프레임으로 보느냐에 따라 기분이 달라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기분도 달라졌다. 하루 중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마음속에 '그래도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은 했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루를 전부 망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게 되었다.





아주 작게 시작한다

하루 중 꼭 해야 하는 루틴을 정할 때, 아주 작게 시작했다. 꾸준히 하려면 그래야 했다. 이불 개기처럼 1분 안에 끝낼 수 있고 쉽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부터 했다. 그렇게 1분에서 5분으로 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갈 수 있는 것들을 매일 했다. 루틴을 끝낸 후에는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을 하루 내내 인지하려고 했다.



조금씩 루틴을 늘려 요즘에는 요가와 명상을 한 세트로 같이 해야 하는 의식으로 만들었다. 이 루틴을 마치고 나면 여전히 '오늘 할 일은 다 했네'라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루틴의 내용과 시간이 조금 늘어났을 뿐 과정은 똑같다. 꼭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오늘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을 하루 내내 인지하는 것이다.



이 의식들은 어느 순간부터 오늘 일어난 일에 영향을 덜 받고 내 기분을 늘 챙길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내 기분이 쉽게 무너지지 않게 되었다.





오전에 하는 게 좋다

시간은 오전이 좋았다. 이른 시간에 의식을 마치고 나면 좋은 점이 있다. 남은 하루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느낌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오늘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 덕분에 남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을 가볍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럭키 데이라고 여겼고,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래도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은 했잖아'라는 생각으로 기분을 되찾았다.



'오늘도 할 일 다 했다'는 생각은 강했다. 만약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잘 풀리지 않은 일이 내 기분까지 오염시켜 나는 그 기분에 하루 종일 갇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할 일은 다 했잖아'라는 생각 덕분에 기분이 완전히 오염되지 않는다. 어떤 사건에 침몰되더라도 빠져나올 수 있다.





못하는 날도 있다

늦잠을 잤다. 나의 의식 세트를 해야 하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일어났다. 어쩔 수 없이 루틴을 건너뛰고 일을 시작했다. 일도 잘 안 풀린다. 오늘은 정말이지 되는 일이 없다. 진짜 하루를 망친 것 같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뒤늦게라도 요가와 명상을 했다. 자기 전에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정해놓았던 루틴을 하고 나니 조금씩 기분이 회복되었다. 오늘 하루 망했는데 그래도 할 일은 했네, 라는 생각 덕분이다. 이 의식들이 나를 지켜주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웠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는 분명 망했는데, 나는 괜찮았다.



나는 사람이다. 너무 바빠서, 정신없어서, 힘이 없어서 자기 전에도 나의 루틴을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어쩔 수 없다. 그냥 어쩔 수 없는 거다. '오늘 하루 이런 날도 있지' 하고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루틴을 수행하면 되는 거니까. 오늘 하루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빠져 죄책감은 갖지 않기로 했다. 하루 망쳤다고, 기분 망쳤다고 인생 망한 게 아니니까. 내일부터 루틴을 챙기면 다시 괜찮아진다는 것만 알면 된다.


루틴을 못한 날도 데이터였다. '아, 나는 이 정도로 바쁘면 루틴을 못 하는구나. 그럼 내일은 조금 일찍 일어나야겠다.' 실패도 정보였다.





오늘도 시작한다

꾸준히 하면서 매일 하는 의식을 넓힐 수 있었다. 계속해서 나의 루틴을 넓혀가고 싶다. 그런 날이 오면 '오늘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을 넘어 '오늘 하루 정말 충만하게 보냈다'는 기분이 들겠지. 자연스럽게 늘 기분 좋을 것이다.



오늘도 요가를 끝내고 '오늘 할 일도 다 했다.' 고 말하니 정말 오늘 하루도 괜찮을 것 같다. 언젠가는 루틴이 루틴이 아니게 되는 날이 올까?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날이? 그때가 되면 '오늘 할 일 다 했다'는 생각조차 필요 없을 것이다.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날. 그날까지, 오늘도 매트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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