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 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과 바다>를 읽고
노인은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를 한다. 84일 동안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 노인의 배 위 펼쳐진 닻은 그를 영원한 패배자로 낙인찍은 듯한 깃발을 상징하는 듯했고, 노인의 외부세계는 그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노인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바다에서 자신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이는 꽤 있지만 눈빛은 여전히 살아있고 오랜 경험으로 큰 고기를 잡는 기술과 열정이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그가 하는 혼잣말을 들으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는 늘 내면의 목소리를 듣곤 했다.
노인은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평가보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소년의 말이 중요했다. 소년은 노인과 항해하며 그의 고기잡이 실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삶의 방식을 존중했다. 이 둘의 대화를 보고 있자면, 나는 노인을 향한 소년의 무한한 신뢰가 타인이 낙인찍은 패배자라는 운명에 갇힐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년이라는 작은 세상이 있는 것만으로도 노인은 바다에서 홀로 힘을 발휘하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지켜가는데 충분했던 것처럼 보였다.
노인은 고기를 잡지 못했어도 다음날이면 늘 바다로 나아갔다. 고기를 잡지 못한 날들 때문에 절망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 해야 할 일을 아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에게 그 모습은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인생 마지막 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노인은 드디어 이제까지 봤던 것 중에 제일 큰 고기와 맞붙는다. 그 과정에서 노인은 정신적으로 위축되는 법이 없다. 기회가 올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며 유리하게 상황을 만드는 그의 노련한 행동을 보며, 고기를 잡지 못한 기간 동안, 그가 잡아 올린 건 고기보다 중요한 것들이었겠구나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내공을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작지 않다고 생각하는 힘이 있었던 것 같다. 용기, 희망, 인내, 모험 정신과 같은 것들이 큰 고기를 잡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곧 상어 떼의 습격을 받고 잡은 큰 고기는 뼈만 남는다. 여기서 결과만 보면 큰 고기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셈이다. 노인은 인생은 정말 운이 없는 걸까? 그는 정말 패배자인 걸까? 그는 오늘도 실패한 걸까?
노인이 마을에 돌아와 소년과 나누는 대화에서, 소년은 할아버지에게 실패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위로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소년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뭘 좀 아는 노인 옆에서 뭘 좀 아는 듯한 소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소년은 단순히 고기를 잡았다는 목표보다, 고기를 잡는 과정이 가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여서 나는 그 순간 소년이 커보였다. 정말 값진 것은 고기를 잡는 기술이나 고기를 잡은 결과보다, 바다 세계를 어떻게 다루고 모험하는 삶의 양식이라는 것을, 할아버지에게 그동안 배워왔던 것일까. 소년은 이 마을에서 진짜 바다세계를 알고 있고 모험 정신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대화였다.
나 역시 소년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노인의 삶이 전혀 패배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바다에 나가 모든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낸 그의 행동들을 보면 실패가 실패처럼 느껴질 리 없다. 노인이 바다에서 모든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위엄 있는 모습들은 그를 패배자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그가 순간순간을 살아낸 행동들은 목표를 작게 보이거나 잊게 했고, 오히려 그 상황에서 나라면 그렇게 치열하게 싸워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할 뿐이었다.
모든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있다. 실패가 실패처럼 느껴지지 않아 후회도 없다는 것, 노인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그는 진짜 인생을 살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오직 그 목표 하나만이 가치 있어 보이지 않는다. 노인은 바다에서 항해하는 모든 여정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고기를 잡은 순간만, 오로지 그 순간만이 그의 인생이 아니었다. 고기를 잡지 못한 84일도, 상어 떼에게 큰 고기를 습격당한 시간도 모두 그의 인생의 한 점이었다.
노인은 패배하지 않았다. 오히려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낸 것이지. 노인이 바다 세계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실패처럼 보이는 것들 앞에서도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노인의 치열함에 자연스럽게 묻어가며 생각해 보았다. 노인은 바다라는 세계에서 매일 자신을 단련해 왔다. 나에게 바다 같은 존재는 무엇일까, 나는 매일 단련하고 있는 글쓰기를 떠올렸다. 어쩌다 매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오래 하고 싶어서 평소 좋아하는 것들 중에 글쓰기를 선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글을 쓴다는 게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이겼는지, 매일 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매일 쓰면서 발행하지 못한 글들이 참 많다. 이러려고 쓰는 건 아닌데, 하면서도 쌓여가는 글들이 참 많다. 노인이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했어도 다음날이면 바다로 뚫고 나가는 것처럼 나도 앞으로도 매일을 그래야 할 텐데..
그래서 '노인이 나의 세계에 들어왔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생각했다.
노인은 늘 현재를 산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의 행동을 보면 늘 현재가 힘이 세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 앞에서 작아진다. 그에게는 현재만이 강했다. 현재가 늘 이긴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노인은 행동했고, 그 덕분인지 이루지 못한 과거 때문에 절망하지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불확실성에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할 수 있는 이상을 놓치지 않았다.
현재를 사는 노인은 자신 앞에 있는 모든 '여기, 지금'에 치열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실패처럼 보이는 것들에도 하나하나 점을 충실히 찍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작은 점들은 전혀 실패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이어지는 작고 무수한 점들 덕분에 그 자체로 완결된 인생을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글을 쓰고 싶다. 노인의 행동처럼, 현재가 늘 이긴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는 사람처럼. 그랬을 때 내가 습작한 것들은 의미 없어질 리 없다. 현재를 살아내면 내 인생은 그 과정으로 채워질 테니까. 노인의 삶은 띄엄띄엄 목표로만 채워지는 게 인생일리 없다고, 인생은 무수한 점들로 이어지는 그 자체로서 완결성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실패도 그냥 가야 하는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하고 뚫고 갈 수 있게 해 준다. 마치 그 여정들의 총합이 내가 살아낸 진짜 인생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하루 하루 지금의 삶을 살아내는 과정이 그에게는 진짜 인생이었다.
노인의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보면서 목표와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목표와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매일 계속 쓸 수 있을까. 먼저 글 쓰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깨달았다. 목표, 이루면 너무 좋은 것들이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정말 오래 쓰고 싶다면 글을 쓰는 여정이 가치있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면서 나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늘 좋은 기분으로만 있을 순 없겠지만, 지금 이 현재를 내가 살아내고 싶은 도구로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또 안심하면서 좋아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안심한다는 것은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니까, 계속 인지해서 그 여정에 감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표를 이루는 그 순간만 내 인생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여정 내내는 아니어도 문득문득 기뻤으면 좋겠다. 생 마지막 날에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뭘 좀 아는 노인처럼, 나도 글을 쓰고 있었으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는데, 이건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
쓰기 싫을 땐 또 노인을 떠올려야지 싶다.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했어도 바다로 뚫고 나아갔으니까. 그의 치열함에 또 잠시 묻어가자면, 오늘도 썼다. 쓰는 이유는 심플하다. 오늘 써야 내일도 쓸 수 있으니까. 어제 썼다면 오늘도 쓸 수 있으니까. 오늘 쓰면 내일도 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노인도 그랬겠지 싶어서.
잘 안써지는 글을 놓고도 매일 써야지 싶다. 실패라는 점을 뚫고 가는 방법은 썼던 치열하게 쓰는 것이니까. 지우고 썼던 과정들이 지금은 실패처럼 느껴져도 결국 멀리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하나의 점이라는 것을, 그 점이 나의 완결된 진짜 인생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노인의 삶의 양식에서 배웠으니까. 실패처럼 보이는 점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노인이 스스로를 돕는 행동으로 2가지 선물을 주고 받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작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노인이 매일 하는 사람으로서 행동했기 때문에 받은 특권이다. 상대방보다 스스로를 작지 않다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어떤 것과 마주해도 일단은 싸워볼 생각이 들 것이다. 두 번째 노인이 받은 선물은 온전한 나의 진짜 인생을 살고 있게 된 것이다. 당장은 실패처럼 보이는 것들 안에서도 순간순간을 살아냈기 때문에 받은 특권이다. 스스로 돕는 노인의 행동을 보고 나도 매일을 나를 돕고 싶다. 스스로를 도우며 자기 인생을 살아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읽으면 좋을 것 같다.